페루의 미스터리 속으로 <下> 3박4일 동안 45㎞ 트레킹…순례자 마음으로 마추픽추 만나러 가는 길

입력 2014-12-08 07:01  

페루 잉카트레일

페루의 자연 속에서 글램핑 즐기고…고즈넉한 잉카유적 지나 '태양의 문'으로 뚜벅뚜벅



[ 김명상 기자 ]
남미 여행의 정점 마추픽추(Machu Picchu). 20년을 넘게 꿈꾸며 기다려온 여행지였다. 편하게 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오랜 소망이 너무 쉽게 이뤄졌을 때, 그 뒤에 닥쳐올 허망함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오체투지(五體投地)까지는 아니어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싶었다. 그 오랜 꿈이 이뤄졌다. 마추픽추를 향해 걸어가는 3박4일간의 잉카 트레일. 단순한 길 이상의 의미를 담은 곳에서 순례자들은 무엇을 만났을까.


잉카 트레일

잉카 트레일은 옛날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로 가던 산길이다. 출발 지점과 구간에 따라 2일부터 1주일까지 걸리는데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클래식 잉카 트레일’이다. ‘킬로미터82(㎞82)’에서 출발해 마추픽추까지 45㎞ 거리를 3박4일간 걷는데, 길은 최고 해발 4200m까지 이어진다. 이동 중 안데스 산맥의 절경과 마추픽추 역사 보호 지구 곳곳에 남은 잉카문명의 흔적을 두루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 현지 여행사를 통하면 짐을 옮겨주는 포터, 요리사, 현지 가이드와 함께 떠나게 된다.

7시간의 워밍업, 그리고 글램핑

1일차 경로 : 약 12㎞=오얀타이탐보~킬로미터82(해발 2600m)~약타파타(해발 2650m)~와이야밤바(해발 3100m).

첫 출발을 환영하듯 날씨가 상쾌하고 맑다. 오얀타이탐보에서 서쪽으로 약 14㎞ 떨어진 킬로미터82는 잉카 트레일의 출발점이다.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산행에 앞서 잉카 트레일의 시작을 알리는 붉은색 안내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국적과 인종은 다르지만 흥분된 기색이 역력한 것은 만국공통. 우리 일행 중 한국인은 6명, 현지인은 가이드와 포터, 요리사까지 12명이다.

본격적인 잉카 트레일에 앞서 공항의 입국 심사대를 연상케 하는 검표소를 통과해야 했다. 트레일 입장권과 여권을 주자 담당 직원 2명이 사전 예약 명단과 비교한 후 들여보내 준다.

첫날 코스의 난이도는 워밍업 수준이다. 길이 평탄한 편이고 오르막의 경사도 심하지 않아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한참을 걸으니 언덕 아래로 옛 잉카 유적지 약타파타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마추픽추로 가는 길을 통제하는 센터이자 오가는 이들을 위한 휴게소 역할을 한다. 또한 농작물 생산을 위한 계단식 밭, 태양의 신을 모시는 신전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마추픽추와 연계된 시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여행객들은 갑자기 나타난 잉카 유적을 바라보며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한다. 산행 중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잉카유적을 여럿 볼 수 있다는 것은 잉카 트레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출발 후 7시간을 걸어간 끝에 오후 5시께 첫 번째 캠핑지 와이야밤바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텐트를 쳐놓았고, 잠시 쉬고 있자니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갖다 준다. 텐트에 앉아 세수를 하고 발을 씻으니 하루의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이다. 따뜻한 커피나 차도 알아서 가져다주니 그야말로 글램핑(glamping)이 따로 없다. 마련된 저녁도 훌륭했다. 채소수프와 밥, 감자튀김, 숭어튀김 등이 나왔다. 산 속에서 가만히 앉아 요리사가 만들어 주는 정찬을 먹고 있으니 호사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해가 진 후 텐트 속 침낭에 누우니 상당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곧 피곤이 엄습했다.

난코스와 고산증, 혼과 몸이 분리되는 기분

2일차 경로 : 약 12㎞=와이야밤바(해발 3100m)~와르미와뉴스카(해발 4215m)~파카이마유(해발 3600m).

기상시간은 오전 4시30분. 이미 날이 환하다. 밖으로 나오니 구름을 가득 머금은 고산들이 병풍처럼 캠핑장을 감싸고 있다. 페루의 자연이 차려놓은 호화로운 잔치일까. 문득 ‘언제 다시 이런 절경을 벗 삼아 야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전 7시에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현지 가이드 에드가는 오늘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했다. 현재 고도 3100m에서 ‘죽은 여인의 계곡’이라는 별명을 가진 4200m 높이의 ‘와르미와뉴스카’를 넘어가야 한다. 고산증이 나타날 수 있으니 무조건 천천히 걷고, 어지러우면 그 자리에 주저앉으라는 주문이 긴장감을 높인다.

두 번째 휴식 장소인 룰루차팜파(3850m)에 오르니 바람이 불고 쌀쌀해졌다. 더워서 배낭에 넣었던 방풍재킷을 다시 꺼내 입었다. 이곳에는 마추픽추를 가기 전에 들를 수 있는 마지막 매점이 있다. 술이나 과자, 물, 음료수 등을 파는 현지인 아주머니들이 호객을 하고 있다. 잠시의 휴식을 마치고 오전 11시께 다시 길을 나섰다.

여기서부터 무척 힘들다. 해발고도 3500m에 오르면 공기량은 해수면의 64%에 불과하다. 4000m를 넘어서면 60% 이하로 줄어든다. 조금만 빨리 걸으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주변의 경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정신이 멍하다. 걷는 동안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 ‘어서 올라가서 쉬고 싶다’였다. 점점 무거워지는 걸음. 조금 과장하자면 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느낌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땅에 붙은 신발을 떼어내는 기분이다.

낮 12시8분. 어느새 ‘죽은 여인의 계곡’, 와르미와뉴스카에 도착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해발 4215m라는 표지판이 생소하다. 연기 같은 구름도 힘이 드는지 고갯마루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쉬다가 다시 빠르게 흘러갔다. 돌아보니 걸어왔던 길이 까마득하다. 오를 땐 미처 몰랐는데 압도적인 풍경이 뒤에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참으로 가슴을 울리는 절경이다.

이후에는 계속 내리막길. 오후 4시15분 파카이마유에 도착했다. 수고가 많았던 하루. 피로와 럼주 한 잔의 술기운에 금방 골아 떨어져버렸다.

잉카유적을 즐긴다

3일차 경로 : 약 10㎞=파카이마유(해발 3600m)~룬쿠라카이(해발 3800m)~사약마르카(해발 3600m)~푸유파타마르카(해발 3600m)

오전 6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했다. 3일째에 접어들면서 마추픽추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더 실감났다. 잉카 트레일을 통하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는 잉카 유적을 여럿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휴식지는 절벽 위에 서 있는 룬쿠라카이. 차스키의 휴식처 또는 군인들의 초소로 쓰였다고 추측되는 곳이다. 위에서 보면 달걀을 반으로 쪼갠 것 같은 형상인데 아니나 다를까 케추아어로 룬쿠라카이는 ‘달걀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늘 코스 중 가장 높은 세컨드패스(Second Pass)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어제 워낙 고생을 해서 그런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내려가다 보니 사약마르카가 나왔다. 산 속에 성채가 들어선 모습인데 안으로 들어가려면 산비탈에 나 있는 98개의 계단을 오르는 방법밖에 없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은 곳이다. 이곳은 군사적인 보초 시설 또는 신을 위한 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실상은 알 수 없다. 사방이 탁 트인 성벽에서 바라보니 주변을 아주 잘 관찰할 수 있다. 벽에 난 창에 대포라도 설치했다면 천혜의 요새였을 것만 같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차스키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였던 콘차마르카도 볼 수 있다.

자연의 터널을 지나며 오르락내리락 걷다보니 오후 2시50분쯤 세 번째 야영지인 푸유파타마르카에 도착했다. 야영지에서 내려다본 푸유파타마르카 유적은 구름 위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계단식 밭 아래에는 우기에 물을 담는 다섯 개의 작은 돌 욕조가 만들어져 있다. 별명답게 유적지는 수시로 구름에 갇혔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반복했다. 마추픽추의 축소판 같다. 뒤를 감싼 높은 산들이 저무는 해의 빛을 받아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마추픽추가 있는 방향을 묻자 에드가는 눈 앞의 산 너머에 있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지만 이제 정말 지척인 모양이다.

드디어 마추픽추로!

4일차 경로 : 약 11㎞=푸유파타마르카(3600m)~위냐이와이나(2700m)~인티푸쿠(2700m)~마추픽추(2400m).

마지막 날. 마추픽추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오전 4시30분에 출발하는 일정.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도록 그칠 줄 몰랐다. 산을 내려가는 내내 주변은 안개로 자욱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과연 쾌청한 마추픽추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중간 휴식지점인 위냐이와이나에 도착하고 나서도 비는 여전히 쏟아져 내렸다. 옆길은 낭떠러지와 같은 절벽인데 안개로 가득차 내려다 보이지 않았다. 인티푸쿠에 도착해서는 날이 개야 할텐데…. ‘태양의 문’이라는 뜻의 인티푸쿠는 먼발치에서 마추픽추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잉카 트레일의 사실상의 종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개 마추픽추를 관광할 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도착하면 입장객으로 인산인해다. 줄을 길게 서야 하고 시끄러운 시장통을 연상케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마추픽추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구름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한동안 감상한 후 천천히 내부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고 안개가 끼면 힘들게 잉카 트레일을 걸어온 노력이 허사가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지겨울 만큼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났다. 해발 4200m 고지도 지나왔지만 여전히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이 들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계단이 끝나고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언제 도착하려나 싶을 때 끝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돌로 쌓은 유적, 인티푸쿠였다.

뛰다시피 해서 마침내 올라선 인티푸쿠. 아아! 저 멀리에 마추픽추가 보인다. 가득했던 구름은 어느새 걷혀 있었다. 3박4일의 먼 길을 걸으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마주한 마추픽추. 세상에서 가장 깊숙이 숨겨진 까닭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된 마추픽추가 마침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면사포와 같은 구름이 옅게 드리워져 더 신비스러운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저 반갑고 기뻤다.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 어린아이라도 된 듯 헤헤거리며 웃음 지었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마음은 평온하고 담담했다. 그저 웃음만 나올 뿐. 사진이 아니라 가슴에 담고 싶은 장면. 망막에 아로새기느라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잉카 트레일의 끝에서 만난 마추픽추는 더 없이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여행팁

잉카 트레일을 걷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건기인 5~9월이다. 10~12월은 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우기인 1~3월엔 주의가 필요하다. 잉카 트레일은 허가받은 여행사를 통해 현지 가이드와 동행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페루 정부는 잉카 트레일의 보호를 위해 하루 입산 인원을 500명으로 통제하고 있다. 짐을 나르는 포터와 요리사, 가이드 등을 제외하면 입장할 수 있는 여행객 수는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보통 3개월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잉카 트레일의 수리 및 유지 보수를 위해 매년 2월에는 폐쇄된다. incatrailperu.com

페루 여행사의 잉카 트레일 상품 가격은 날짜와 참가 인원에 따라 변동된다. 한 그룹의 최대 인원은 16명으로 제한되며, 참가자가 많을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560~1000달러 정도. 마추픽추 입장료, 가이드 비용을 비롯해 2인 공유 텐트, 일정 중 식사 및 간식 등이 포함돼 있다. 현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 상품도 있다.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한다. 허가를 받은 업체이며 6인 이상 출발한다. 내년 3월 시작하는 3박4일 상품 가격은 750달러. 길투어ghiltour.com

리마·쿠스코(페루)=글·사진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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