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구매 전성시대④·끝] '싼 게 비지떡'은 옛말…싸구려의 진화

입력 2015-10-07 11:27   수정 2015-11-01 23:44

불황기 소비패턴 '합리구매·가치소비' 자리잡아
지갑 얇아도 까다롭게…'가성비' 따지는 소비자



중산층의 삶은 팍팍하다. 경기가 부진하면 부진할수록 더 그렇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불황에 전세가격 급등으로 인한 주거비용 증가로 서민층의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저가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한국에 앞서 장기 불황기를 겪은 일본에서도 소비 양극화 현상보다는 질 좋은 저가상품이 잘 팔리는 '알뜰구매'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알뜰구매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알뜰구매 현황을 살펴보고, 향후 국내 소비 트렌드에 대해 총 4회에 걸쳐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소비 중산층이 하류층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5일 발표한 ‘2015 한국의 소비생활지표’에서 읽히는 추세다.

소비자원은 상류층·중산층·하류층을 각각 상·하로 나눠 6단계 소비계층으로 분류했다. 조사 결과 하위그룹인 ‘중산층 하’가 절반 수준(48.5%)이었고 ‘하류층 상’(24.3%)이 뒤를 이었다. 양쪽 모두 2013년보다 늘어난 수치로 국민 4명 중 3명이 ‘중산층 하~하류층 상’ 계층에 속한 셈이다. 상류층(1.4%)에 대한 하류층(33.4%) 비율은 1994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세 이상 국민 2575명이 참여한 이 표본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하나 더 있다. 소비자문제 유형별 경험률이다. 품질 대비 비싼 가격(25.5%)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중산층의 하류층 전이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을 꼼꼼히 따진다는 얘기다.

이같은 최근 트렌드는 ‘합리주의 구매’와 ‘실속형 가치소비’로 정의된다. 소비자들은 한정된 재원을 우선순위에 집중 투자한다. 불황기엔 가성비 우수상품이 최우선이다. 단순히 싼 값의 제품만 찾는 건 아니다. 지갑은 얇아도 품질은 까다롭게 따진다. ‘저가와 양질의 교집합’을 찾는 알뜰구매족이 늘고 있다.

◆ 품질만 좋다면 B급·중고상품도 OK

30대 워킹맘 한모씨는 식탁 기능을 겸한 유아용 의자 구입 후 크?만족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와 유명해진 일명 ‘삼둥이 하이체어’를 저렴하게 샀기 때문이다. 정가 20만원 가량의 제품을 10만원대 초반에 ‘득템’했다. 스크래치 상품이라 회사가 값싸게 내놓은 제품이었다. 한씨는 “반신반의하며 샀는데 스크래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새 상품 같다”며 기뻐했다.

값비싼 A급 상품보단 가성비가 우수한 B급 상품이 호평을 받는다. 각종 상품 평이나 블로그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불황 장기화로 인해 20~30대 젊은층에선 백화점에서 실물을 확인하고 온라인 가격비교 후 선택하는 소비패턴이 정착됐다.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가 힘을 보탰다.

품질만 좋다면 중고상품도 마다하지 않는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구입한 30대 직장인 남성 강모씨는 “소위 ‘쿨매’(매력적인 매물)를 얻으면 남다른 성취감이 있다”며 “우리 또래에선 정가로 컴퓨터 완제품을 사는 건 ‘호갱’(호구+고객)이란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렇다 보니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어정쩡한 제품은 설 자리를 잃는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한국유통학회장)은 “저성장시대엔 합리주의가 구매의 가치가 된다. 소비자는 철저히 가성비를 따진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모바일 쇼핑 활성화로 손쉽게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며 “쓸데없이 비싸게 사면 호갱 된다는 인식이 퍼진 이유”라고 풀이했다.

◆ "가격만족은 기본에 가치만족까지"

합리적 구매 트렌드와 불황이 만나면 실속형 가치소비로 이어진다. 박명희 동국대 명예교수(전 소비자원 원장)는 “소비자의 보유 자원이 한정된 만큼 우선순위에 집중 투자하고 나머지에 대한 소비는 최소화하는 성향이 나타난다”며 “우선시하는 가치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지만 불황기엔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가치소비는 싸구려 제품을 찾는 것과는 차별화된다. ‘싼 게 비지떡’이란 표현은 기회비용에 따른 체념의 소산이었다. 반면 알뜰구매족은 제품의 질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프리미엄급을 바라는 건 아니다. 나름의 마지노선을 설정하는데, 이 마지노선이 상당 수준을 요구한다.

김난도 교수(소비자학과)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5’는 “내가 찾는 물건이라는 객관적 증거가 없으면 가차 없이 구매 대상에서 탈락한다”고 경고했다. 더 이상 끌리지도 않는데 싸다는 이유로 구입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 부사장(MD전략본부장)을 지낸 하광옥 중앙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격경쟁력 위주 전략이 먹혔다. 반면 이젠 소비자들이 가격이 싸도 가치가 있는지, 도움은 되는지 따져보고 산다”면서 “가격만족은 기본이고 가치만족까지 나아가야 어필할 ?있게 됐다”고 말했다.


◆ '호갱 탈출' 선택 아닌 필수인 시대

소비자가 더 이상 싸구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간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반영한 제품이 눈높이를 높여왔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다.

이희숙 충북대 교수(소비자학과)는 “고가든 저가든 제품의 기본적 성능은 어느정도 확보됐다. 휴대폰, 자동차, 가전제품 등의 가격을 결정짓는 건 디자인이나 특별한 기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불황엔 단순 기능만 충족하면서 저렴한 상품을 선호하게 된다. 다만 기본적 품질 미달인 예전의 싸구려 제품으로 회귀하는 건 소비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호갱 기피현상의 배경을 정확히 읽어 기업의 판매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불황에 ‘호갱이 된다’는 건 소비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다. 지금 소비자들에게 호갱 탈출은 필수 생존전략”이라고 짚었다.

기업들도 ‘선택과 집중’으로 적극 대응에 나섰다. 생산·유통·판매·마케팅 절차 중 일부를 간소화하는 대신 값을 내렸다. 소비계층에 따른 타깃팅이 핵심. ‘싸구려의 진화’라 할 만하다. PB(자체브랜드) 상품시장의 급성장이 대표적이다. 소비자원 배순영 소비자시장연구팀장은 “소비자는 지불 가격에 비해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가장 불만이 크다”고 부연했다.


◆ 소비자 만족 못시키면 불황 악순환

‘로-엔드(low-end)’ 보급형 저가상품은 소비자 선택폭을 넓히고 가격경쟁을 촉발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안승호 원장은 2만원대에 육박한 프랜차이즈 치킨과 대형마트가 내놓은 1만원 미만의 PB 치킨 사례를 들어 비교했다. 그는 “경쟁구도가 형성될 때 가성비 좋은 제품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알뜰구매 수요를 반영한 기업간 경쟁이 불황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생산자 위주 사고로 칸막이 치고 경쟁을 막아선 안 된다. 소비자가 이득을 보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규제를 풀면 가격경쟁이 촉발돼 값이 저렴해지면서 소비가 진작된다. 그러면서 경기가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다이내믹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인 알뜰구매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불황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달 1일 시작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소비자 체감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사실이 이런 우려를 거든다.

하광옥 교수는 “가치소비 성향의 소비자들은 20~30% 할인해도 쉽게 사지 않는다. 원하는 상품이 아니면 아무리 싸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불황이 확대·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업종을 불문하고 소비자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 ‘취향 저격’ 맞춤형 상품을 내놔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rdquo;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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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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