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기업이 오죽하면 국사 시험 보겠나

입력 2015-10-21 18:22  

자학적 역사관으론 글로벌 경쟁 불가
올바른 역사를 모르는 신입사원들
채용 뒤에도 다시 교육시켜야 하니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중견기업 해외영업팀장으로 있는 후배 얘기다. 신입 2년차 부하 직원이 똘똘하고 영어도 잘하기에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미얀마 출장에 데려갔다고 한다. 상담을 마치고 밤 비행기를 타기 전 수입 업체 사람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있던 일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현지 업체 임원이 생각지도 않던 새마을운동 얘기를 꺼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도입돼 미얀마 농촌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에 좋은 국가 이미지만한 원군이 없다. 듣고만 있어도 흐뭇하던 터에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 말꼬리를 물었다.

“정부가 주도한 탓에 농민들의 권익 향상에는 도움이 되질 않았어요. 더욱이 농촌 사회를 통제해 독재 정권 정당화의 수단이 됐거든요.”

이게 무슨 소린가.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다. 후발개도국들이 의식개혁을 통한 농촌개발과 도농 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앞다퉈 배워 간다는 새마을운동이다. 자랑을 덧붙여야 할 판에 오히려 이렇게까지 폄하할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후배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그 직원에게 왜 그렇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2년 전 한 신문과 대학입시 정보업체가 여론조사를 했다. 고등학생 500여명을 대상으로 6·25전쟁이 남침인가, 북침인가를 물었다. 열 명 중 일곱 명이 북침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이 수석회의에서 이 결과를 거론하며 역사 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개탄했다. 그러자 야당과 좌파 매체가 둘러댔다.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달려 북한이 침략한 것을 북침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이다. 대통령이 잘못된 여론조사 결과에 낚였다고 빈정대면서 말이다. 정말이었을까.

올해 한 취업 정보업체가 20대 이상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같은 설문조사를 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질문에 남침, 북침 대신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는 표현을 썼다. 결과는 어땠을까. 20대의 절반 가까이가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고 답했다.

우리 젊은이들의 역사 인식이 이 모양이다. 이렇게 사회에 배출된 젊은이들이 과연 직장과 사회,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을까.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정작 입사에 성공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배워 오길 정경유착과 독점, 노동자들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재벌이다. 업무에는 소극적인데 제 회사 비난에는 적극적이다. 애사심이라곤 없다. 사회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세는 더더욱 없다.

기업들이 입사 시험에 역사 과목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국사가 수능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열 명 중 아홉 명이 제 나라 역사를 아예 배우지 않은 채 사회에 배출되기 시작한 시기다. 기업들이 자신들의 인재상에 맞는 젊은이를 찾기 힘들어지자 자체적으로 응시생들의 역사적 소양을 테스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웬만한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모두 역사 시험을 본다.

문제 패턴이 바뀐 건 최근의 일이다. 시험 초기에는 단순한 역사 지식을 객관식으로 물었지만 이제는 수험생의 역사관을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에세이까지 쓰도록 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좌편향 검정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의 역사관이 한심한데다 국사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도 사실(史實)에 기초하지 않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남북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6·25전쟁은 왜 발발했는지, 친일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교과서의 오류를 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래의 주역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한 채 대학과 사회에 배출된 지 벌써 10년이다. 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학생은 극소수이고 패배주의적이고 자학적으로 역사를 인식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취직을 하고 세계를 상대로 경쟁을 벌인다고 생각해보라.

오죽하면 기업들이 역사 시험을 보겠는가. 채용 뒤에도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하는 기업들이다. 정부의 역할을 떠맡은 셈이다. 이런 나라가 또 있는지. 한국 기업들은 이래저래 피곤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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