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개헌 논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입력 2016-07-05 17:16  

국회 권한 강화하자는 개헌 주장
국민은 없고 정략적 계산만 난무
국가와 인류에 모범 될 논의여야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20대 국회 들어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 연설에서 개헌을 20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고,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2017년 4월에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자는 설명 없이 무조건 개헌을 외치고 있지만 속내를 보면 권력 구조를 내각제나 이원집정제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이런 제안에 대해 대부분의 국회의원도 동조하는 양상이다. 대권 희망을 지닌 유력 예비후보와 그 지지자들은 개헌에 부정적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의원들이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개헌을 지지하고 있다.

따져볼 문제는 현재 상황이 개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난국인가이다. 한국 정치가 고(高)비용 저(低)효율인 것은 명백하지만 그 원인이 헌법에 있는가. 권력 구조만을 바꾼다고 갑자기 정치가 선진화할까. 실로 의문이다. 국회와 행정부의 대립을 얘기하지만, 이는 국회가 만들어 낸 부분이 크다. 국회법의 선진화 조항에 기대어 행정부 요구를 좌절시키고 ?차례 국회법 개정을 통해 행정부 권한을 더욱 약화시키려 시도한 결과다. 헌법을 손보지 않고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다.

대통령제의 승자 독식 구조를 문제 삼지만 내각제야말로 입법부의 다수당이 행정부까지 장악하는 더욱 철저한 승자 독식 체제다. 의회독재라는 말이 영국에서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리는 국회가 스스로 절제하고 금도를 지키지 못하는 판에 행정부까지 장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원집정제 또한 한국적 현실에서는 최악의 정치 체제가 될 공산이 크다. 4·19혁명 이후 내각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총리와 허울뿐인 대통령 사이에도 세력 다툼으로 극심한 정치 혼란이 빚어졌다. 이원집정제 하에서는 더욱 심각한 충돌을 겪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내각제도 이원집정제도 별반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집요하게 추진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행정부까지 장악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개헌 논의가 있을 때마다 나는 미국의 헌법을 떠올린다. 1787년에 30대 중반 사람들이 쓴 이 헌법이 2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대로 미국 정부의 기본 골격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놀라움은 《연방주의론(The Federalist)》을 읽고 나면 끄덕임으로 바뀐다. 《연방주의론》은 미합중국 헌법안의 인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의도에서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 세 연방주의자가 ‘푸블리우스(Publius)’라는 공통의 필명으로 신문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이다. 연방주의자들은 오래도록 지속될 정부 형태를 고안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분석을 1787년 상황에 한정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정부 형태를 전 인류를 위한 모델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분석을 미국이라는 공간에 국한하지도 않았다. 미국 헌법이 2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렇게 엄청난 고민과 궁리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해 지금 전개되고 있는 우리의 개헌 논의는 어떤가? 우선 개헌 논의가 전적으로 권력 구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울러 국가의 기본 골격을 대상으로 하는, 따라서 엄청나게 심오해야 할 논의가 정략적인 계산과 얄팍한 논리로, 그것도 국민과는 유리된 공간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절망을 느낀다.

개헌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헌 문제는 오늘의 한국만이 아니라 미래의 통일된 한국까지도 내다보면서 전 인류에 모범이 될 헌법을 쓰겠다는 자세에서 접근해야 한다. 권력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할까 하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이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들에게 큰 죄를 범하는 행위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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