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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파벌·실적주의 골병 든 일본 기업…'회계 스캔들'은 예고된 추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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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02 20:16  

[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파벌·실적주의 골병 든 일본 기업…'회계 스캔들'은 예고된 추락이었다

툭하면 터지는 회계부정
도시바·후지제록스·올림푸스…일본 대표 기업들 수조원대 분식
회계 투명성 평가서 35위로 '뚝'

살벌한 실적압박이 문제…계열사 CEO 간 매출경쟁 치열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해외사업…부정행위 은폐에도 속수무책



[ 도쿄=김동욱 기자 ]
도시바, 후지제록스 같은 굵직굵직한 일본 대표 기업들이 올 들어 잇따라 회계부정 스캔들에 휩싸였다. ‘신뢰를 중시하고 일처리가 정확하다’는 일본 기업의 명성에도 금이 가고 있다. 선진국 기업이어서 회계가 투명할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일본 기업은 뿌리 깊은 회계부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

만연한 회계부정

포브스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하나인 후지필름홀딩스는 지난달 13일 산하 손자회사인 후지제록스에서 드러난 회계부정의 책임을 물어 야마모토 다다이토 회장 등 고위 임원 여섯 명을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2010~2015년 뉴질랜드와 호주 판매법인에서 복합기 임대사업을 둘러싼 회계부정이 발생해 6년간 375억엔(약 3833억원)의 손실을 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뉴질랜드 현지 언론 등을 통해 일찍부터 회계부정 의혹이 제기됐지만 후지제록스 현지 법인은 물론 본사 고위 임직원들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사태를 덮는 데 급급했다.

142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대표 기업 도시바의 회계분식 충격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후지제록스 사태가 불거지면서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앞서 도시바는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경영 손실을 감추기 위해 지난 7년간 2248억엔(약 2조3000억원)을 분식한 사실이 드러났다. 도시바는 회계부정 스캔들과 관련해 26건의 소송에 직면해 있다. 소송 가액만 1084억엔(약 1조1100억원) 규모다. 일본에선 도시바와 후지제록스 사례가 예외라고 강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기업에 앞서 올림푸스, 가네보, 라이브도어, 후나이덴키, 리코, OKI 등 대형 회계부정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회계 정확성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회계투명성 평가에서 일본은 138개국 중 회계신뢰도(35위), 회계제반여건(22위), 윤리 및 부패수준(20위) 등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그늘

구멍가게도 아닌 국가대표급 기업에서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일본 기업들을 옭아매는 매출 지상주의다.

일본 기업은 아직까지 대규모 기업집단이 계열별로 선단식 운영을 하던 옛 전통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영진은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 대부분이다. 그룹 전체로는 한쪽의 이익을 빼서 어려운 계열사를 돕는 문화가 남아있지만, 개별 경영자 차원에선 살벌한 실적 경쟁이 빚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개별 기업 내에서도 파벌 간 경쟁의식이 강하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도시바의 경우 ‘가전계’와 ‘인프라계’ 간 파벌 경쟁이 경영 부실을 키운 원인이 됐다. 일본 경영자들은 사내 파벌싸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회계장부에 손을 댔다. 사내 권력을 유지하고 사회적 명성을 지키기 위해 적자 기록 등 책잡힐 만한 결과를 피하려 했다.

최고위급의 실적 경쟁은 부하직원에게 전가됐다. 예를 들어 임원진이 각 사업부문 책임자에게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3일 만에 12억엔의 수익 개선을 요구하면 각 부문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비용계상을 미루거나 이익을 과다계상하는 회계부정을 자행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후지제록스에서도 해외 자회사 임원 등의 보수가 매출에 연동돼 있어 실적 부풀리기를 부추겼다.

해외 사업부가 ‘지뢰밭’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상당수 회계부정 사고가 해외 자회사에서 불거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기업에 만연한 회계부정이 일본 내에서는 어느 정도 감춰질 수 있지만 해외에서까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해외 법인들이 회계부정의 ‘약한 고리’인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일본 기업들이 인구 감소와 내수시장 축소로 해외 진출을 늘린 반면, 해외 자회사와 손자회사 등에 대한 관리체계를 제대를 갖추지 못한 점도 회계부정을 키운 자양분으로 지목된다. 현지에서 인연이 얽힌 임원들이 단단한 파벌을 형성해 조직적으로 회계부정을 은폐하고 시정 조치를 미뤘다는 것이다.

일본의 허술한 회계관련 법·제도와 규제도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일본 기업은 일부 글로벌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하지 않은 곳이 많다.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회계 관행이 적잖게 남아있고 회계분식에 대한 처벌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비상장기업의 경우 결산서류에 허위 기재하더라도 상법상 100만엔(약 1022만원)의 과태료에 그친다.

분식회계에 대한 조사 및 사후조치 권한이 금융청에 있지만 직원이 400여 명에 불과하고 조사 대상자의 임의조사권, 압수·수색영장 신청권 등 강제 조사권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일본 회계사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업무도 회계사 모임인 일본공인회계사회(JICPA)가 담당하고 있다. 엄정한 감시가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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