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모래시계'

입력 2018-01-04 18:20  

인물들에 초점 맞춰 풀어낸 창작 뮤지컬
무대라서 특별한 예술적 체험이 즐거워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



영상을 가져와 무대용 뮤지컬로 제작하는 작업이 인기다. 영화나 드라마가 원작인 작품들이다. 아무래도 고가로 여겨지는 문화체험인 뮤지컬을 관람하는 관객은 자신이 부담하는 비용의 가치를 따져보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더 좋고, 더 재미있고, 의미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이미 좋아했거나 잘 알고 있는 스토리를 무대용 뮤지컬로 각색해 즐기는 경향은 그래서 나타난 문화산업의 진화다. 내용은 익숙하지만 형식이나 특성, 구현방식은 전혀 새롭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를 활용한 부가가치 재생산인 셈이다.

창작 뮤지컬 ‘모래시계’는 이런 글로벌 트렌드의 전형적인 사례다. 1980년대 격변기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카지노 사업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 사랑, 배신 그리고 죽음이라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한 얘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귀가시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정말 서울 중심가에 차량 이동이 줄어들기도 했다. 심지어 강원 강릉 정동진 기차역에서 여주인공이 기대 서있었다는 나무는 ‘고현정 소나무’라 불리며 이 지역 최고의 관광명소로 인기를 누릴 정도였다. 1995년 자그마치 64.5%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달성하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남겼다.

무대에서는 춤과 노래, 연기가 어우러진다. 24부작 장편 TV드라마를 3시간 남짓의 뮤지컬로 압축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일단 제목에서부터 그 시절을 아는 대중이라면 절로 눈길이 가는 솔깃한 유혹을 담아낸다. 사실적인 묘사가 용이한 영상과 달리 현장예술로서의 속성이 강한 무대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인물들에게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얘기를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조직폭력배 태수와 카지노업장의 회장 딸 혜린, 정의로운 검사 우석의 삼각관계도 드라마와 다를 바 없고, 목숨 바쳐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내는 보디가드 재희의 인기도 여전하다.

그러나 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정보기관의 음흉한 설계자인 도식이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을 조롱하고 음모를 꾸미며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그의 모습은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난이 담겨 있다. 극 종반부에 그가 노래하는 ‘나의 배후’는 요즘 대한민국의 국정농단과 현실 정치에 빗대어 봐도 여전히 설득력이 강하다. 무대를 헤집고 다니며 비열한 미소로 춤추고 노래하는 그의 이미지는 극이 끝나도 한참 뇌리에 남아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줄 알았어” 같은 드라마 속 명대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작사와 각색까지 1인 3역을 맡은 조광화 연출은 “그러잖아도 연습 때 배우들에게 시켜봤더니 폭소만 터져나왔다”는 답변을 들려줬다. 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아우라를 무대에서 고스란히 재현할 수는 없다. 대신 무대라서 가능한, 무대니까 볼 수 있는 예술적 체험의 확장을 선보인다. 확실히 수입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왕족의 사랑이야기나 무도회 풍경보다 생동감 있고 정서적인 페이소스도 진하다. 창작 뮤지컬이라 가능한 반가운 이유기도 하다.

기대보다 다양한 연령의 관객이 무대를 찾는다는 후문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흥행 콘텐츠의 재활용이 반갑다. 새로운 한류의 모색 못지않게 익숙한 콘텐츠의 부가가치 극대화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임을 알게 한다. 안주하기보다 과감한 도전을 선보인 제작진에 박수를 보낸다.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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