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주영걸 현대일렉트릭 사장, 독자기술 개발로 '시련의 10년' 정면 돌파

입력 2018-01-30 17:42   수정 2018-01-31 09:03

1980년대 전력기기 국내시장 막히자 일찍부터 해외시장 뚫어
지금은 美·日에도 수출…GE 지멘스 ABB와 어깨 나란히

공학도 출신 '초대 사령탑'
지난해 현대중공업에서 분사
선박 전력인프라시장 세계 1위
2021년엔 매출 5조원 목표

'문전박대' 딛고 기술개발
해외시장 개척으로 돌파구
수출형 사업구조로 탈바꿈

소통의 기업문화 전도사
"남에게 묻어가려하지 말라"
1박2일 조직문화 캠프 열어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 심어줘



[ 안대규 기자 ] 1970년대 중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조선소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방문했다. 하지만 당시 가장 많이 얻어온 것은 전력기기사업 아이디어였다. 정주영 회장은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웅장한 선박을 만드는 사업보다 전력기기 매출이 더 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현대중공업 내 ‘전기쟁이’들을 불러 모아 1978년 현대중전기를 설립했다. 40년이 지난 현재 배전기기, 차단기, 변압기 제조에서 국내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한 현대일렉트릭은 이렇게 탄생했다. 현대중전기는 1993년 현대중공업에 합병돼 중전기사업본부 형태로 있다가 2001년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로 명칭을 바꿨고, 지난해 현대일렉트릭으로 분사해 독립했다. 초대 사령탑은 주영걸 사장이 맡았다. 현대일렉트릭의 주된 매출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공장과 가정에 공급하는 송·배전용 장비와 시스템에서 나온다. 그는 “전기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산업 시대를 이끄는 핵심 기술은 모두 전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며 “전력 수요가 늘고 있어 전력기기 업종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오랜 기술 독립의 꿈

주 사장이 1983년 현대중전기에 입사했을 때 회사는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정부가 중복·과잉 투자된 중화학업종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전력기기업계에 강제력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시 변압기 시장은 효성, 차단기 시장은 금성계전(현 LS산전)으로 사업자를 단일화했다. 현대는 국내 전력기기 판매를 10년간 금지당해 당장 수출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당시 현대중전기의 모회사인 현대중공업은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현대자동차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앞선 국내 1위 기업이었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이어서 영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주 사장은 “현대를 아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며 “수주 상담을 신청해도 ‘오지 말라’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더욱이 당시 국내 전력기기 사업은 아직 태동기여서 외국 업체에서 비싼 값을 주고 기술을 사와야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주 사장을 포함해 일부 직원은 작은 기술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해외 선진업체로 자주 단기 연수를 떠났다. 현지에서 휴지통에 버려진 도면을 줍거나 도서관에서 신기술 관련 내용을 통째로 적어 왔다. 기술 수입에 따른 영업상 한계도 많았다. 선진국의 원천기술 업체들이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 자주 개입했고, 특정 국가 수출을 막기도 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참 서러웠던 시절”이라며 “현대가 이를 악물고 기술 경영에 총력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학도인 주 사장은 팀장 시절부터 손쉽게 수입하는 길 대신 어렵더라도 자체 개발하는 노력을 주도했다. 1990년 회사가 독일 지멘스에서 60만달러에 회전기 절연시스템을 수입하기로 하자 주 사장은 “우리가 만들어 보자”고 막아섰다. 회사도 결국 독자 개발로 선회했다. 그때 개발한 기술은 미국 일본 등에 수출하는 세계 일류 기술로 발전했다.

정부가 국내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린 10년간 현대중전기는 수출 중심 사업구조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는 ‘10년의 시련’이 자양분이 됐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인 코리아’ 전력기기의 평판을 높여놨죠. 효성, LS산전 등 경쟁사들이 수출을 잘하게 된 것도 우리 덕을 좀 봤을 거예요.”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

그는 2014년 현대중공업 전기전자시스템 사업 대표(전무)를 맡아 해외시장 개척을 주도했다. 현재 매출의 61%가 해외에서 나오고 세계 17개 지사에서 3600개 기업과 거래하는 글로벌 전력기기업체가 된 것도 당시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현대일렉트릭은 전력인프라 분야에서 제너럴일렉트릭(GE), ABB, 지멘스, 슈나이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 계열사답게 선박 쪽 전력인프라 시장에선 점유율 30~40%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현대일렉트릭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변압기는 국내 최대인 연간 12만메가볼트암페어(㎹A)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변압기 시장 점유율은 ABB, 지멘스, GE 등에 이어 5위다. 일찍부터 중동지역 수출시장에 눈을 뜬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시장 점유율 1위다.

그는 “동남아를 비롯해 선진국에서도 정전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전력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변압기 고압차단기 등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사장은 동남아 북미 중동 쪽에서 추가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 및 서비스법인을 신설하고 2020년까지 신흥시장에 4개 지사를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동남아 전력인프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태국지사도 설립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전력인프라 투자는 2030년까지 연평균 98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대일렉트릭의 작년 매출은 2조20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주 사장은 4년 후인 2021년 실적 목표를 현재의 2배 이상으로 잡았다. 현대일렉트릭의 2021년 매출 목표는 5조원, 영업이익은 5000억원 규모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고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전력인프라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미국의 1인당 주거용 전력소비량은 4395㎾h로 한국(1274㎾h)의 3.4배에 달한다”며 “모든 가전제품이 IoT로 연결되고 전기차가 도로를 가득 메우는 시대가 도래하면 전력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문화 개선엔 ‘소통’이 최고

최근 들어 현대일렉트릭의 가장 큰 변화는 지난해 4월 단행한 분사다. 현대중공업의 한 사업부로 있다가 독립하면서 경영 효율이 높아지고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초대 사장으로 부임한 그의 눈에는 아직 조선업에 의존하는 직원들의 옛 습성이 보였다. 주 사장은 “현대일렉트릭은 오랜기간 현대중공업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남의 실력으로 성과를 평가받아온 측면이 있었다”며 “우리(전력기기사업)가 잘돼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었고 다른 사업이 잘되면 같이 ‘묻어 가는’ 잘못된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주 사장은 직원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30차례에 걸쳐 주말마다 1박2일 조직문화 캠프를 열었다.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생산·설계·연구·지원 부문 간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주 사장은 3000명에 가까운 현대일렉트릭 임직원의 이름과 담당 업무를 모두 외운다. 휴대폰에는 모든 임직원의 연락처와 생일 및 결혼기념일이 저장돼 있다. 해당 날짜가 되면 직접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축하해준다.

"ESS·에너지솔루션이 미래 먹거리…R&D 투자, 매출액의 5%까지 늘릴 것"

산업용 ESS 분야 세계 1위

주영걸 현대일렉트릭 사장(사진)은 산업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미래 먹거리로 삼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ESS란 전기가 남을 때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어 전력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여름철 전력 부족 사태를 막고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설비다. 현대일렉트릭은 산업용 ESS 분야에서 세계 최대 업체다. 작년엔 고려아연에서 세계 최대인 150㎿h 규모 산업용 ESS를 수주했다. 지난해 전체 수주액은 2000억원가량. 목표치의 두 배를 달성했다. 주 사장은 “고객에게 ESS 수주를 상담 중인 것만 1기가와트(GW)로 금액으로는 5000억원이 넘는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한 정유·화학·제철업계에서 수주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일렉트릭이 설치한 ESS의 에너지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 세워진 현대일렉트릭의 50㎿h 규모 ESS는 투자에 439억원이 들었지만 연간 절감 효과는 150억원에 달한다. 3년 내 투자 원금 회수가 가능한 것이다.

기술 중심 경영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R&D 예산을 작년 대비 36% 증가한 850억원으로 책정했다. 현대일렉트릭은 매출 대비 R&D 비중을 현재 3.5% 수준에서 2021년 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연구인력도 올해 말까지 30% 증원해 310명가량으로 늘릴 계획이다.

현대일렉트릭의 또 다른 미래 성장동력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에너지 솔루션사업이다. 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세계 1위 사물인터넷(IoT) 기업인 미국 PTC와 제휴를 맺고 ‘인티그릭’이라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전력에너지 생산·소비·판매·운영 시스템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에너지 솔루션’과 자동화된 선박운용 체계를 구축해 안전하고 경제적인 운항이 가능한 ‘스마트십 솔루션’, 전력설비 운영을 최적화한 ‘전력설비 자산관리 솔루션’ 등을 이 플랫폼에 담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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