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봉서·배삼룡… 격동의 시대에도 '웃음' 있었다

입력 2018-02-08 18:55  

웃음의 현대사

김영주 지음 / 웨일북 / 384쪽│1만5000원



[ 서화동 기자 ] 해방 직후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와 그의 형 김용환이 운영하던 태평양가극단에서였다. 악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객의 흥을 돋우는 코미디 배우가 나타나지 않았다. “야, 아코디언! 네가 해. 맨날 봐서 대충 알잖아?” 김용환의 한마디에 악사는 순식간에 희극 배우가 됐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얼떨결에 무대에 섰지. 앞이 깜깜하고 정신이 없었어.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대사를 막 지어가면서 했어. 그런데 손님들이 웃고 난리더라고.” 그는 바로 배삼룡, 서영춘과 함께 한국 코미디언 1세대의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린 구봉서였다.

《웃음의 현대사》는 그대로 20세기 이후 일제강점기와 전쟁, 분단의 역사 속에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웃음으로 달래준 사람들의 역사요, 방송문화사다. 20세기 초 ‘한국형 뮤지컬’로 등장한 신파극과 악극의 스타 배우들, 월급이 주인공의 세 배나 됐던 무성영화 변사들, 만담으로 조선 팔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신불출, 1920년대부터 1980년대 초 컬러TV가 등장하기까지 전성기를 누린 라디오 성우들, TV 방송의 시작과 현재의 예능 전성시대에 이르기까지 별별 이야기가 이어진다.

1961년 최초의 국영 TV인 KBS가 설립됐다. 3년 뒤에는 동양방송(TBC)이, 1969년에는 MBC가 개국해 지상파 3사 시대가 열렸다. 당시 주말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격전지였다.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가 대박을 치자 TBC는 MBC에서 배삼룡을 데려오기로 했다. 하지만 첫 녹화하는 날, 배삼룡이 실종됐다. 눈치를 챈 MBC PD들이 배삼룡을 납치한 것. 두 방송사 PD들이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결투를 벌인 끝에 배삼룡은 MBC에 남고, TBC는 서영춘과 송해를 영입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좋았군 좋았어’였다.

저자는 1980년 12월 컬러TV 등장과 함께 시작된 안방극장의 변화, 개그맨 공채 시대와 ‘유머 1번지’를 필두로 한 코미디 콩트의 인기, 서울방송(SBS) 설립으로 다시 촉발된 3사 경쟁체제, 1990년대 밤을 수놓은 토크쇼, 밀레니엄 시대와 함께 등장한 리얼버라이어티 등 웃음의 변화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웃음의 역사가 그 시대와 동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한 점도 돋보인다.

지금은 예능의 전성시대다. 개그맨들의 토크쇼 정도로 시작된 예능이 지금은 시사, 음식, 여행, 학습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출연자도 정치인, 웹툰작가, 학자, 건축가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 모든 변화·발전에 개그맨으로 대표되는 방송인과 PD, 작가의 고뇌와 분투가 들어있다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웃는 것은 쉽지만, 웃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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