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낙타와 함께 노을 속으로… 호주와 사랑에 빠지다

입력 2018-02-11 15:23  

가는 곳마다 새로운 서호주

기암괴석 가득한 갠시엄 포인트… 1억년 前 공룡 발자국 찾아볼까




얼마 전 싱가포르 여행 중 우연히 호주사람들을 만났다. 반가워서 내가 다녔던 호주를 얘기했더니 부러워한다. 그들은 호주 여행을 시작했다가 모두 다닐 수 없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렸다고 했다. 어쩌면 정답이다. 가는 곳마다 끝없는 새로움이 존재하는 대륙. 호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은 호주의 서북부 브룸에서 더비로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소개한다.

브룸=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항공기를 낮은 높이에서 볼 수 있는 브룸 공항

브룸 공항에 도착했을 때 두 가지에 놀랐다. 내가 지나온 호주의 다른 곳과 극심한 기온 차, 생각보다 작은 공항 규모에. 비행기 문이 열리자 뜨겁고 텁텁한 공기가 기내로 몰려들어왔다. 이날 기온은 40도. 며칠 전 머무른 멜버른은 영상 10도를 오르내렸다. 계절이 바뀐 기분이다. 한국은 영하로 뚝 떨어진 날이었다.

공항은 마치 우리나라 시골의 버스 터미널을 연상시킨다. 그것도 군이나 읍 단위가 아니라 면 소재지에 있는 작은 터미널. 하지만 이런 브룸 공항도 매력이 있었다. 순위를 매기는 여러 사이트에서 착륙하는 항공기를 가장 낮은 높이에서 볼 수 있는 마을로 브룸을 꼽는다. 낮은 건물만 있는 마을도 이유가 되겠지만, 순전히 공항 덕분이다.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비행기가 착륙하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놀란다. 직접 봐야 더 실감난다.


브룸을 다니다 보면 ‘이 마을에 사람이 몇이나 살고 있을까?’ 생각이 들 만큼 고요하다. 관광이 한창인 계절이 아니면 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고, 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은 호주 원주민인 에보리진을 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브룸엔 특별한 것이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서쪽 바다에 붉게 노을이 깔릴 때 낙타를 타고 케이블 해변을 걷는 선셋 프로그램이다. 워낙 유명해서 ‘브룸’ 하면 ‘낙타 투어’가 나올 만큼 이곳의 백미다. 계절마다 다른데 비수기에도 최소 두 개 이상의 투어 회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가한 날도 전날 예약하지 않으면 탈 수 없다.

공룡 발자국 선명한 일몰 명소

약 22㎞에 걸쳐 길게 이어진 백사장이 붉게 물들면 보통 장관이 아니다. 이때 로프로 이어진 낙타 행렬이 해변을 거닐면 노을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낙타에 올라 해변을 거닐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추억이 된다. 낙타등이 생각보다 높아 마치 거인의 목말을 타고 해변을 걷는 기분이다. 사진 찍는 사람에겐 엄지를 치켜세울 만한 일몰 명소다. 마을 한가운데엔 100년을 훌쩍 넘긴 야외극장이 있다. 1916년 세워진 선 픽처스다. 야외극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지금도 매일 밤 영화가 상영된다. 고전 영화를 상영할 법도 한데 오래된 건물, 장식물과는 반대로 디지털 영사기로 최신 개봉작을 상영한다.


케이블 해변에서 일몰을 만끽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몰렸다. 신기한 것은 다들 한 손에 이불과 베개, 쿠션 등을 가지고 왔다는 것.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은 피자와 콜라, 치킨 등을 포장해서 왔다. 정다워 보인다. 이들은 일상인 양 의자에 기대어 눕고 가져온 음식을 먹는다. 처음 보는 풍경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곧 불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됐다. 그런데 밤하늘에 눈이 더 간다. 공기가 워낙 맑아서 하늘에 별이 가득 보인다. 극장에서 보는 별은 새로웠다.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아름답다. 브룸이 서호주의 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룸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선명한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케이블 비치 남쪽 끄트머리 갠시엄 포인트에는 기암괴석이 가득하다. 이곳 암석 위에 약 1억3000만 년 전에 찍힌 공룡 발자국이 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를 비롯해 여러 공룡의 발자국이 있는데 가이드와 동행하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필자는 혼자 찾아보겠다고 몇 시간 애쓰다가 다른 나라 관광객의 도움으로 두 개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심봤다’라는 말은 산삼을 발견했을 때만 외치는 게 아니었다.

킴벌리에서 볼 수 있는 바오밥나무

브룸을 벗어나면 바로 적막과 마주한다. 북쪽으로는 멀리 쿨자만까지 길이 나 있다. 붉은 모랫길과 포장도로를 반복하며 약 210㎞를 달린다. 모래로 된 길은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속도를 내도 6시간이 걸린다. 이곳 사람들은 쿨자만에 갈 일이 있을 때 왕복 이틀을 잡는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두어 번 다녀오니 이들이 현명했다.

동쪽 내륙으로 이어진 길은 서호주의 아웃백 킴벌리로 향한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등장하는 장면 대부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사실 서호주 북쪽은 바오밥으로 유명하다. 브룸을 벗어나 더비로 향하는 약 220㎞ 여정에서 크고 작은 바오밥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브룸은 명실상부한 호주 북서부의 중심이다. 브룸을 중심으로 주변에 서호주 자연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순서로 따지자면 ‘말콤 더글러스의 악어농장’이 먼저다. 케이블 비치에서 약 20㎞ 떨어진 외곽에 악어농장을 알리는 푯말이 있고 안쪽으로 대규모 시설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호주의 유명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였던 말콤 더글러스가 1984년 조성한 시설이다.

호주에 사는 크고 작은 악어는 물론 전 세계에 서식하는 악어 1000여 마리가 자연 생태 그대로 살고 있다. 악어 동물원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악어의 서식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에 놀랐다. 실제로도 이곳은 악어 관람이 주목적이 아니다. 점점 줄고 있는 악어의 생태계를 보존하고 개체 수를 확보하는 한편 관람객을 통해서 멸종돼 가는 동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고 운영하고 있다.

새 조망시설 갖춘 브룸 새 관측소

악어를 위한 시설이다 보니 매일 오후 2~5시까지 딱 3시간만 운영한다. 이 시간엔 관리자가 방문객에게 악어 종류와 함께 멸종위기종 보호에 관한 설명을 한 뒤 먹이를 준다. 하지만 악어를 보호해야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도 5m가 넘는 악어가 커다란 닭을 한 입에 삼키는 걸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악어를 보호해야 하지만 무서운 건 사실이다.

악어 농장 지척에는 브룸 새 관측소가 있다. 세계적인 새 조망시설로 이 일대에서 325종 이상의 새를 관측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한 철에 200여 종의 새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도요새만으로는 호주의 총 3분의 1 이상, 전 세계 4분의 1 이상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리처드. 그는 애들레이드에서 태어나 줄곧 살다가 정년 퇴임 후 이곳으로 날아왔다고 했다. 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남은 인생은 자연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40도가 넘는 기온에도 매일 관측소 곳곳을 돌며 그날 발견한 새를 종이에 적었다. 그는 새가 놀랄까 봐 말소리도 낮추고, 걸을 때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걸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한다는 식의 거창한 생각보다는 자연을 위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걸 했으면 해요. 자연보호는 말보다 실천이 먼저입니다.” 그가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세계 양식 진주 80~90% 생산하기도

브룸을 벗어나 붉은 모랫길로 접어들었다. 차 두 대가 겨우 달릴 정도의 좁은 길 양옆으로 낮은 언덕이 형성됐다. 길은 좁아도 정말 좁다. 한참을 달려도 사람 한 명, 차 한 대 나타나지 않는 적막함. 이따금 길옆에 십자가와 함께 옷가지, 액세서리 등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내려서 보니 무덤이다. 차가 다니는 길 한편에 무덤이라니. 며칠 뒤 길옆 비슷한 무덤에 에보리진 여럿이 서 있는 것을 봤다. 다가가 물어보니 자기 형제의 무덤이라고 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그 길에 묻는다고. 서호주를 다니며 길가 무덤을 많이 지나친 것 같아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브룸 북쪽으로는 베이, 즉 만(灣)의 연속이다. 브룸에 마을이 생기고 도시로 발전하기까지 이곳 베이의 역할이 컸는데 그 이유는 진주 때문이다. 아마 1800년대에 진주조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브룸은 여전히 바닷가 인근 사막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조선이 강화도 조약으로 불평등하게 문호를 개방했던 시절, 이곳은 진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소가 돼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곳 진주를 세계에 알린 것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거점을 마련하고 진주 양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덕분에 브룸은 한때 세계 양식 진주의 80~90%를 생산하기도 했다. 브룸 곳곳에는 당시 일본인이 사용한 잠수 장비와 진주 양식 도구,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브룸은 여전히 진주 양식으로 유명하다. ‘윌리 크릭 펄스’나 ‘시그넷 베이 펄스’ 같은 전문 양식장을 방문하면 다양한 진주를 구경하고 목걸이나, 반지,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살 수 있다.

여행 정보

브룸은 한국에서 떠나는 직항이 없다. 시드니나 멜버른 등으로 이동한 뒤 호주 국내선을 이용해 찾아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브룸에서는 반드시 차량을 렌트하자. 일대에 가까운 명소가 없는 데다 대중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렌트가 필수다. 국내에서 국제면허증을 발급해 가면 차는 쉽게 빌릴 수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흙길이 많아 차량은 반드시 사륜구동을 빌려야 한다.

낙타를 타고 일몰을 볼 수 있는 선셋 프로그램은 물론 숙소 예약, 액티비티 프로그램 등 모든 편의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브룸 방문자 센터’를 찾으면 상담 후 직접 도와준다. 브룸을 찾기 전 먼저 브룸 정보 사이트를 방문해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비용을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브룸은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내리면 도로가 끊기기도 하고, 건조한 날이 이어지면 번개가 쳐서 대지에 불이 나기도 한다. 게다가 마을만 벗어나면 전화가 불통이라 작은 사고에도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킴벌리로 여행할 땐 반드시 차량과 함께 GPS(위성항법장치) 수신기, 무전기 등 안전장비를 빌리는 게 좋다. 길에서 자야 할 수도 있으니 침낭이나 비상식량 등을 챙기는 것이 좋다.

브룸=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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