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가장 흔한 노랫말 사랑일 것 같죠? '나'와 '너'래요~

입력 2018-03-15 19:05   수정 2018-03-16 05:37

노래의 언어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364쪽 / 1만6000원



[ 서화동 기자 ]
유행가 또는 대중가요로 불리는 국내 최초의 가요는 1923년 유성기 음반으로 발매된 ‘희망가’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그러나 창작곡이 아니라 번안곡이다. 영국의 제러미아 잉갈스가 1885년에 만든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가 일본에서 ‘새하얀 후지산 기슭’이란 노래로 불렸고, 이를 번안한 게 희망가였다. 이후 약 한 세기에 걸쳐 수많은 노래가 쏟아져 나왔다. 2017년 말 기준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노래는 60만4000여 곡. 중복 집계된 걸 뺀다 치더라도 어머어마한 숫자다.

국어학자인 한성우 인하대 교수가 쓴 《노래의 언어》는 노래를 구성하는 두 요소, 즉 음악과 가사 중 가사를 분석한 책이다. 한 교수는 “박제된 말이 아니라 삶 속에 살아있는 말을 살피려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노래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노래방 책에 실린 노래를 중심으로 2만6250곡을 추려냈다. 이어 선별된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울산대 한국어처리연구실의 형태소분석기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 결과 노래 제목만 해도 원고지 2600여 장, 가사는 7만5000장에 달했다. 노랫말과 일상어를 비교하기 위해 1400만 어절로 된 일상언어 말뭉치 데이터도 활용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흘러간 유행가부터 아이돌그룹의 K팝과 힙합까지 시대별 흐름과 변화를 읽어낸다. 노래를 통해 한 세기의 삶과 사랑, 시대의 편린을 읽어낸 ‘노랫말의 인문학’이다.

저자는 한국 대중가요사를 다섯 시기로 분류했다. 1기는 최초의 노래부터 6·25전쟁까지, 2기는 한국 가요가 틀을 잡아가는 1950~1960년대, 3기는 포크 음악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1970~1980년대, 4기는 발라드 음악이 주류를 이룬 1990년대, 5기는 댄스와 힙합이 대세인 2000년 이후다. 인문서로는 드물게 계량언어학을 적용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유성기 음반은 가요를 유행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25㎝를 조금 넘는 판의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노래의 길이가 3분 남짓이었기 때문. 그래서 노래의 길이를 여기에 맞춰야 했다. 이후 나온 LP는 한 면에 20분 이상, CD는 75분 이상으로 늘었지만 애초에 정해진 노래의 길이는 오래 유지됐다. 달라진 것은 노랫말의 길이다. 1기에 158.4자였던 노래 한 곡당 가사의 평균 글자 수는 3기엔 197.6자, 4기엔 346.7자, 5기엔 486.4자로 급증했다. 노래를 담는 매체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노래가 과거보다 빨라지고 랩이 포함된 노래가 급증한 것도 원인이라고 한 교수는 분석했다. 반면 1기에 5.0자이던 노래 제목 글자 수는 5기에도 5.7자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노랫말은 죽어 있는 단어와 문장의 조합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노래로 불리기 위해 다듬어진 말이고, 부르고 듣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것이 노랫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노래에 담긴 시와 번역된 노래, 후크송을 비롯한 후렴의 반란, 금지된 노랫말 등 다양한 시선으로 가사를 분석한다. 또 노랫말의 주체, 사투리, 거기에 담긴 가족과 우정·사랑 등의 감정, 노랫말의 계절·시간·공간적 배경 등을 통계치와 함께 흥미롭게 바라본다.

저자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명사 중 사랑의 빈도는 104위지만 노래 제목에서는 압도적 1위, 가사에서는 4위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래가 사랑 타령 일색은 아니었다. 사랑이 등장한 최초의 가요는 비극적 현해탄 로맨스로 유명한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였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인 노래는 가요사 1기에는 2.19%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11.03%까지 급증했다. 여기에 ‘러브’ ‘love’까지 포함하면 65.2%로 훌쩍 뛴다. 작사가 가운데 ‘사랑’ 노래의 비중이 가장 큰 사람은 SG워너비와 조은희였다.

가사에 사랑보다 많이 나오는 말이 있으니 ‘나’와 ‘너’였다. 저자는 그래서 노래를 재정의한다. 노래란 1인칭이 2인칭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 즉 ‘나와 너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방언 연구자로 이름이 알려진 저자는 노래 가사에 담긴 방언에도 주목한다. ‘야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꿀 발라스났드나’라는 장미여관의 ‘봉숙이’, 제주도 사투리로 노래한 혜은이의 ‘감수광’,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문희옥의 ‘천방지축’ 등과 함께 저자가 주목한 노래는 뜻밖에도 방탄소년단의 2013년 노래 ‘팔도강산’이다.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 불따고 전하랑께 우린 멋져부러 허벌라게(중략) 오늘은 사투리 랩으로 머시마 가시나 신경쓰지 말고 한번 놀아봅시더.’

저자는 “방탄소년단이 힘든 연습생 시절에도 꽤 잘 쓴 노랫말”이라며 “구구절절 옳아서 상을 주고 싶다”고 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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