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모사드의 정보력

입력 2018-05-02 17:47  

허원순 논설위원


청나라 최(最)전성기를 ‘강건성세’ 또는 ‘강옹건성세’라고 한다. 강희부터 건륭까지 세 황제 시기를 일컫는 말인데, 가운데가 옹정제다. 그는 냉정하고, 매일 새벽부터 온갖 보고서를 꼼꼼히 읽은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전해진다. 강희가 수천리 길 남방순례도 나섰던 것과 달리 옹정은 자금성 안에서만 제국을 경영했다.

재위 13년간 청의 국경을 가장 넓게 한 옹정 체제의 현실적인 힘은 기무정치였다는 분석이 있다. 정보를 활용해 제국 내 동향을 장악하고 절대권력을 공고히 해 나간 여러 일화는 이월화의 대하소설 《옹정황제》에 박진감 있게 잘 묘사돼 있다.

정보기관 운영에서는 제국을 경영해 본 나라들이 앞선다. 영화 ‘007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영국의 MI5, MI6가 그렇다.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MI5, 해외담당으로 알려진 MI6는 1909년 창설됐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1989년에 이르러서야 ‘보안법’ 제정으로 공식 지위가 생겼다. 아프리카 국가 중 다수가 친(親)프랑스 노선을 밟는 것은 식민지 시대 이래 프랑스 정보기관의 은밀한 활동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CIA와 옛 소련의 KGB를 빼고는 정보기관을 말하기 어렵다. CIA가 없다면 할리우드 영화업계가 버텼을까 싶을 정도다. ‘케네디 암살 배후설’에도 그럴듯하게 등장한 걸 보면, 정보기관의 촉수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게 미국도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앞두고도 곳곳에서 CIA가 오르내렸다. 중국도 세계 각지로 나간 언론매체가 국가 정보기관 ‘국가안전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보기관 하면 역시 모사드”라는 말이 또 나오게 됐다. 이스라엘이 ‘적국 수도’인 이란 테헤란의 비밀 창고를 급습해 5만5000쪽 분량 문서와 CD 183장을 빼내 “비밀 핵개발의 증거”라며 공개한 것에서 모사드의 정보력이 확인됐다. 은닉지를 찾아내고도 왜 2년이나 추적해왔는지, 500㎏의 문서를 어떻게 반출했는지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엔테베 작전’ 만큼이나 이스라엘의 정보역량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파란이다. 이란으로서는 황당한 침탈이겠지만, 생존을 위한 이스라엘의 몸부림은 그만큼 강하고 거칠다. “지략이 없으면 망하지만, 지략이 있으면 평안을 누린다”(구약 잠언)를 모토로 삼는 모사드를 ‘기드온의 후예’라고도 한다. 정보력으로 수백 배의 적을 이겼다는 구약의 영웅, 그 기드온이다.

개방이 확대될수록 정보기관 역할도 더 중요해진다. 이들이 무능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요즘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어떤가. ‘스파이 총대장’이 신문지면에 자주 보이는 게 오히려 불안하다. 길고 힘들게 이어질수 있는 협상의 초입에서 ‘격정의 눈물’까지 보였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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