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쿠바 '혼종 문화'의 뿌리… 혁명과 예술, 그리고 럼주를 사랑한 도시

입력 2018-05-13 15:13  

낭만이 넘치는 쿠바여행 (3) 산티아고 데 쿠바 상



비가 내린다. 카리브해의 항구도시에 비가 내린다. 고단한 하루가 저물자 거리에 켜진 등불이 비에 젖은 돌바닥 길에 반짝거린다. 비가 내리면서 항구도시는 낭만이 감돌기 시작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과 언덕 사이에 비가 내린다. 잠깐 내린 지나가는 비였다. 그 사이 도시의 밤은 더 빛나기 시작한다. 한바탕 비가 지나간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쿠바노들은 ‘가던 길 멈추고 한 잔 하고 가’라고 손짓한다. 비 내리는 항구에서 폭풍처럼 펼쳐진 선명한 역사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현재의 낭만과 과거의 역사가 겹친다. 그리 깊지도 않은 500여 년의 쿠바 역사에서 인간의 욕망, 노예, 건설, 약탈, 정복, 혁명의 이미지들이 떠다니는 도시다.

쿠바문화의 원형 혼종 문화의 힘

혁명과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 도시는 비온 후의 풍경도 일변했다. 태양빛 세례를 받아 달궈졌던 도시는 빗속의 낭만적 항구가 됐다. 오래된 것들을 숙성시켜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도시가 산티아고 데 쿠바다. 문화의 물리적 접촉으로 화학반응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다. 오랫동안 친미 보수정부였던 바티스타 정권에 반정부적 성향으로 혁명을 주도한 세력들이 배출됐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오리엔테 지방의 산이 인상적이다. 쿠바 동쪽 끝단에 위치해 인근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문화 통로다. 잦은 접촉으로 쿠바 내에서 카리브해 문화의 중심축이 된다. 쿠바를 대표하는 문화현상인 혼종의 매력이 이곳에서는 더 강하게 발휘된다. 초창기 쿠바 문화의 원류는 모두 이 도시에서 비롯됐다. 쿠바의 술 럼주의 고향이자 쿠바 민속음악인 손의 탄생지다. 쿠바를 대표하는 키워드 혁명과 예술 그 두 가지의 산실이었다. 수도가 아바나로 이전하기 전 이 도시는 쿠바 문화의 원형이라 불리는 잡탕 혼종 문화의 힘을 키웠다.

1514년 6월28일 스페인 콘키스타도르(정복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설립한 도시다. 바라코아 이후 두 번째로 세운 새로운 식민지 수도다. 구리 채광 중심지이자 이스파니올라(지금의 아이티)에서 오는 노예들의 하선지로 주목받으며 성장했다. 거주 구역은 화재로 소실됐지만 곧 재건됐다. 16~17세기에는 해적에 의한 밀무역의 거점이었다. 1518년 이 도시에서 후안 데 그리할바와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해안 탐험에 나섰다. 1538년에는 에르난도 데 소토가 플로리다를 향해 떠났다. 1528년에 최초의 대성당이 세워졌다. 1522년부터 1589년까지 산티아고 데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 쿠바의 수도였다. 1553년에는 프랑스군이, 1662년에는 영국군이 도시를 장악했다. 어디를 가나 도시와 문명이 발전하는 곳에서는 성을 쌓고 전쟁을 벌였다.

카리브해의 중심 도시

1556년 스페인 총사령관은 아바나로 이동했고 1607년 수도의 지위가 아바나로 넘어갔다. 이 도시의 매력은 아바나에 비해 세련되지 않은 투박함이다. 해변과 산악이 장쾌하게 어우러져서 쿠바에서도 이국적 풍광을 자랑한다. 수도 이전으로 버려지다시피 하다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일어난 이웃 나라 아이티의 혁명으로 아이티에서 망명한 프랑스인이 유입돼 산티아고 데 쿠바는 쿠바 제1의 커피 산지가 된다. 사탕수수 재배 지역도 확대됐다. 쿠바 커피는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기원했다. 그 영향으로 시내 거리에는 스페인과 프랑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직 있다. 1800년대 초반에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리엔테 지방의 산에 둘러싸여 아이티, 바베이도스, 아프리카를 통해 동쪽 문화의 영향을 받은 카리브해의 문화 중심 도시가 된다. 문명이 넘어오는 길목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도 아바나보다 늘 문화적으로는 한발 앞선다.

1898년 이 땅에서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전화가 발생하고 산티아고 데 쿠바 해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끝났고 이는 쿠바 독립에 기여했다. 또 1953년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160명의 청년 병사가 쿠바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쿠바 육군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 멕시코 망명 후 그란마호를 타고 온 82명의 게릴라가 다시 향한 곳이 이곳의 지에라 마에스트라 산이다. 한때 산티아고 데 쿠바는 망간, 구리 등의 광물과 설탕, 담배의 선적이 행해지는 항구로 알려지면서 파나마 국제항로의 중계항이 됐다. 또 쿠바 종단 도로의 동쪽 기점이기도 하다. 시내에 오리엔테대학이 있다. 산타 이피게니아 묘지에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시인이자 혁명가 호세 마르티, 쿠바음악의 거장 콤파이 세군도, 럼의 아버지 에밀리오 바카르디가 그들이다. 쿠바의 지배자 피델 카스트로도 2016년부터 그가 존경하는 호세 마르티 옆에 잠들어 있다.

식민지풍 건축물 가득

산티아고 데 쿠바의 도보여행은 세스페데스 공원에서 시작한다. 카스코 이스토리코라고 불리는 역사지구이다. 청동 흉상으로 공원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세스페데스는 1868년 쿠바 독립운동에 불을 붙인 인물이다.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예를 해방하고, 147명의 반군을 조직했다. 초기 운동에 성공해 쿠바 대통령이 됐다가 실각하고 스페인군에 발각돼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공원을 둘러싼 사면의 주변은 식민지 초대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저택과 아순시온 대성당 그리고 카스트로가 혁명 성공 후 대중을 상대로 혁명 성공 연설을 했던 시의회와 호텔이 둘러싸고 있다. 대성당은 몇 차례 소실 후 재건됐지만 이 도시의 상징물이 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지하에는 첫 쿠바 총독 디에고 발라스케스가 묻혀 있다.

쿠바 럼의 시작을 알리는 럼 박물관, 바르카디가 세운 시립 박물관은 돌로레스 광장을 걸어 마르테 광장까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거리는 가파르다. 높은 계단도 자주 눈에 띈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을 지나고 항구가 조망되는 높은 발코니를 가진 식민지풍 건축물이다. 오밀조밀하다. 오르락내리락 걸어가면서 모든 게 섞여 혼종의 정체불명일 것 같은 이 도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도시에 등불이 켜지고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걸어보면 이곳은 애수에 젖은 항구가 아니라 삶의 진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끈적끈적한 살사 리듬이 살아있는 거리다. 비 그친 저녁 카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쿠바노들은 낯선 동양의 여행자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친밀감을 드러낸다. “치나?” “곤니치와.” 머리를 흔들면 “오 코레아”라고 말을 건다.


여행메모

산티아고 데 쿠바는 수도 아바나에서 870㎞ 떨어진 쿠바 남동부 공업도시다.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면 보통은 16시간이 걸린다. 쿠바 섬의 동남쪽 해안에 있으며, 카리브해에 면한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마에스트라산맥이 둘러싸고 있어 시가지의 경사가 급하다. 인구는 40만4100명이다. 쿠바 제2의 도시이자 혁명과 예술의 요람이다. 몬카다 병영 습격 사건이 일어난 혁명 발상지이며 손(민요), 룸바(쿠바의 민속 무곡)의 도시이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콤파이 세군도, 이브라힘 페레르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의 고향이다.

글=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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