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씨암탉 대신 갯가 해산물 빼곡한 '해초 비빔밥'… 장모님의 손맛·정성 가득 담긴 '바다 보약'

입력 2018-05-20 15:19  

[여행의 향기] 씨암탉 대신 갯가 해산물 빼곡한 '해초 비빔밥'… 장모님의 손맛·정성 가득 담긴 '바다 보약'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18> 여수 안도, 백년손님 밥상




백년손님 밥상. 이런 독특한 이름의 음식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지금이야 손님이랄 것도 없는 처지가 된 사위들이지만 사위들이 백년손님으로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다. 그 귀한 사위들이 받던 밥상. 전남 여수 안도에 실존했던 밥상이다. 이름만으로도 행복해지지 않은가. 육지에서는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주기도 했지만 모두 가난하던 섬에서는 알을 얻어야 하는 씨암탉을 잡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위를 대접할 요량으로 갯가에 나가 온갖 해산물을 따다가 차려 주던 것이 이 밥상이다. 밥상에는 주로 따개비 종류와 해초들이 올라갔다. 배말, 군봇, 거북손 등 갯바위에 붙어서 살아가는 따개비와 깊은 바다에 살아 해녀만 딸 수 있는 해녀 배말 등을 삶아내고 거기에 세모, 가사리, 미역 등의 해초를 넣어 만든 비빔밥이 백년손님 밥상이다. 이 백년손님 밥상은 예전에는 섬마을 잔치음식으로도 차려지곤 했다.


피문어로 만든 진귀한 문어 김치

백년손님 밥상 말고도 안도에는 전해오는 토속 음식이 많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들은 주로 피문어죽을 끓여 먹었다. 껍질째 말린 문어는 피문어라 하고 껍질을 벗겨 말리면 백문어라 하는데 피문어에 찹쌀, 대추를 넣고 문어가 말랑말랑하게 물러질 때까지 푹 고아 먹는다. 안도에는 또 문어 김치란 것도 있다. 문어잡이를 하던 집들에서 주로 담가 먹던 김치다. 김장할 때 마른 문어를 방아에 찧어서 가루로 만든 뒤 김치 양념에 넣는다. 또 말린 문어를 통째로 넣기도 하는데 김장할 때 김치 포기 사이에 넣어두면 김칫국이 배어들면서 촉촉해진다. 문어는 방망이로 두드려서 장작을 때고 남은 숯불에 은근히 구워 김치에 넣는다. 생것은 비리고, 찐 것은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굽는다. 문어는 김치를 먹을 때 꺼내서 잘라 먹는다. 김치 속 문어는 겨울에 다 먹어야 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벌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이런 귀한 섬의 토속 음식문화가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수년째 섬의 토속 음식 레시피를 채록 중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음식이 많다. 섬들은 음식의 보고이기도 하다.


여수시 남면에 속하는 안도는 3.474㎢의 아담한 섬이다. 섬이 기러기 모양과 같다고 해서 기러기 ‘안(雁)’자를 써 안호(雁號)라 하다가, 1910년 안도(安島)로 개칭됐다. 안도는 또 금오도와 연도(소리도) 사이에 들어 있는 섬이라 해서 안섬이라고도 불렸다. 안도 사람들은 자신의 섬을 여전히 안섬이라 부른다. 안도에는 큰 마을인 안도리와 동곶이, 서곶이, 이야포 등 자연 부락에 45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고 있는데 주민 대다수는 중심지인 안도리에 모여 산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안도는 2010년 2월18일 연도교로 금오도와 연결되면서 낙도에서 벗어났다. 금오도 비렁길이 유명해지며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안도를 찾는 이들도 부쩍 늘어났다. 지금이야 금오도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금오도보다 더 번성했던 섬이다. 안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6000년 전쯤으로 추정되는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질그릇 조각들과 돌도끼, 대팻날, 숫돌, 돌톱 등 5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2007년 안도대교 공사를 하면서는 조가비 팔찌를 찬 인골 2구가 발굴되기도 했다.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안도 유적에서 출토된 남자 머리뼈로 복원한 신석기인을 전시한 ‘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한반도 닮은 지형으로 유명

안도는 고대부터 인근 거문도, 소리도 등과 함께 국제 해상 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 일본 헤이안 시대 승려 엔닌 선사(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도 안도의 이름이 등장한다. 엔닌 선사는 838~847년 당나라 유학 중 장보고 대사(?~846) 도움으로 여행허가서를 받았다. 왜인들의 당나라 입국이 금지된 당시 엔닌은 장보고가 당나라 적산에 세운 절 법화원에 기거하며 불법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엔닌은 장보고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절절하다. 10년 동안의 당나라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는 장보고가 염장에 의해 암살된 뒤라 신라인 무역업자 김진(金眞)의 배를 얻어 탔다.

엔닌은 일본으로 돌아가던 길에 고이도와 거차도를 거쳐 안도에 기항했고 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고려 말, 조선 초부터 시작된 공도정책으로 안도 또한 오랜 세월 비어 있었다. 안도에 다시 주민 거주가 시작된 것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께 정씨(鄭氏) 내외가 입도하면서부터라 전해진다. 정씨 내외 입도 후 안도는 크게 번성했으나 경신년(1860년) 대화재로 모여 살던 100여 호(일설에는 300호라고도 한다) 중 1호만 남고 전소됐다고 한다. 화재 이후 주민 대다수는 당시 주민 거주가 금지됐던 금오도로 이주해 숨어 살았고 일부는 다시 돌아와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안도 당산 오르는 길 선창가에는 한반도를 품은 섬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 강원 영월의 서강 변에 있는 선암마을이 한반도를 닮은 지형 때문에 유명한 것처럼 안도 또한 한반도를 닮은 지형 때문에 한때 이름을 알렸다. 안도의 큰 마을인 안도리 마을 앞에는 S자 모양의 내해가 있다. 이 내해의 형상이 높은 데서 보면 그대로 한반도 모양이다. 이 내해를 안도에서는 두멍안이라 한다. 두멍이란 둠벙, 곧 작은 저수지를 이르는 말인데 바다지만 작은 둠벙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도를 막아주는 이 한반도 닮은 둠벙으로 인해 안도는 천혜의 대피항이다. 이 두멍안은 내륙 안으로 쑥 들어가 있어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이었을까. 안도에 주민이 정착하기 전 오랜 옛날에는 해적 근거지였다는 전설도 있다. 해적선을 숨기기 좋았기 때문이다. 이 두멍안 때문에 일제강점기 안도는 어업 전진기지가 됐다. 일제가 안도에 일본인을 이주시켜 어업조합, 순사 주재소 등을 만들고 어업권을 장악해 수산물을 수탈했다.

학꽁치 잡이로 번성… 비극의 역사 현장

어업이 발달한 까닭에 안도에는 부유한 집안이 많아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이 여순반란 사건 때 희생당했다. 안도는 1980년대에는 학꽁치 잡이로 많은 수입을 올렸다. 학꽁치는 일본에 수출했는데 고가였다. 일본에서 학꽁치는 아이들 성장 단백질과 횟감으로 쓰였다. 송아지 한 마리에 17만원 할 때 130마리 학꽁치 한 상자에 40만원을 받았다니 학꽁치가 ‘금꽁치’였다. 선원이 부족해 선주들이 선불금을 많이 주고 아이들을 선원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당시 15세 아이의 선불금이 300만원이었는데 그 돈이면 여수 시내 집 한 채 가격이었다. 선장은 선불금이 2000

원이나 됐다. 일찍부터 돈을 벌 수 있으니 부모는 자식을 학교에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안도에서 19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학교 교육을 못 받은 이가 많다. 1980년대 초등학교 학생 수만 300~400명이었다.

그때는 셋방 얻기도 어려웠다고 전한다. 지금으로서는 번성했던 시절 안도의 풍경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안도는 여전히 인근의 큰 섬인 금오도나 소리도보다 어선이 많다. 안도리 한 마을만 30여 척의 어선이 어업으로 큰 소득을 올린다. 겨울에는 아귀, 봄에는 갑오징어 등을 주로 잡는데 2t짜리 어선 한 척의 연 소득이 보통 8000만~9000만원에 이른다. 안도마을과 인접한 이야포 해변은 해수욕하기 적당한 아름다운 해변이다. 하지만 이 해변은 현대사의 비극인 양민 학살의 현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성한 안도 당집은 이미 허물어져

안도의 최고 보물은 당산이다. 안도 당산에는 근래까지도 신당인 당집이 있었는데 신당에 모시던 신위가 바로 입도조였던 정씨 내외 위패였다. 지금은 맥이 끊겼지만 안도마을 당제는 정월 보름 오후 5시께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열렸다. 당주는 제사 7일 전에 하당에 들어가 청소하고 금줄을 치며 출입을 삼가고 매일 목욕재계하면서 준비했을 정도로 당제를 신성하게 모셨다. 하지만 이 당집은 당산 공원 공사 중 허물어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운동기구가 놓여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지금도 상록수 거목이 울창한 당산 숲은 잘 보존돼 있는데 안도 당산은 아직도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마을의 신전이었던 당집도 복원되길 바란다.


안도에는 물질하는 네 명의 해녀가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안도에 18명의 해녀가 있었다. 안도 해녀 중에는 제주 출신보다 토착 해녀가 더 많다. 수영 잘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해녀가 됐다. 안도 해녀는 제주 해녀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다고 스스로들 말한다. “깊은 데는 못 다니고 요량이 벨로요.” 예전에는 전복, 해삼, 소라, 성게, 미역, 우뭇가사리, 합자 등을 따서 제법 벌이가 괜찮았지만 이제는 바다가 가물어서 벌이가 신통치 않다. “지금은 눈 씻고 보자도 없다.”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씨가 말랐다. 사고 이후부터 수산물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바닷속이 아주 황폐화됐다. 바다를 살리기 위한 정부 대책이 요구된다.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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