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처럼… 神들의 섬 크레타에서 자유를 외치다

입력 2018-07-15 15:42   수정 2018-07-15 15:43

여행의 향기

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여행 (4) 서부 크레타

'사자 머리 언덕'에 서면… 카잔차키스의 숨결이 닿을 듯 하네




크레타 섬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크레타 출신의 대문호, 20세기 문학의 구도자이자 철학가, 사상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의 주도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태어나 조국의 고난과 투쟁을 고스란히 목도한 그에게 자유에 대한 열망과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은 필연이었다.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 삶, 의지, 자유, 그리고 크레타 그 자체를 상징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크레타를 다녀온 후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펼쳤다. 문장 한 줄 한 줄에 가슴이 끓어오르고, 눈앞에는 짙푸른 바다, 거친 바위산, 한껏 부풀어 오른 올리브 열매가 아른거린다. 카잔차키스의 발자취를 따라 크레타 섬으로 다시 향한다. 인생이란 사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던 조르바의 말처럼 거침없고 자유롭게.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위한 마을 미르티야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잘 다듬은 산문, 단정한 어순, 절도 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경박한 데도, 작위적인 구석도 없다. 표현해야 할 것은 위엄 있게 표현하지만 엄격한 행간에서는 의외의 감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계곡에서는 레몬나무와 오렌지나무가 대기를 향내로 물들였고 바다의 광막한 넓이에서는 무궁한 시구가 흘러나왔다. 크레타. 나는 나직이 불러 보았다. 크레타.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라클리온 시내에서 내륙으로 약 15㎞ 떨어진 마을 미르티야(Myrtia)로 향하는 길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회색빛 석회암 구릉에 제멋대로 자라난 관목, 숲을 이룬 올리브 나무, 종을 딸랑이며 절벽을 기어오르는 야생 염소들. 투박하지만 묵직하고 강인한 이 풍경들은 결코 크레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미르티야는 인구 600명 남짓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옛 이름은 바르바로이(Varvaroi), 카잔차키스의 부친 미할리스 대장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 오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만을 위한 박물관이 있다. 마을 중앙 광장에 자리한 박물관은 그리스의 저명한 세트·의상 디자이너인 요르고스 아네모야니스(Giorgos Anemogiannis)에 의해 설립됐다.

1983년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만 해도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2009년 크레타 지자체를 비롯해 카잔차키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모여 현대와 전통이 적절히 조화된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2층으로 구성된 박물관 내부에는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포함해 자필 메모,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개인 소지품 등 그야말로 카잔차키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약 5만 점에 달하는 유품과 자료를 모으는 데는 카잔차키스의 두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엘레니 카잔차키스(Eleni Kazantzakis)의 도움이 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조르바와 관련된 전시물들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초판본부터 1964년 개봉한 영화 관련 자료는 물론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알렉시스 조르바의 사진, 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묘비명에 기록된 ‘나는 자유다’

미르티야는 크레타 문학을 사랑하는 자들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 외에도 젊은 문학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다양한 세미나와 이벤트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매년 7월 중순에 열리는 탁시데본타스(Taxidevontas)라는 축제가 흥미롭다. 카잔차키스는 작가이기 전에 대단한 여행가이기도 했다. 그리스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까지 평생을 바람처럼 여행하며 세상을 탐구했고, 수많은 기행문을 남겼다. 탁시데본타스는 그가 여행했던 국가 한 곳을 선정해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일종의 복합 문화 축제다. 2016년 스페인을 시작으로 작년은 영국, 올해는 러시아가 선정됐다.


박물관에서 나와 마을을 거닌다. 좁다란 골목 곳곳에 작가의 초상화와 그가 남긴 명언이 새겨져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낯선 이방인이 거슬릴 법도 한데, 미르티야의 주민들은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야사스(Yasas), 칼리메라(Kalimera)를 외치며 인사를 건넨다. 함께 길을 걷던 크레타 출신 친구에게 크레타인들은 항상 친절한 것 같다고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크레타인들은 손님을 신의 선물로 여기지. 우리는 카잔차키스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해. 그러니 그를 사랑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것이지.” 미르티야를 뒤로하고 다시 이라클리온으로 향한다. 부겐빌레아가 드리워진 오래된 담장 뒤로 카잔차키스가 손을 흔드는 듯하다.

미르티야까지 갈 여유가 없다면 이라클리온 시내에 있는 크레타 역사박물관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별도로 마련된 니코스 카잔차키스 관에 그의 일생과 작품을 담은 정보, 유품 등이 알차게 채워져 있다. 크레타 섬의 역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57년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고향 땅으로 돌아왔지만, 이라클리온 성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을 신성 모독이라는 죄목하에 금서로 지정하고 카잔차키스를 파문시켰다. 그래서 그는 이라클리온 성벽 위에 묻혔다. 네모난 무덤과 그 앞에 꽂힌 나무 십자가가 전부다. 소박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광활한 무덤이다. 그 옆으로는 이라클리온의 구시가지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에게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미리 적어 두었다던 세 줄의 묘비명을 곱씹어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사자의 땅에서 보낸 여름 한 철

이번에는 크레타 남쪽 끝자락으로 향한다. 험난한 아스테루시아 산맥(Asterousia Mountains)을 굽이굽이 넘자 리비아해를 초승달 모양으로 껴안은 마을, 렌타스(Lentas)가 나온다. 너무 외진 탓에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무려 24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이자,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는 고르틴(Gortyn)의 주요 항구도시였다. 렌타스는 해안으로 툭 튀어나온 곶(Cape)의 지형이 사자 머리 형상과 닮았다 해서 라이언(Lion· 사자)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옛 이름인 레빈(Levin) 또한 페니키아어로 사자를 뜻하는 단어, 라비(Lavi)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30대 시절에 종종 렌타스로 내려와 머물렀다.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영감을 찾고, 사자 머리 절벽에 난 동굴에 들어가 글을 썼다. 후에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엘레니와 함께 이곳에서 뜨거운 여름 한 철을 보내기도 했다. 내 집 앞마당처럼 작고 아늑한 렌타스 해변에 나가 주변을 굽어본다. 사람들은 나무 그늘 밑에 보자기를 깔고 책을 읽다가 이따금 수영하러 나간다.


바다, 산, 하늘 같은 자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렌타스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과인 듯하다. 카잔차키스가 크레타의 많고 많은 해안 마을 중 왜 하필 이 깊숙한 곳까지 찾아 왔는지 완벽히 이해될 만큼 자유롭고 아름답다. 사자의 머리, 그러니까 렌타스의 독특한 지형을 가장 잘 보기 위해서는 마을 동쪽에 뻗어 있는 사미두무리 곶(Cape Psamidomouri)으로 가는 것이 좋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왕복 30분이면 충분하다. 해가 질 무렵에 가면 망망대해를 원색으로 물들이는 크레타의 석양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저녁때가 되니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몇 없는 타베르나들이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나도 해변 끄트머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렌타스 지역에서만 잡힌다는 생선으로 만든 튀김, 손맛과 인심 모두 좋은 주인 할머니가 직접 만든 크레탄 전통 음식 몇 가지를 시키고 와인을 곁들였다. 들썩대는 파도 소리만 가득했던 밤바다 위로 어느새 하얗고 동그란 보름달이 떠 있다. 달빛이 어찌나 밝은지 커다란 가로등을 하늘에 매달아 놓은 듯하다. 나는 렌타스에서 보낸 날들을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구절로 기억하기로 했다. “나는 한 번 더 행복이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깨달았다. 한 잔의 와인과 구운 밤, 작은 구닥다리 화로, 그리고 바다의 소리.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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