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커잡] 카페, 어디까지 가봤니

입력 2018-09-26 07:30   수정 2018-09-26 16:41

무심코 마셔온 커피 한 잔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알고보면 쓸데있는 커피 잡학사전(알쓸커잡). 그동안 연재된 내용을 주제별로 나눠 추석 연휴기간 전해 드립니다.

◆ 제주 앤트러사이트
커피 한 잔에 담긴 옛 공장의 꿈

멈춰 버린 공장에서 카페로. 한참을 유행하던 카페 트렌드입니다. 도시 재생을 표방한다며 건축 내장재를 다 드러내고, 일부러 벽을 못생기게 허물어 대충 페인트칠한 어두컴컴한 인테리어. 하지만 잠깐만 그 공간에 있어 보면 느낌이 오죠.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얼마 전 제주에 내려가 오랜 친구를 만났습니다. 제주시 한림에 자리 잡은 그 친구는 ‘앤트러사이트’로 오라고 하더군요. 서울에서도 이미 같은 이름으로 유명한 카페라 자신 있게 “OK”라고 답했습니다. 얼마 후. 분명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왜 카페 비슷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지.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맴돌고서야 겨우 찾았습니다. 돌로 벽을 쌓고 나무로 지붕을 만든 거대한 창고 모양의 그 카페를. 보고도 믿기지 않아 여러 번 두리번대다 작은 문을 찾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카페 안에 들어서면 두 가지에 놀랍니다. 흙바닥 위에 자라나고 있는 녹색 식물들 때문에, 그리고 그 사이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기계들 때문에. 이 자리는 원래 오래된 전분공장이었다고 합니다. 한때 바쁘게 감자와 고구마를 부수고, 갈고, 말리곤 하던 장소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소박한 돌담을 쌓아 만든 커피바가 있고, 바리스타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내립니다. ‘나쓰메 소세키’ ‘공기와 꿈’ ‘윌리엄 블레이크’ ‘버터 펫 트리오’ 등 직접 로스팅해 이름 붙인 원두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커피 한 잔을 들고 공장 이곳저곳을 탐험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생각은 사라집니다. 녹슬고 제 수명을 다한 기계가 예전엔 뭣하던 용도였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앤트러사이트는 ‘무연탄’이라는 뜻입니다.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무연탄처럼 커피로 에너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창업자의 각오가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앤트러사이트 1호점인 서울 합정동점도 역시 1970~1980년대 신발공장을 재활용해 탄생시킨 공간입니다. 서교점과 한남점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지만 제주점에서만큼은 창업자 뜻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한참을 멈춰 있던 공간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커피 한 잔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폐공장을 재활용해 카페가 된 곳은 전국 곳곳에 많아졌습니다. 45년간 가동했던 부산의 고려제강 철강공장은 지금 카페 테라로사가 됐습니다. 서울 선유도의 ‘엘 카페 로스터스’, 경기 용인 기흥의 ‘나인 블럭’ 역시 공장 모습을 간직한 카페로 남았죠. 전남 담양군의 대나무 돗자리를 생산하던 공장은 ‘노매럴’ 카페로, 곡식 저장창고는 ‘담빛 예술창고’로 변신했습니다.

◆ 잠실 석촌호수 카페 거리
전세계 카페 모은 듯한 송리단길

‘서울의 카페 거리’라고 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가로수길, 망리단길, 경리단길, 연남동…. 요즘 뜨는 곳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잠실 석촌호수 주변이라죠. 요즘 송파구의 한적한 골목 골목마다 카페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카페부터 일본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마카롱을 내세운 프랑스식 카페 등 개성도 제각각이어서 마니아 사이에서는 ‘송리단길 카페투어’까지 유행하고 있다네요. 세계 카페를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이 길. 몇 곳의 카페를 둘러볼까 합니다.

먼저 일본 교토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카페. ‘가배도’입니다. 음식점 상가 2층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의외의 고요한 풍경이 펼쳐지죠. 나무 바닥과 빈티지한 인테리어는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해방촌에서 이름난 ‘이로공작’과 ‘커피고작’을 운영하는 주인이 문을 연 카페. 우유가 적게 들어간 라테인 ‘코르타도’는 진한 커피 맛이 일품입니다.

영국 런던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라라브레드’가 괜찮습니다. 유기농 빵과 각종 식빵, 따뜻한 수프까지 준비돼 있어 커피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식빵을 사서 튜브에 담긴 잼을 골라 발라 먹거나, 토스트기에 직접 빵을 구워 먹을 수도 있는 곳입니다. 샌드위치 종류도 많아 건강한 브런치를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입니다.

프랑스 파리 뒷골목의 화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카페는 ‘피치 그레이’.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면 수채화 팔레트와 종이가 함께 나옵니다. 커피를 마시며 한가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손님들이 그린 그림이 곧바로 전시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인근의 ‘레어 마카롱’은 인절미, 무화과 등 10여 종의 수제 마카롱을 착한 가격에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죠. 주인장이 직접 만든 은은한 밀크티도 맛이 고급스럽습니다.

이 외에도 귤나무가 인상적인 유럽식 빈티지 카페 ‘카페 마달’, 긴 테이블의 대합실을 연상시키는 카페 ‘이월 로스터스’, 캐나다 캠핑 간식 ‘스모어’와 LP판 음악이 특징인 ‘위커파크’, 모카포트만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오린지(Oh, Linzi!)까지.

송리단길 카페 거리에는 다른 곳과 비슷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송파구는 관광특구가 되면서 석촌호수 주변을 카페거리로 지정한 적이 있습니다. 스타벅스 등 대형 카페들이 대로변에 생기고 임대료가 오르자 작은 카페들은 한때 사라져야 했습니다. 제2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열며 젊은 층이 많이 유입되자 거리 풍경은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독립 카페 주인들은 골목길로 찾아 들어가 자신의 개성을 듬뿍 담은 카페를 열었습니다. 커피 맛도 중요하지만 카페 주인들의 아이디어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비엔나커피
그 겨울, 달콤했던 학림다방 비엔나커피

학림다방에 앉아 있습니다. 2000년대 대학 다닌 이들에게 이곳은 그저 서울 대학로의 오래된 커피 가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삐걱대는 낡은 나무 계단, 한 곳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LP판, 조금 불편한 의자. ‘다방’이라는 이름까지. 시간이 지난 뒤 알았습니다. 60년 넘게 이 자리는 수많은 대학생과 젊은 지식인, 문화 예술인의 사랑방이었다는 것을. 지금 읽는 시와 소설, 흥얼거리는 음악까지 대부분 이 공간을 거쳐 탄생했다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이곳에 앉아만 있어도 역사의 티끌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더군요.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보낸 학림다방은 커피의 역사와도 함께합니다. 원두커피가 흔하지 않던 시절 원두를 로스팅해 커피를 내렸지요. 에스프레소 기계도 다른 카페보다 빨리 들여왔다고 합니다. 4대 사장인 이충렬 씨는 학림다방 건물 옆 좁은 골목길에 로스팅해 커피를 직접 내려주는 학림커피도 냈습니다.

겨울이면 학림다방에선 비엔나커피가 대표 메뉴입니다. 정작 비엔나에는 없다는 그 비엔나커피. 학림다방의 비엔나커피는 거품 낸 우유를 섞은 커피 위에 단단한 식물성 크림을 올리고, 설탕을 넣어 달콤한 맛을 냅니다. 이 비엔나 커피 한 잔이면 살아보지도 않은 그때로 돌아가는 상상에 빠집니다.

달콤한 크림의 첫맛, 쌉쌀한 커피의 뒷맛 때문인지 비엔나커피는 겨울과 유난히 잘 어울립니다. 오죽하면 ‘키스를 부르는 커피’라는 별명까지 생겼을까요. 비엔나커피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래해 300년 넘는 역사를 지녔습니다. 현지에선 ‘아인슈패너’,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으로 불린다지요.

옛 마부들이 마차에서 내리기 힘들어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를 마신 게 시초라고 합니다. 커피에 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을 얹어 ‘비엔나 멜랑주’라고도 불리는데, 마시는 방법도 따로 있습니다. 크림은 절대 스푼으로 뜨지 말고 잔을 그대로 들고 마셔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요. 2~3년 전부터는 비엔나커피 전문점까지 생겼습니다. 망원동의 커피가게 동경은 한 시간씩 대기해야 비엔나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커피스트, 서교동 밀로커피, 합정동 드니로, 연남동 228-9, 서교동 테일러커피의 크림모카까지. 겨울의 ‘비엔나커피 성지’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 군산 커피
'남사친'과 커피 한 잔, 강릉보단 군산

“강릉 갈래? 커피 마시러.”

스무 살 가을. 학교 캠퍼스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커피와 강릉이라니. ‘바다=회+소주’의 공식으로 들어찬 머릿속이 순간 어지러워졌습니다. 그날 밤 차를 몰고 동해 바다로 향했습니다. 멍한 눈, 푸석한 얼굴로 해 뜨는 걸 보며 배를 채우고 커피집을 찾아갔습니다. 시골길을 한참 지나 ‘설마 이런 데서 커피를 팔까’ 싶은 곳. 오두막 같은 나무집이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테라로사. 주인아저씨는 도무지 커피 맛을 제대로 알 리 없는 스무 살 우리에게 잔과 원두를 계속 바꿔가며 커피를 내려줬습니다. 후한 커피 인심에 그 자리에서 한 10잔씩은 마신 것 같습니다. 쓰고, 달고, 시고, 또 쓰디 쓰고. 그날 이후 삶이 달라졌습니다. 커피 없이 하루도 못 사는 일상이 시작됐지요.

15년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1년에 서너 번은 강릉을 찾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게 마련이라지만, 강릉은 최근 3~4년 사이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테라로사는 커다란 로스팅 기계를 갖춘 최신식 공장이 됐고, 강릉 커피 거리에도 으리으리한 대형 커피 전문점들이 덩치 싸움을 하고 있지요. 테라로사와 함께 강릉 커피의 원조격인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공장은 번호표를 뽑고 거대한 대기실에서 기다려야만 겨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아니라 ‘커피 한 잔의 전쟁’을 치르는 공간이랄까.

커피 마니아들은 강릉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중 전북 군산이 가장 유명합니다. 서울에서 안 막히면 차로 2시간, 평소에는 3시간. 1930년대 근대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일치기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조선총독부 은행과 세관, 적산가옥 등이 시간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더합니다. 1899년 개항한 군산항은 일제의 쌀 수탈 통로이자 서구의 문물이 드나들던 곳. 우리나라 1호 커피 마니아였던 고종 황제도 군산항을 통해 들어온 가배(커피)를 즐겨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산에는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미즈커피’(사진), 옛 공장을 개조한 느낌의 ‘카페 틈’, 바다가 바로 보이는 ‘카페 196’, 은파호수에 조용히 자리 잡은 ‘산타로사’ 등 가볼 만한 카페가 즐비합니다. 군산 사람들은 집에서도 ‘커피를 탄다’는 말 대신 ‘커피 내린다’는 말을 쓴다고 하니, 10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커피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남사친이나 여사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까요. “군산 갈래? 커피 마시러.”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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