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터넷 마녀사냥

입력 2018-10-17 18:55  

허원순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마녀사냥’이라고도 하는 마녀재판은 종교재판의 하나였다. 기독교권 국가들에서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어진 인류사의 치부다. 극단적 공포분위기에 일방적 심문과 고문까지 자행된 마녀재판은 유럽의 흑역사이자 기독교가 절대권력이었던 시기의 어두운 이면이다. 1691년 신대륙의 한 마을에서 25명이 숨진 ‘세일럼 마녀재판’에서는 목회자까지 희생됐다.

마녀재판은 선동적이었고 단순했다. 끝까지 마녀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역시, 독한 마녀’로 처형됐다. 억지 자백을 하면 마녀이기에 화형이 당연했다. 백년전쟁 때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도 마녀재판으로 희생됐다. 한때의 ‘행운의 여신’에서 이단으로 몰린 19세의 그 소녀는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천사의 시작이자, 짐승의 끝이 인간’이란 말처럼 인간사회는 양극단을 오간다. 그래서 종종 집단광기도 발산된다. 인민재판 여론재판이 다 그렇게 비롯된 일이다. 본질은 마녀재판과 비슷하다. 직접민주주의라는 허울로 광장에서 빚어지곤 하는 선동적 대중독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인권이 신장되고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사회에서 ‘미신의 총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마녀 같은 옛 미신이 없어진 자리에 새로운 미신이 들어서고, 이를 두고 사회는 갈등한다. 환경원리주의, 탈(脫)원전, 하천과 강물의 관리활용 같은 논쟁적 현안에서도 한쪽은 과학을 끌어들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현대판 미신’이라고 비판하는 게 현실이다.

마녀는 사라졌지만 마녀사냥적 행태, 마녀재판식 선동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인터넷 곳곳이 현대판 마녀재판정으로 전락했다. 넘치는 자유게시판에 ‘악플’ 투성이다. 표현 자유를 넘어선 언어테러가 가짜뉴스와 경쟁하는 요지경이 됐다. 권리는 넘치지만 책임은 없다. ‘신상털기’에 걸려 인격살인을 당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자정과 자율규제는 멀고도 멀다.

1년 전 ‘240번 서울 시내버스 기사모함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인터넷 표현문화에 대한 자성이 일시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경기도 김포 한 어린이집의 30대 보육교사가 돗자리를 터느라 원아를 방치한 것으로 오해받아 괴로워한 끝에 13층에서 투신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사실 확인도 없는 인신공격, 무분별한 신상털기가 난무한 ‘맘카페’가 진앙지였다.

인터넷의 현대판 마녀사냥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회가 평등해질수록 작은 불평등을 더 못 참고, 공정해질수록 조그만 불공정에도 분노부터 하는 즉흥적 경향이 한층 심해지는 모습도 그중 하나다. 절제 안 되는 자유가 타인을 향한 흉기라는 사실은 계속 간과된다. 도심의 광장도, 인터넷의 광장도 다 흉기가 될 수 있다. 공정하고 공평한 사법체계를 완성해가는 것은 이래서도 중요하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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