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령 어기고 폴리네이케스 매장…反문명적인 권력에 도전하다

입력 2018-10-26 18:43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24) 필멸(必滅)

'죽음을 기억하는 문화' 장례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영원히 사는 신적 인간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의례

가혹한 테베 왕의 칙령
"폴리네이케스 시신을 버려두고
새 떼·개 떼 먹이가 되게 하라"

反인륜적 방법으로 死者 모독
권력 강화를 위해 공포정치
법에 불복종하면 대가는 죽음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르고, 사물과 다른가. 고대 히브리인은 인간을 ‘아담(adam)’으로 불렀다. ‘아담’이란 단어는 고대 히브리어로 ‘붉은 흙’이라는 의미다. 토기장이는 흙을 빚어 원하는 그릇을 만든다. 이때 사용하는 가장 질 좋은 흙이 바로 ‘붉은 흙’이다. 농업이나 포도주를 재배하기 위한 가장 질 좋은 흙도 ‘붉은 흙’이다. 이 의미를 지닌 ‘테라 로사(terra rosa)’라는 라틴어 표현은 최적의 농산품과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한 흙이다.

인간

붉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마치 그릇이 각각의 용도가 있듯이 일생을 통해 반드시 이뤄야 할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가 있다. 인생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이 그릇을 매일 닦고 그 안에 하루라는 시간을 담는 연습이다. 그런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죽음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죽음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쾌락에 탐닉하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세상의 덧없음에 경도돼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인류는 자신의 필멸성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순간의 삶을 영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 노력이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기반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제도 인간의 필멸성이다. 길가메시는 자신의 단짝이자 ‘제2의 자아’였던 엔키두가 신들의 저주를 받아 죽자, 죽음을 실제로 극복하기 위해 지하세계로 여행한다. 그곳에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영생을 살고 있는 유일한 존재 ‘우트나피슈팀’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우트나피슈팀과 그의 아내는 지상에서 인간들이 떠드는 통에 밤에 잠잘 수 없는 신들이 홍수를 내려 인류를 몰살하려는 계획을 몰래 들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방주를 제작해 살아남았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 방주 이야기의 원형이다.

길가메시는 천신만고 끝에 우트나피슈팀을 만나 영생의 비결을 묻는다. 우트나피슈팀은 말한다. “죽음은 인간의 일부다. 품안에 있는 아내, 무릎 위에 있는 아이를 보고 즐거워해라. 항상 몸과 옷을 깨끗하게 하고 좋은 음식을 즐겨라. 이것이 인간이 할 일이다.”

순간을 사는 인간은 ‘지금 여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즐기라고 조언한다. 인간은 현재를 즐기기 위해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죽음을 기억하는 문화’인 장례를 가장 중요한 의례로 여겼다. 정교하고 감동적인 장례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과 인생의 덧없음을 확인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피라미드는 아직도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기념물이다. 인생은 잘 죽기 위해 매일매일 사는 연습이다. 장례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순간을 사는 인간을 영원히 사는 신적인 인간으로 훈련시키는 의례다.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29년 《문명 속의 불만(Das Unbehagen in der Kultur)》이란 책에서 개인의 자유와 욕망은 사회의 기대와 규범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명과 개인의 근본적인 갈등은 개인과 문명이 추구하는 지향점의 차이에서 온다. 개인은 본능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문명은 그 반대로 본능의 억압과 순응을 요구한다.

테베의 왕 크레온은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구축하면서 가장 비문명적인 행위를 자행하려 한다. 그는 인간 문명의 축인 ‘장례’를 조절해 권력을 강화할 셈이다. 크레온은 테베라는 도시를 원수 도시 아르고스의 장군들과 침공해 파괴하려고 시도한 폴리네이케스를 인간 이하의 동물로 여긴다. 크레온은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린다. “아무도 폴리네이케스를 위해 장례를 치르거나 애도하지 말라. 그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버려 둬라. 새 떼와 개 떼의 밥이 되고 흉측한 몰골이 되게 하라.”(203~207행) 이 무자비한 칙령은 인간과 동물의 죽음 구별에서 출발한 인간 문명의 파괴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을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부정한다. 그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동물의 썩은 고기쯤으로 여긴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징인 ‘양심’을 찬양하는 비극작품의 구성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모독(冒瀆)이 핵심이다.

크레온은 이미 안티고네의 입을 통해 폴리네이케스 시신 처리 방식을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주문했다. “아무도 무덤 안에 감추지도, 애도하지도 말라. 애도해주는 사람도 무덤도 없이, 진수성찬을 노리는 새 떼의 반가운 먹이가 되게 버려 둬라.”(27~30행)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칙령을 인간의 숭고함에 대한 사적이고 노골적이며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여겼다. 까마귀들이 몰려와 오빠의 시신을 게걸스럽게 물어뜯는 장면을 상상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진수성찬’으로 번역한 그리스어 ‘쎄사우로스(thesauros)’는 원래 인간이 신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제물이다. 크레온의 칙령은 인간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이룩한 거룩한 의례를 가장 천한 짐승이 파헤치도록 허용한 명령이다.

크레온은 이런 반인류적인 명령에 대해 “이것은 내 의도다”(207행)라고 말한다. ‘의도’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프로메나(phronema)’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키는 지적인 능력이자 의지다. 크레온의 주문은 이전에 인용된 안티고네의 말보다 더 잔인하다. 안티고네는 ‘새 떼’만 언급했지만, 크레온은 ‘개 떼’를 첨가해 야만성을 더한다. 테베 시민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사라지는 폴리네이케스의 ‘흉측한 시신’을 ‘관람’할 것이다.

흉측한 시신은 비문명이자 반문명이다. 호메로스의 마지막 책인 《일리아스》 24권에서 영웅 아킬레우스가 친척이자 절친인 파트로클레스를 죽인 헥토르를 결투에서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려 하자 제우스 신이 개입한다. 결국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시신을 돌려받았다. 이 비극에서 크레온은 인간 문명의 상징인 의례를 흉측하게 만들 셈이다.

가혹한 형벌

크레온은 테베 시민들 앞에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보다는 공동체 혹은 조국, 양심보다는 형벌과 법률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조국의 땅이며, 조국이 무사 항해해야만 우리가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원칙에 따라 이 도시를 치리(治理)하겠습니다.”(188~191행)

크레온은 공포와 형벌을 국정 철학으로 삼는다. 그는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선왕 에테오클레스의 성대한 장례를 약속하지만, 폴리네이케스에게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그는 에테오클레스를 띄우는 데 4행(194~197행)을 할애한 반면 폴리네이케스를 격하하는 데는 배가 넘는 9행을 사용한다. 크레온은 개인이 양심에 따라 국가의 법에 불복종한다면, 그 대가는 죽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무대 앞에서 “국가의 기반은 예외를 두지 않는 강력한 법”이라고 주장하는 크레온의 연설을 듣고 무대 뒤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크레온의 대척점에 있는 안티고네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할 것이다. 크레온이 말을 마치자 무대 위로 파수꾼이 등장한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이 매장되지 않도록 보초를 섰던 군인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크레온에게 달려온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파수꾼은 “지금 전하려는 내용이 너무 불행해 오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해 달려왔다”고 말한다. 그는 입에 담기도 무섭고 나쁜 소식을 전하려 왔다. 그는 두려워 떨며 말한다. “누군가 방금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고 사라졌습니다. 시신의 살갗에 목마른 먼지를 뿌리고 그 밖에 다른 의식을 행했습니다.”(245~247행) 크레온은 자기 권력의 시작인 칙령이 힘없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한 그 순간 외친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파수꾼은 이 일을 행한 자는 아주 철저한 사람이라고 답한다. 범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자 테베 원로들이 크레온에게 말한다. “혹시, 이번 일은 신께서 하신 일이 아닐까요?”

크레온은 제우스신이 자신의 신전과 보물을 불사르고, 나라를 유린하고, 법규를 말살한 자를 위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누군가 뇌물을 받고 시신을 옮겼다고 추정한다. “돈은 정직한 마음씨를 변하게 해 수치스러운 짓들을 하도록 훈련시킨다”고 나무란다. 크레온은 시신을 매장한 자를 찾지 못한다면,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누가 감히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했을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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