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아시아 文化 함께 간직한 '두 얼굴의 古都'

입력 2018-12-02 14:56  

여행의 향기

동로마·오스만 제국의 영광 '고스란히'

하루 만에 둘러보는 터키 이스탄불



유럽도 아닌, 아시아도 아닌, 터키 이스탄불은 고루한 도시가 아니라 고유한 도시다. 동로마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겹겹이 쌓아 올린 건축물엔 수천 년의 자취가 배어 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깃든 이스탄불 거리를 걷다 보면 역사책 속을 거니는 듯하다. 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이스탄불을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했는지, 왜 나폴레옹이 만약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된다면 그 수도는 이스탄불이 돼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 보스포루스 해협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관문 도시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각지로 향하는 여행자들은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곤 한다. 유럽 여행길, 터키를 들렀다 가는 스톱오버(Stop-Over)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스탄불은 딱 맞는 여행지다. 스톱오버란 환승(Transit)과 달리 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을 말하는데, 항공권 하나로 두 나라를 여행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게다가 이스탄불의 주요 명소는 구시가에 모여 있어 하루 만에 둘러볼 만하다.

“잠은 아시아에서 자고, 출근은 유럽으로 하는 이스탄불 사람이 많은 것 아세요?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도시라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며 유럽 지역에서 일하는 인구가 많답니다.” 공항에 마중 온 가이드가 너스레를 떤다. 그의 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향한다. 흑해와 마르마라해 사이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을 가로지른다. 해협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으로 분류된다. 유럽 지역은 보스포루스 해협 출구인 골든 혼을 기준으로 다시 남쪽은 구시가, 북쪽은 신시가로 나뉜다. 유럽과 아시아를 품고 있는 이 해협은 중세부터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잇는 교통로와 무역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페리에 오르자 배는 보스포루스 해협 물결을 가르며 시원스럽게 나아간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해협 양쪽 기슭을 따라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돌마바흐체 궁전, 루멜리히사리 요새 등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매립한 공원’이란 뜻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술탄 압둘 메지드 1세가 이전의 술탄들이 왕실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매립한 만에 지은 궁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려한 외관을 뽐낸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의 영광

이스탄불은 20세기 초까지 북아프리카부터 유럽에 이르는 영토를 다스린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다.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등 건축물이 모여 있는 구시가 한가운데 술탄 아흐메드다.

술탄 아흐메드 구경도 식후경, 구시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세븐힐즈에서 점심부터 먹기로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감탄사가 툭 튀어나온다. 앞으로는 아야소피아 성당, 뒤로는 블루모스크, 옆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여기에 화덕에서 구운 각종 케밥과 터키 국민맥주 에페스가 더해지니 이스탄불을 다 가진 기분이다. 이때 이슬람교에서 기도를 알리는 소리 아잔이 울린다. 주변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다.

마침내 이스탄불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경이로운 건축물, 아야소피아 앞에 섰다. 약 1500여 년 전 공간으로 스민다는 설렘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무려 537년 완공된 아야소피아는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염원을 담아 지은 건물이다. 당시 황제는 “과거 천 년, 앞으로도 천 년 동안 인류가 지을 수 없는 장엄한 성당을 5년 안에 지으라”고 명했다. 수천 명이 예배를 보기 좋도록 거대한 돔 지붕을 만들고 아래 벽은 금빛 찬란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하게 했다. 아르테미스,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과 석재를 동원해 골격을 세워 5년11개월 만에 완성했다. 하지만 성당도 이미 저물기 시작한 제국의 운명을 되돌리진 못했다.


“이 아름다운 성당을 허물지 말고 이슬람 사원으로 쓰라.” 아야소피아가 한지붕 아래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공간이 된 것은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을 함락한 오스만제국 황제 메흐메트 2세의 명령 덕이다. 메흐메트 2세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그려진 모자이크 위에 회칠해서 가렸다. 그렇게 아야소피아는 916년간 동로마제국의 교회, 481년간 오스만제국 이슬람 사원을 거친 끝에 1935년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이때 회칠을 벗겨내 비잔틴 미술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반질반질해진 대리석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화려한 비잔틴 벽화가 시선을 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웅대한 공간이 주는 압도감에 여러 번 멈춰 섰다. 눈길 닿는 곳마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볼거리가 가득하다. 검은색 원형 모양 메달리온에는 알라신과 메흐메트, 초기 칼리프의 이름이 금색 아랍어로 새겨져 있다. 동로마제국 시대의 황금 모자이크와 오스만제국 시대 메달리온이 어우러진 풍경이 오묘하게 다가온다. 출구를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곽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아야소피아 성당을 들고 있는 멋진 성화가 그려져 있다. 보지 못하고 나섰더라면 억울할 만큼 멋진 작품이다. 다행히 관람객이 뒤를 보고 가라고 출구에는 큰 거울이 걸려 있다.


아야소피아 맞은편에는 블루모스크가 웅장하게 서 있다. 분수가 있는 공원을 사이에 두고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가 마주 보고 있는 모양새다. 본명은 술탄 아흐메드 자미, ‘아흐메드 황제의 사원’이란 뜻으로 17세기 초 술탄 아흐메드 1세가 건립했다.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이유는 내부의 이즈니크 타일 덕이다. 이즈니크 타일은 16세기 도자기의 도시 이즈니크에서 유래한 타일로 흰색 바탕에 푸른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자, 들어가기 전에 블루모스크 꼭대기를 보세요. 뾰족한 첨탑, 미나레 6개가 보이죠? 술탄의 모스크는 보통 미나레가 4개인데, 여기는 왜 6개일까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행에게 가이드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야소피아보다 웅장한 사원을 건설하고 싶었던 술탄 아흐메드 1세는 건축가에게 모든 미나레를 황금(알튼, alten)으로 지으라고 명했죠. 그런데 건축가 메흐메트 아가가 알튼과 발음이 유사한 알트(여섯, alti)로 잘못 알아듣고 미나레를 6개나 만들었지 뭐예요.”

하하하, 한바탕 웃은 뒤 들어선 블루모스크로 들어가는 길은 꽤 복잡하다. 마당에서부터 좁은 입구까지 블루모스크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끝없이 몰려든다. 여자들은 입구에서 하늘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긴 줄을 서야 한다. 신발을 비닐봉지에 담고 들어선 블루모스크의 내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돔형 천장은 2만여 장의 타일로 장식돼 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목이 뻐근해지도록 올려다보며 한 제국이 문명을 어떻게 꽃피웠는지 가늠해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양쪽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이 공간이 더욱 경건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랜드바자르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시장

“그랜드 바자르의 가격은 능력제예요. 무조건 흥정부터 하세요! 부르는 가격대로 사면 바가지예요.” 이스탄불 대표 시장, 그랜드바자르 입구에서 가이드가 신신당부한다. 그랜드바자르의 정식 명칭은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의 카팔르차르슈(Kapali Carsi)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시장으로 꼽힌다. 카펫, 금·은 보석류, 그릇 등 각종 공예품을 파는 상점 5000여 개가 빼곡히 입점해 있으며 출구만 20개에 달한다. 출구를 잘 기억해두지 않으면 미로 같은 시장 안을 헤매다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랜드바자르는 그 규모만큼 역사도 깊다. 1461년 메흐메트 명령으로 건축한 아치형 작은 창고, 베데스덴으로 시작해 베데스덴과 주변 상점 샛길에 지붕을 얹으며 뻗어나가 현재의 거대한 규모가 됐다. 과거 실크로드를 건너온 상인들은 여기서 실크 직물과 보석, 향신료 등을 교역했고, 지금은 이스탄불을 찾는 여행객 사이에서 쇼핑 성지가 됐다. 여느 여행자처럼 쇼핑 삼매경에 빠져본다. 목표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돋보이는 커피잔. 워낙 널리 사용돼 국민 커피잔이라 불리는 물건이다. 여기저기 가격을 비교하다가 인상 좋은 할머니에게 최저가를 치르고 산다. 할머니가 특별히 학생 할인을 해주겠다고 나선 덕이다. 본의 아니게 신분을 속였지만 경매 낙찰이라도 받은 것 같아 자꾸 웃음이 난다.

쇼핑에 관심 없는 여행자라면 그랜드바자르 주변 식당과 카페를 기웃거리는 것도 재미있다. 그랜드바자 주변엔 노점만 수백 개로 다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곳이다. 도너 케밥, 터키식 아이스크림 돈두르마 등 맛볼 수 있는 메뉴도 다채롭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야외 의자에 앉아 튤립 모양 유리잔에 담긴 차와 달콤한 디저트 바클라바를 먹는 사람들이다. 바클라바란 얇은 파이 반죽을 층층이 쌓고 사이에 견과류를 넣어 구운 페이스트리다. 이스탄불 사람들 사이에 앉아 홍차와 바클라바를 맛보며 여정을 마무리해본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 않고 현지인처럼 엄지와 검지로 바클라바를 집어 들고 입에 쏙 넣어 오물오물. 쌉싸래한 홍차와 다디단 바클라바의 맛이 입안 가득 번지자 여행의 피로도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여행 메모

스톱오버로 터키 여행을 하려면 터키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터키항공은 인천 이스탄불 구간을 주 11회 운항하며,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약 11시간50분 걸린다. 이스탄불에서 경유 시간이 6시간 이상 남으면 터키항공이 제공하는 무료 이스탄불 투어까지 즐길 수 있어 일석이조다. 터키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며 겨울에도 1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지중해성 기후다. 언어는 터키어지만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는 편이다. 화폐는 리라를 쓴다. 1리라는 약 207.43원(2018년 10월31일 기준). 리라 환율이 떨어진 지금은 터키에서 쇼핑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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