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神' 아폴론의 고향 델로스를 거닐다

입력 2018-12-23 14:58  

여행의 향기

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여행 (8)·끝 - 델로스



그리스 에게 해에 떠 있는 키클라데스(Kyclades)는 ‘원형을 이루는 섬’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그 원의 중심에 빛의 섬, 델로스(Delos)가 있다. 총면적 3.43㎢에 불과한 작은 무인도지만 이 섬이 지나온 역사는 대단하다. 델로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태어난 신화의 무대에서 델로스 동맹의 본거지로, 그리고 지중해 최고의 국제무역도시로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이끌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영광의 시대가 저물고 델로스는 오랜 시간 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뜨겁게 떠오르는 태양을 따라 사람들은 다시 이 섬으로 향한다. 수천 년 전 지중해를 호령했던 찬란한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태어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섬

아침 일찍 미코노스(Mykonos)의 구항구로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여객선에 올라 푸른 에게 해를 항해한 지 약 30분쯤 지났을까. 키클라데스의 심장이자 고대 그리스 문명과 역사의 보고, 델로스 섬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델로스는 예로부터 그리스에서도 가장 신성한 땅으로 여겨졌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와 레토의 자식인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바로 이 델로스 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폴론의 성역으로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를 담당하던 델로스는 기원전 5세기경, 또 한 번 역사의 중심에 선다. 그리스는 길고 길었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승리의 주역인 아테네는 적의 재침략에 대비해 에게 해의 섬들과 소아시아의 도시국가들을 모아 동맹을 결성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델로스 동맹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델로스 동맹은 점차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지배도구로 변질됐고, 폴리스들의 불만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면서, 델로스 동맹은 결국 와해되고 만다. 동맹국들의 결의는 깨졌지만, 섬의 영화는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기원전 2세기 중반, 로마가 델로스를 자유무역항으로 선포하면서 이 섬은 세계적인 무역도시로 성장했다. 수많은 순례자와 상인들이 델로스를 거쳐갔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예시장이 세워졌다. 번영의 절정기에는 이 작은 섬에 거주하는 인구가 무려 3만 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영광은 없는 법이다. 기원전 88년 폰투스 왕국과 해적들의 잇따른 침략으로 델로스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후 베네치아 제국, 오스만 제국 등에 차례대로 정복되고 대대적인 약탈과 파괴가 행해지면서 섬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태양과 달의 시대가 저물고 만 것이다.

델로스 섬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델로스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진 것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고고학회가 유적 발굴을 시작하면서부터다. 1990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답게 델로스는 그야말로 섬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로서, 국제무역도시로 번영했던 흔적이 섬 전체를 뒤덮고 있다. 유적군은 크게 선착장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눌 수 있다. 왼쪽 유적군은 고대 델로스에서 가장 번화한 길이자 델리아(Delia) 제전이 펼쳐졌던 성스러운 길(Sacred way)을 시작으로 수많은 신전과 기념비들로 이뤄진 아폴론 성역(Apollon Sanctuary)으로 이어진다. 그 위쪽으로는 섬의 상징과도 같은 델로스 사자상(Delos Lions)이 위엄을 뽐내고 있다. 7세기경 낙소스인들이 봉헌한 것으로, 최대 16개 사자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5개만 남아 섬을 지킨다.

사자상 맞은편에는 신성한 호수(Sacred Lake)가 있다. 현재는 물이 다 메마른 상태지만, 이곳이 바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탄생 설화가 얽힌 장소다. 섬 오른쪽에는 외국 신전을 비롯해 경제적 번영을 상징하는 아고라, 극장, 부호들의 고급 저택 터가 있다. 특히 저택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는 반드시 봐야 할 볼거리다. 디오니소스, 삼지창, 돌고래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모자이크들은 고대의 유산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델로스를 떠나기 전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킨토스(Cynthus) 산에 오른다. 제우스와 아테나 신전의 유허를 지나 정상에 서니 델로스와 키클라데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에 리니아(Rineia), 북쪽의 티노스(Tinos), 이웃 섬 미코노스와 낙소스(Naxos)까지 보석 같은 섬들이 델로스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에게 해의 따스한 햇살이 잡초와 돌로 가득한 섬을 찬란하게 덮는다. 저물었던 델로스의 영광이 다시 떠오르는 듯하다.

델로스=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정보

미코노스를 거쳐 델로스로 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미코노스의 구항구에서 델로스로 향하는 페리가 운항한다. 정기선은 성수기에 해당하는 4월부터 9월까지 운항하며, 비수기에는 운항편이 극히 제한되므로 방문 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페리는 왕복 17유로이며 델로스 섬 입장료(5유로)는 별도다. 섬에는 그늘이 없으니 여름철 방문 시 양산과 물을 반드시 지참하는 것이 좋다. 델로스 섬에서 출토된 실제 유물들은 델로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므로 함께 둘러보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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