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역(逆)귀농

입력 2019-01-14 18:11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농사 매출이 한 해 300만~850만원에 불과합니다. 8250㎡(2500평) 땅에 여러 작물을 심었는데 종자비와 인건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죠. 이제 농사짓는 요령은 조금 익혔지만 이걸 판매하는 게 마땅치 않아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고백이다. 말이 좋아 전원생활이지 새벽부터 밤까지 ‘뼈빠지게’ 일해도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연매출 1억원 이상의 ‘억대 농부’가 가끔 뉴스를 타지만 대부분의 농촌 실상과는 다르다. 그래서 ‘귀농 선배’들은 “치킨집보다 더 악착같이 하지 않으려면 포기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농어업 분야 취업 인구가 6만2000여 명 늘었다. 이들 중에는 명예퇴직 등으로 조기퇴사한 사람이나 자영업에 내몰렸다가 그마저 포기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준비가 덜 된 귀농(歸農)·귀어(歸漁) 인구가 그만큼 많다. 잘못하면 도시로 돌아가는 ‘역(逆)귀농의 고통’을 맛봐야 한다. 벌써 10명 중 1~2명이 도시로 귀환하고 있다.

귀농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영농실패다. 준비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귀농은 도시에서 창업하는 것과 다르다. 거주지를 통째로 옮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농촌 마을 특유의 ‘관습법’과 보이지 않는 텃세도 넘어야 한다. 설문조사 결과 귀농인의 50%가 주민 텃세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농지와 집 지을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보조금과 지원제도를 내세워 귀농을 부추기는 정책에 휘둘리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마을발전기금’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귀농인들은 “툭하면 마을 잔치나 농수배수로 설치 등의 명목으로 발전기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며 곤혹스러워한다. 대부분은 불이익을 겪기 싫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낸다. 낙후된 의료시설과 아이들 교육 문제까지 겹치면 걱정이 더 커진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시골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도시생활보다 심하다. 도시의 스트레스 지수가 22.88인 데 비해 비(非)도시는 23.08로 나타났다. 인구가 적은 시골일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높았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의 역귀농 사례가 농촌 출신의 두 배에 가까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귀농에 성공하려면 최소 5년 전부터 준비하라”고 권한다. 전원에서 인생 2막을 즐기는 것이야 누구나 꿈꿀 만하지만, 그럴수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도 무릉도원만 노래한 게 아니다.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관직을 버린 그는 평생 끼니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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