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보수주의 아버지'가 말하는 진짜 보수는?

입력 2019-01-17 18:31  

에드먼드 버크 보수의 품격

에드먼드 버크 지음 / 정홍섭 옮김 / 좁쌀한알 352쪽│2만원

보수는 전통·관습 지키며 조심스럽게 변화 나서는 것
프랑스혁명? 야만 그 자체…무분별한 다수결은 위험



[ 서화동 기자 ] “그는 우리 헌정사에서 조상의 날인도 받지 않은 채 프랑스의 금형으로 자기들 멋대로 휘그의 원칙이라는 동전을 찍어낸 자들의 첫 번째이자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기보다는, 그 휘그 종족의 마지막 인물이 되고자 했다.”

서구 보수주의의 원조로 꼽히는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1791년 8월 발표한 ‘신(新)휘그가 구(舊)휘그에 올리는 호소’(이하 ‘호소’)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여기서 ‘프랑스의 금형’이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도입함으로써 근대 민주주의를 촉발한 프랑스혁명이다. 17세기 말 명예혁명 이후 입헌군주제가 정착한 영국에 프랑스혁명 정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프랑스혁명은 고귀한 정신과 후대에 미친 엄청난 영향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혁명의 과정에서 폭력, 학살, 인민재판 등에 따른 희생과 부작용을 초래했다. 50만 명 이상이 희생됐고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만 4만 명을 넘었다. 자유와 박애를 외치는 이면에 공포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 때문에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기대와 우려, 혁명과 반혁명의 논쟁이 뜨거웠다. 대표 주자가 국제적 혁명이론가였던 토머스 페인(1737~1809)과 버크였다. 정치적 동지관계였던 두 사람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1789년 7월 프랑스 국민의회가 제헌의회를 선포하고 민중이 바스티유를 함락하자 영국의 휘그당 지도자들은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면서 그 원리를 영국에 도입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대해 버크는 이듬해 11월 발표한 책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하 ‘고찰’)을 통해 강력한 반대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자 수많은 저술이 쏟아지면서 이른바 ‘팸플릿 전쟁’이 시작됐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1791년과 이듬해 각각 나온 페인의 《인권》 1부와 2부였다. 《인권》 1부에 대한 버크의 반격이 ‘신휘그가 구휘그에 올리는 호소’였고, 이에 대한 페인의 대응이 《인권》 2부였다.

《에드먼드 버크 보수의 품격》은 버크의 말년 저작 가운데 ‘호소’와 ‘궁핍에 관한 소견과 세부 고찰’(이하 ‘소견’) 등 두 개를 엮어서 펴낸 책이다. ‘고찰’은 많이 알려진 책이지만 ‘호소’와 ‘소견’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초역이다. ‘호소’는 버크가 자신의 지지자로 가상한 제3자의 입을 빌려 자신이 왜 ‘소견’에서 프랑스혁명에 반대했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장문인 데다 불필요한 수사와 에두르는 표현이 많고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번역문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책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해제가 이해를 돕는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명예혁명에 토대를 둔다. 가톨릭 교도였던 제임스 2세가 노골적인 가톨릭 편중 정책을 펴자 의회의 휘그당 주도로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 딸인 메리와 그녀의 남편인 오렌지 공 윌리엄을 공동 국왕으로 옹립한 사건이 명예혁명이다. 버크는 유혈 없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한 이 혁명을 주도한 휘그당 선배들의 적통을 이은 마지막 휘그파라고 공언했다.

그런 그에게 유혈이 낭자한 프랑스혁명은 용인할 수 없는 야만이었다. 프랑스혁명은 자국의 전통과 고래의 원리를 버렸다고 버크는 ‘고찰’에서 비판했다. 그 전통과 원리의 핵심은 군주제와 귀족제, 종교제도였다. 영국에는 개량된 고래의 원리인 입헌군주제와 귀족제가 살아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페인은 “자연권이 바로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자연권은 버크가 주장하는 계급차별에 기초한 자연권이 아니라 인간의 평등한 권리이며, 이에 기초해 사회와 국가의 권력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버크는 프랑스혁명의 본질을 ‘사기, 폭력, 신성모독, 가족의 대대적인 파괴와 몰락, 무질서, 혼란, 무정부 상태, 재산침해, 잔인한 살해…’ 등으로 규정하며 반박했다. 아울러 민주주의 원리가 군주와 귀족제, 특히 귀족제의 원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귀족제는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는 대의제 정치에 가깝다. 수준 이하로 평준화된 인간들 사이에서는 다수결 원칙이 위험을 초래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버크가 주장하는 보수주의는 신의 뜻에 따른 헌정 체제를 바탕으로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필요한 변화를 주의 깊고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겸손하고 신중한 정치적 태도다. 따라서 폭력과 파괴 등 모든 극단주의에 반대하며 중도와 중용을 추구하는 것이 보수주의다. 여기서 옮긴이는 우리의 보수는 무엇을 지키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 무엇을 보수(保守)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삶의 위기에 빠지게 됐는가.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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