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봉 라일락, 장욱진의 동심에 흠뻑 빠져볼까

입력 2019-03-03 17:23  

서양화가 1세대 두 거장 작품전

일제강점기 거쳐 해방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초석 다져



[ 김경갑 기자 ]
서양화 1세대 작가 도상봉(1902~1977)은 ‘그림은 생활 속에서 나온다’는 말을 평생 화두처럼 붙들고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나 보성고보를 졸업한 그는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에게서 그림 공부를 했다. 이어 일본으로 유학, 동경미술학교를 나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창설에 참여하는 등 초창기 한국 화단의 중추 역할을 맡았다.

비슷한 시기 활동한 장욱진(1917~1990)은 1948년께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약했지만 동년배 화가들이 대형 추상화를 그릴 때 독자적으로 가난한 서민의 일상생활을 기하학적 화풍으로 되살려낸 거장이다. 서울대 교수를 지내면서도 직업을 ‘까치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할 정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평생을 선비처럼 유유자적하게 살며 궁핍한 시대의 풍경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한국 현대미술 개척한 두 거장

서울 관훈동 노화랑이 오는 6일 개막하는 기획전 ‘도상봉·장욱진’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생활예술로 승화시킨 두 대가의 미의식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 현대미술의 초석을 다진 두 사람의 이번 전시에는 근대정신을 몸으로 이어받아 현대성을 접목한 수작 20여 점이 걸린다.

‘인사동 터줏대감’ 노승진 노화랑 대표가 40년 동안 화랑을 운영하며 친분을 맺은 미술애호가들의 소장품이어서 평소 쉽게 보기 힘든 작품으로, 보험가액만 총 30억원에 달한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화단을 이끈 두 사람의 예술적 고뇌는 물론 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할 기회다.

도상봉은 생활 주변에서 보는 작은 기물의 소중함과 자연의 중요성 간 조화를 구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꽃과 과일의 정물화, 풍경화에 전념한 그는 안정된 구도 속 현실감이 강조된 색채 표현과 고요한 분위기에 특별한 비중을 뒀다.

주로 라일락, 국화, 백합, 코스모스 등 화초를 조선시대의 잘생긴 백자 달항아리에 담아 자연미와 생활의 소박한 서정을 되살렸다. 꽃송이가 크지 않고 작으면서 다발을 이루고 있는 라일락을 즐겨 그려 ‘라일락 화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화풍을 결합한 그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상봉이 평생 추구한 고요하고 우아한 생활미학이 이번 전시에서도 도드라져 보인다. 소품이 주를 이루지만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전성기의 수작이 많다. 백자 도자기에 꽉 채운 하얀 라일락, 꽃이 만발한 경복궁 향정원, 고즈넉한 성균관 대성전, 노란빛을 세숫대야로 퍼붓는 듯한 비원의 은행나무, 광릉 주변의 정결한 삼나무 길,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속살을 내보이는 고궁, 가을 햇볕을 머금은 빨간 호박, 그리고 만개한 백합 등에서 작가의 체온이 전해지는 듯 안온(安穩)하다.

동심과 풍류 수놓은 장욱진

도상봉이 인상주의 화풍의 생활미학에 충실했다면 장욱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풍류와 동심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어려운 시절을 관통하며 미술사에 길이 남긴 그의 작품에 어린이, 가족, 가축, 새 등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그만 토담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엄마와 아이들’), 동그란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까치(‘까치’), 개와 황소를 앞장세우고 갈 길을 재촉하는 모녀(‘나들이’) 등 소재와 파격적인 구도로 배치된 단순한 그림은 서양화가답지 않게 토속적이고 동화적이다.

그는 작은 화면을 자기 식으로 쪼개고 꾸몄다. 이색적인 기호와 색흔이 적용되고 표현되기 때문에 칼날 같은 예리함보다 부드러움이 배어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을 만큼 평이하다. 중관 스님은 장욱진의 그림을 풍류의 미학으로 칭하며 ‘천애(千崖)에 흰구름 걸어놓고/까치 데불고 앉아/소주 한잔 주거니 받거니 청산(靑山)들도 손뼉을 친다/달도 멍멍개도 멍멍’이라며 시로 읊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도상봉과 장욱진은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과거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한편 서양의 요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모색했다”며 “도상봉이 일상의 주변에서 취재한 모티브로 아카데믹한 예술 영역을 구축한 반면 장욱진은 자유분방한 조형의 진폭을 구가한 작가”라고 평했다.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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