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봄의 시작

입력 2019-03-04 17:23  

이대훈 < 농협은행장 leedaehoun@nonghyup.com >


이제 봄이 시작된다. 사람마다 봄을 느끼고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땅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새싹을 보며 생명의 기운을 느낄 것이다. 다른 어떤 이는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긋하고 쌉쌀한 봄나물 밥상을 생각할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코흘리개 하얀 손수건들이 삐뚤빼뚤 늘어선 초등학교 교정의 입학식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느끼고 기억하는 봄은 무엇일까? 이해인 시인의 ‘봄이 오면 나는’이란 시의 한 구절을 잠깐 떠올려 본다. ‘봄이 오면 나는/유리창을 맑게 닦아/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따스한 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분주히 봄을 맞이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나고 자란 내 유년 시절의 봄은 놀이공원, 꽃구경 등을 떠올리는 도시 아이들의 유년과는 사뭇 다르다. 긴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땅이 녹기 시작하는 이맘때쯤부터 분주해졌다.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을 기점으로 농사월력에 맞춰 농기구를 손보고, 논을 갈고, 못자리를 만들며 바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동장군이 물러났다 해서 느슨해진 마음과 함께 몸이 게을러지면 자칫 중요한 시기를 놓쳐 한 해 농사를 망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봄에 하루 쉬면, 겨울에 열흘 힘들다’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봄의 준비가 부족하면 그해는 힘든 겨울을 나야 했다. 나에게 봄의 시작은 부모님을 도와 한 해를 채비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자세는 훗날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이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힘이 됐다.

톨스토이는 ‘모든 땅이나 초목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고 봄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우리 인생의 봄도 그렇다.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봄은 준비된 자에게만 다가온다.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잡을 수 없는 한낱 아지랑이와 같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시작되고 있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봄일 순 없다. 오늘의 봄과 내일의 봄은 또 다를 것이다. 그래서 봄을 준비하는 방법도 늘 달라야 한다. 오늘도 난 봄의 시작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새로이 준비할 것인지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올 새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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