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PEF의 밸류업 사례탐구] 9. 한라시멘트 투자 21개월만에 2.4배 대박..베어링PEA의 엑시트 비법

입력 2019-03-11 18:06  

설비투자·전용선박 구입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물류비·연료비 수백억 절감
협상력 발휘해 연매출 2% 로열티 지급 계약 없애
인수대상 물색부터 전과정 모니터링하는 투자회수위, 베어링만의 비결



≪이 기사는 03월11일(06:4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16년 7월 한라시멘트 이사회에서 대체연료 비중을 높이기 위한 설비투자 안건이 통과되자 가장 놀란 이들은 기존 임직원이었다. 한라시멘트 경영진들이 지난 수 년 동안 모회사인 라파즈그룹 파리 본사에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의결이 지연됐던 사항이 이사회 부의 안건으로 채택돼 즉시 승인을 받은 것이다. 한라시멘트의 주인이 라파즈홀심그룹에서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 (BPEA)로 바뀐데 따른 변화였다. 승인절차가 복잡한 글로벌 기업과는 달리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이라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PEF 운용사의 차이였다.

2000년부터 세계 최대 시멘트 회사인 라파즈의 한국 계열사였던 한라시멘트는 우수한 기술력은 갖고 있었으나 적용할 수 있는 설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선진 기술을 활용하지 못했다. 설비투자가 이뤄지면서 한라시멘트는 2015년 20.6%였던 대체연료 비중을 지난해 29.3%(예상치)까지 높였다. 펫코크(석유정제 부산물)비중도 늘릴 수 있게 됐다. 시멘트를 만들 때 원료인 석회석을 1450℃ 고온으로 가열해 클링커(시멘트 반제품)를 생산하는 소성작업은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 펫코크 같이 저렴한 연료를 쓰면 연료비를 20% 이상 낮출 수 있었다. 대신 석탄과 같은 열량을 내기 위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펫코크 활용 기술력을 한라시멘트는 대체연료와 펫코크 투자를 통해 수백억원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승인이 늦어지던 전용선 투자 또한 베어링PEA로 주주가 바뀐 이후의 변화였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본 공장과 석회석 광산을 거점으로 포항 광양 인천 등 항구도시에 생산시설을 가진 한라시멘트는 전체 물량의 70~80%를 선박으로 운송했다. 운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베어링PEA는 8000t급 전용 선박을 구입을 승인했다. 덕분에 한라시멘트는 매년 20억원의 물류비를 줄일 수 있었다.

2018년 1월 베어링PEA는 한라시멘트를 이세아시멘트에 매각했다. 매각가격은 7740억원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PEF업계 전문지인 프라이빗에쿼티인터내셔널(Private Equity International)은 기업가치를 2.4배 높이고 70% 이상의 기록적인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한 한라시멘트 매각 거래를 ‘2018년 올해의 엑시트’ (Exit of the Year)로 선정했다. 베어링PEA의 기업가치 개선 및 투자금 회수(엑시트) 비법도 집중 조명을 받았다. 비결은 여러 해 묵은 숙원사업을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실행하는 스피드와 이를 가능케 하는 베어링PEA 특유의 엑시트 전략 및 투자접근법이었다.

기존 임직원을 놀라게 할 정도로 빠른 의사결정은 베어링PEA가 오랫 동안 한국의 시멘트 사업을 연구한 운용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한철 베어링 한국 대표는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들의 시멘트 산업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시멘트 회사 수가 너무 많다고 판단했다”며 “2015년 우리나라는 7개 회사가 과당경쟁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한국 시멘트 산업이 4~5개 회사의 과점시장으로 재편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라파즈그룹과 거래관계를 맺은 건 베어링PEA는 2013년 라파즈인도에 투자하면서부터였다. 2014년 라파즈그룹이 한라시멘트 매각을 검토할 때도 자연스럽게 베어링PEA가 거래상대방이 됐다. 매각은 불발됐지만 베어링PEA와 라파즈는 2014~2015년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 인수전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2015년 라파즈가 또다른 글로벌 시멘트 회사 홀심과 합병을 계기로 한국사업부를 팔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베어링PEA에게 인수를 제안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경기에 민감한 건설시장의 특성상 시멘트 회사 인수는 무리한 결정이라는 비관론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시멘트 업계가 4~5개사로 재편될 것이란 믿음은 확고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국내 시멘트 가격만 올려도 건실한 성장성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한라시멘트의 내부사정에 훤했기 때문에 베어링PEA는 인수하자마자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과감하게 기업개선 작업을 벌여나갈 수 있었다. 15년간 글로벌 기업의 소속사였던 덕분에 한라시멘트는 생산, 영업, 고객관리, 안전, 환경 등 전 부문에서 앞선 선진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옥계 공장은 라파즈그룹의 전세계 120여 생산시설 가운데 기술력과 운영능력 상위 10%에 주는 ‘최우량 공장(Mastered & Robust Plant)’에 선정될 정도로 한국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했다. 우수한 경영진도 한라시멘트의 자산이었다. 글로벌 기업의 특정 국가 사업부를 분할 인수하는 작업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업 인수합병(M&A)으로 꼽힌다. 글로벌 본사의 역량에 의지해 왔던 대부분의 영역이 홀로서기할 수 있으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어링PEA는 한국에서 운영하던 라파즈의 여러 법인을 모두 인수해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고 기술이전도 완료했다. 브랜드를 재정립(리브랜딩)해 매출액의 2%를 매년 로열티로 내던 계약도 없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2014년 682억원에서 2016년 958억원으로 연평균 18.5% 증가했다. 2017년 상반기, 직전 12개월치 상각 전 영업이익은 1038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금창출능력은 71.8%로 업계 평균 63.4%를 크게 웃돌았다. 예상보다 훨씬 빨랐던 엑시트는 베어링투자회수위원회로 대표되는 베어링PEA 만의 독특한 회수전략 덕분이었다. 투자회수위원회는 기업 인수를 검토하는 시점부터 전체 투자기간 동안 일괄매각, 부분매각, 배당금을 통한 투자금 회수, 상장(IPO) 등 모든 엑시트 옵션을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매각 타이밍을 진단한다.

한라시멘트의 조기 매각도 베어링투자회수위원회가 일찌감치 잠재 인수자 그룹을 파악하고 모니터링한 덕분이다. 2017년 7월 현대시멘트 인수전이 한일시멘트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다른 시멘트와 레미콘 회사들이 은밀하게 한라시멘트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한라시멘트 인수가 국내 시멘트 시장 재편의 마지막 기회라는 확신에서였다. 후보들의 인수의지가 강해 적정한 가치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베어링투자회수위원회는 전격적으로 한라시멘트 매각을 결정한다. 2017년 7월 매각작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2018년 1월 아세아시멘트에 매각을 완료할 정도로 엑시트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삼표시멘트의 동양시멘트 인수(2015년), 한일시멘트의 현대시멘트 인수(2017년)에 이어 아세아시멘트가 한라시멘트를 사들이면서 국내 시멘트 업계는 ‘빅5’ 체제로 재편됐다. IB업계 관계자는 “7개 회사가 출혈 경쟁을 벌이던 한국 시멘트 산업을 5개사로 재편해 과당경쟁을 해소하고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에 베어링PEA가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