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마켓+ㅣ'그녀의 사생활'은 현실, '내 아이돌'에 지갑 여는 2030 누나들

입력 2019-04-27 08:47  


"제가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생일에 선물도 보내고, 재롱잔치 하면 보러도 가죠."

tvN 수목드라마 '그녀의 사생활' 속 여주인공 성덕미(박민영 분)의 대사 중 일부다. 여기서 성덕미가 후원하는 아이들은 인기 아이돌 화이트오션이다. 33세 커리어우먼인 성덕미의 취미는 '덕질(팬 활동)'이다. 직장인 미술관에서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완벽한 큐레이터지만 회사 밖에서는 화이트오션 멤버 차시안의 활동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자신의 SNS에 공유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성덕미는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캐릭터가 아니다. 1990년대 말 H.O.T와 신화,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를 거쳐 엑소와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이어지며 발전한 아이돌 팬 문화의 중심에서 성장한 지금의 20대, 30대 '누나팬'들은 한류를 이끄는 팬덤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아이돌'이 컴백을 했다고 하면 박스 단위로 앨범을 구입을 하고, '최애'(가장 좋아하는) 그룹의 해외 투어 일정에 맞춰 휴가 계획을 짜는 현실판 성덕미들이 곳곳에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팬이 아닌 평범한 사람인 척 행동하는 것)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팬사인회 컷이 300장이에요"

'그녀의 사생활'에서 성덕미가 미술관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 관장 엄소혜(김선영 분)는 딸이 카드로 음반을 구매하는 데 500만 원을 썼다는 문자를 보고 분노한다. 성덕미와 함께 면접을 봤던 여성은 엄소혜 원장에게 "요즘 팬사인회에 가려면 그 정도는 구매해야한다"고 거들었다. 드라마에서 과장되게 표현된 걸까. 유명 아이돌들의 팬사인회에 참여했다는 이들의 반응은 "하이퍼리얼리즘", "민간인 사찰 수준"이었다.

직장인 김은진(33세) 씨는 "요즘 인기있다고 하는 아이돌 팬사인회에 갈려고 하면 최소 200장 이상은 사야 한다"며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은 가수는 300장이 기본이다"고 전했다. 앨범을 구매한 영수증으로 팬사인회 참여 인원을 추첨하는데,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앨범을 다량으로 구입하는 것. 앨범 한 장의 가격이 1만5000원 안팎임을 고려하면 300만 원에서 450만 원의 비용을 쏟아붓는 셈이다.

팬사인회에 비용을 쏟아붓고도 가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악수나 손깍지 끼기, 눈빛 맞추기는 물론 간단한 대화까지 가능하기 때문. 팬사인회 전에 팬들과 간단한 질의응답 등을 진행하면서 미니 팬미팅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여기에 자신의 구매한 앨범으로 '우리 아이돌'의 앨범 판매 기록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으니 1석2조인 셈이다.

하지만 팬사인회를 위해 구입한 앨범들은 박스 단위이기 때문에 보관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때문에 몇 장의 소장용만 남겨놓고 중고로 되팔거나 폐기한다. 김은진 씨는 "팬사인회 이후 매물로 나온 앨범을 주로 매입하는 중고 사이트가 따로 있다"며 "그렇지만 물건이 쉽게 잘 팔리는 게 아니라 폐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 우리 아이들과 함께 휴가를…해외 투어도 함께

이지은(31) 씨는 1년에 4~5번 정도 3박4일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해외 휴가를 즐긴다. 일정의 중심엔 '우리 아이돌'의 해외 투어가 있다. 되도록 같은 비행 편과 호텔을 예약하고, 현지 공연을 관람한다. 공연을 보지 않는 시간에 맛집을 찾고 관광도 하는 코스다.

휴가에 쓰는 비용은 "비행기와 숙박비, 공연 티켓 비용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 소요된다"며 "쇼핑이라고 해봐야 공연 굿즈를 사는 정도라 친구들이 휴가에 쓰는 총 소요 비용보다 특별히 더 많이 쓰는 것 같진 않다"고 밝혔다.

정보미(29, 가명) 씨는 공연은 한국에서 즐기고 해외 투어는 비행기를 함께 타는 것에 초점을 맞춘 케이스다. 인기 아이돌 멤버들이 대부분 비즈니스석을 예약하는 것에 착안해 같은 항공 편 비즈니스석을 예약한다. 정보미 씨는 "출국과 귀국편 비행기 속 시간을 공유하면서 남들이 못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 "덕질은 소중한 취미 활동입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덕질'을 삶의 활력소로 꼽았다. 학창시절부터 누군가의 팬이었고, 열정적으로 응원을 보냈던 이들이 성인이 되고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덕질'을 할 수 있게 된 것.

고수미(33) 씨는 "'탈덕'(덕질에서 탈출하다, 덕질을 끝낸다는 의미)은 없다, '휴덕'(덕질을 쉬다)만 있을 뿐"이라며 "같이 덕질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들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팬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생(사생활을 쫓는 악성 팬)들처럼 모든 일정을 쫓아다니며 한 달에 몇 천만원씩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아이들을 보고 스트레스를 푼다는 점에서 건전한 취미활동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코묻은 돈'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덕질로 스트레스 풀면서 공부했고, 나름 사회 구성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어리고 수준 낮다고 낮춰 생각하는게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대형 아이돌들을 거느린 엔터사에서도 이들의 소비 패턴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드러내는 의견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대형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누나, 언니 팬들은 결속력도 강하고 아이돌 팬덤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며 "'내 아이돌을 지키겠다'면서 주식도 사는 이들이다. 이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각 회사 팬매니저들의 기본"이라고 귀띔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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