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총수들, '과거 성공' 버리고 '미래 성장' 산다

입력 2019-05-01 17:41  

팔 때도 살 때도 과감하게…사업재편 '진두지휘'

LG, 사업구조 전면개편…CJ, 알짜사업도 매각
삼성·현대차, 새 성장동력 확보에 잇따라 '베팅'



[ 좌동욱/장창민/김보형/박상용/김보라 기자 ]
국내 주요 그룹들이 기존 사업을 발 빠르게 정리하고 있다. 당장 돈이 되더라도 미래 성장동력이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접고 있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사업,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다.

1일 경제계에 따르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LG그룹이다. 올 들어 지주사인 (주)LG가 전 계열사에 ‘계속 사업’과 ‘중단 사업’을 분류하라고 요청한 뒤 LG전자의 연료전지사업부 청산, LG디스플레이의 일반 조명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사업 철수, LG화학의 OLED 재료 기술 인수 등이 결정됐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하겠다는 구광모 회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CJ그룹도 지난 2월 케이블TV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을 매각한 데 이어 국내 2위 커피체인점인 투썸플레이스의 지분 45%를 팔기로 했다. CJ제일제당에서 사료사업부를 분할한 것도 후속 매각을 위한 수순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절박함을 갖고 특단의 사업구조 혁신 전략을 추진하라”며 경영진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면세점사업 철수를 결정한 한화도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 거론되면서 면세점과의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인수합병(M&A)시장의 한 관계자는 “요즘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사업부 매물도 많이 나오고 있다”며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사업 재편과 별개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름잡을 신산업 도전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등’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대차그룹도 미래 자동차 시장 선점을 위해 한 달에 한 번꼴로 자율주행차, 드론(무인항공기) 등 글로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돈되는 사업'도 미래 없으면 정리…신세대 총수들, 속전속결 사업재편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너 3, 4세 기업인들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창업주와 그의 옆에서 회사를 키운 2세에 비해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비핵심 사업이라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정리한다. 대신 주력사업과 신성장동력에 집중 투자하는 모습이다. 산업의 ‘판’이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 업(業)에 안주했다가는 경쟁에서 뒤처져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절박감에서다. 이두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경영환경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쉽지 않다”며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에 나선 3, 4세 오너들이 사업재편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

1일 경제계에 따르면 CJ그룹 계열사인 CJ푸드빌은 지난달 30일 커피전문점 투썸플레이스를 사모펀드(PEF)에 2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지난해 2월 CJ헬스케어(1조3000억원)를 한국콜마에 매각한 데 이어 올 2월에도 CJ헬로비전(8000억원)을 LG유플러스에 팔아치웠다. 모두 흑자 기업이지만 주력 사업이 아니란 이유로 정리했다. 이재현 CJ 회장은 2017년 경영에 복귀하며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위에 올라야 한다”며 ‘선택과 집중’을 주문했다.

LG그룹도 올초부터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지난달 25일 경기 평택 스마트폰 생산 라인을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LG디스플레이는 수익성이 나빠진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LG이노텍과 LG화학도 각각 비주력 사업인 고밀도다층기판(HDI) 사업과 액정표시장치(LCD) 사업 매각 등도 검토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달 30일 시내면세점 사업에서 3년여 만에 전격 철수하기로 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1000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인 탓이다. 면세점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3남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사업에 참여했을 정도로 그룹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해온 사업이다. 오너가(家)의 결단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신사업엔 과감한 투자

3, 4세 오너는 비주력사업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매출 상위 20대 기업의 지난해 말 보유 현금은 169조816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157조7624억원)보다 12조543억원(7.6%) 불어났다. 혹시나 모를 위기에 대비하면서 신성장 사업을 위한 투자 자금이다.

컨설팅 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스마트 공장과 같은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부터 사업구조 재편과 신사업 발굴, 인수합병(M&A) 대상 물색 등 업의 본질을 바꾸기 위한 자문을 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이 회사를 팔고 사는 기준도 과거와 달라졌다. 장동현 SK(주) 사장은 기관투자가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 규모는 따지지 않으며) 연간 내부수익률(IRR) 기준 8% 이상 기대할 수 있는 매물에만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3, 4세 오너는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결단을 내리면 과감한 투자에 나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반도체 비전 2030’ 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라서겠다는 구상이다.

신규 투자처 발굴도 확대하는 추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CEMA’로 불리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북미 지역에서 전기차(electric)와 이동성(mobility), 자율주행(autonomous)과 관련한 창의적인(creative)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활동이다. 지난해 인수한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퍼셉티브오토마타와 드론 업체인 톱플라이트테크놀로지스에 대한 투자도 CEMA의 일환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이들 그룹에 비해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2015년 경영 일선에 복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딥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선언하며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지주회사인 SK(주)는 2016년부터 반도체(SK머티리얼즈·SK실트론)와 바이오(미국 앰팩), 차량공유(싱가포르 그랩) 등 신산업 분야에 3조8000억원을 투자했다.

좌동욱/장창민/김보형/박상용/김보라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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