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10년…수표 사라지고 경조사비·회비 올랐다

입력 2019-05-05 17:52   수정 2019-05-06 11:09

'화폐의 왕좌' 꿰찬 신사임당
한국사회 어떻게 변했나

국내 최다 유통지폐 자리매김
최소 경조금 3만→5만원



[ 고경봉 기자 ] ‘우리나라 가장들의 지갑에 있는 지폐 10장 중 4장, 집 안에 있는 예비용 현금의 80%, 경조사비 사용의 80%, 우리나라에서 유통 중인 지폐 수의 3분의 1, 최초의 여성 모델….’

이 정도면 대충 얼마짜리 지폐를 얘기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올해로 만 10살이 된 5만원권의 모습이다. 5만원권은 2009년 6월 한국 인구수와 비슷한 4970만 장이 발행되면서 처음 등장해 비교적 빨리 ‘대세’ 화폐로 자리 잡았다. 5만원짜리 뭉칫돈이 마늘밭이나 세금 미납자의 금고에서 발견될 때마다 ‘부정축재’ ‘돈맥경화’의 대명사로 낙인찍히기도 하지만 소득 증가에 맞춰 활용도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민 화폐로 떠오른 ‘신사임당’

5만원권은 지난 10년간 185조9392억원어치, 37억1878만 장이 발행됐다. 발행된 5만원권을 바닥에 한 장씩 깔면 여의도를 13번 덮고, 세로로 나열하면 지구를 130바퀴 감을 수 있는 분량이다. 시중에 풀린 발행잔액(발행액-회수액)은 94조7267억원(18억9500만 장)으로 이미 다른 지폐를 훌쩍 넘어섰다. 각각 1조5976억원(15억9800만 장), 15조1472억원(15억1500만 장)인 1000원권, 1만원권을 누르고 국내 최다 유통 지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5만원권의 출현으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지폐는 1만원권이다. 5만원권이 나오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에만 해도 1만원권 발행잔액은 연 5% 안팎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12.9% 급감했고 이후 10년간 두 차례만 빼면 매년 유통 물량이 줄고 있다.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도 운명을 장담하기 힘든 처지에 놓였다. 이용 건수는 2009년 307만 건에서 지난해 31만 건으로 10분의 1토막이 났다. 1000원권과 5000원권도 발행잔액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이는 5만원권의 영향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사용 빈도 감소와 소액 모바일 결제 확산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 영향 미미…경조사비, 회비는 늘려

2015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당시 5만원권의 만족도는 지급수단으로서 68%, 가치저장수단으로서는 84%에 달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활용도가 그때보다 더 늘었다.

하지만 국민 화폐로 자리 잡기 전까지 논란도 적지 않았다. 신사임당이 유관순, 소서노, 선덕여왕, 김만덕 등 쟁쟁한 인물을 제치고 5만원권 모델로 선정됐을 때 일각에선 ‘현대적인 여성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발행 초기 5000원권과 잘 구분이 가지 않아 ‘택시비를 잘못 냈다’ 등의 하소연도 잇따랐다.

용돈 등 이전지출 규모 등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경조금에서는 82%, 사적이전지출에서는 51%에 5만원권이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종교기부금·친목회비 등에 5만원권을 내는 경우도 36.5%로 1만원권(62.2%)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하경제에 활용된다”거나 “장롱 속에서 돈의 흐름을 가로막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90~100%에 달했던 화폐 환수율은 이후 70% 안팎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엔 소폭 회복했지만 환수액이 크게 늘었다기보다는 발행액이 급감한 영향이다. 화폐 환수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한은이 시중에 풀어 놓은 돈이 한은으로 되돌아오지 않고 경제주체들의 호주머니에 고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이후 통화 유통 속도(국내총생산/광의통화)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0.67배에 그쳤다. 광의통화(M2)가 늘어난 만큼 국내총생산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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