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철길따라 '청정 봉화' 비경에 흠뻑 낙동강 세평 하늘길, 12선경 품었구려!

입력 2019-05-19 15:10  

여행의 향기

경북의 숨겨진 보석 ‘봉화이야기’

백두대간 협곡열차 여행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물소리가 가득한 봉화는 맑은 땅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굽이굽이 산속을 기차로 달리고, 숲속에 열린 길을 천천히 걷는 것은 청정 봉화 여행의 백미다. 철길 따라 숲길 따라 물길 따라 깊고 푸른 봉화로 느린 여행을 떠나보자.

자연과 하나 되는 기차여행 V-트레인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분천역에는 대자연의 협곡을 달리는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가 출발한다.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시속 30㎞로 천천히 산허리를 넘는다. 분천역, 비동승강장, 양원역, 승부역, 철암역까지 3량짜리 열차가 하루 3회 왕복 운행된다.


분천역은 금강송으로 유명한 춘양목을 운송했던 시발역이다. 분천역을 떠난 협곡열차는 가장 먼저 아름다운 호수를 간직한 마을 비동승강장에 정차한다. 숲길을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비동승강장에서 열차를 타고 내린다. 열차가 잠시 정차하면 마을 주민들이 파는 막걸리와 주전부리를 맛볼 수 있다. 느릅나무, 산두릅, 민들레, 대추 같은 지역특산물도 좌판에 널려 있다.

두 번째 정차한 양원역은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이자 가장 작은 역이다. 1955년 12월 31일 영암선(영주~철암) 철길이 개통됐지만 석탄만 수송할 뿐 마을에 기차가 정차하지 않았다. 봉화의 원곡마을과 울진의 원곡마을, 산골 오지 주민들은 6㎞나 되는 길을 걸어 승부역에서 기차를 탔다. 이런 애환을 담아 1980년대 후반 청와대에 간이역사를 지어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주민들의 염원으로 마을에 기차가 정차하게 되자 주민들이 직접 승강장, 대합실, 화장실을 만들고 이정표를 세웠다. 역명은 양쪽 원곡이란 뜻인 ‘양원’이라 불렀다.

창밖으로 그림 같은 협곡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지나가고 열차 안에서는 7080세대가 즐겨 듣던 추억의 노래가 흐른다. 열차 안에 준비된 교복을 입고 추억의 사진을 남겨도 좋다. 열차가 캄캄한 터널로 들어서면 천장에서 야광 눈꽃무늬와 야광 별자리가 반짝반짝 빛난다. 산골짜기 선로를 따라 낭만이 흐른다.

양원~승부 비경길을 달리다 세 번째 정차역 승부역에 내린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고 할 만큼 오지 중의 오지인 석포면 승부역은 국내 기차역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봄의 승부역은 연둣빛 물이 한창 올랐다. 가을과 겨울에는 승부역에 환상선 단풍열차와 눈꽃열차가 운행된다. 승부역은 겨울 기차여행으로 손꼽힌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열린 창 밖을 내다보면 ‘낙동강세평하늘길’과 ‘낙동정맥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이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종착지는 강원 태백시 철암역이다. 역 근처에 1980년대 탄광촌의 모습이 담긴 ‘철암탄광역사촌’이 있다. 철암역에서 중북내륙 3도(충청북도~강원도~경상북도)를 하나로 잇는 중부내륙 순환열차(O-train)를 타고 승부~양원~분천을 거쳐 수도권까지 한 번에 올 수 있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 트레킹 ‘느림의 미학’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봉화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다. 낙동강 물길과 영동선 철길을 따라 걷는 느림의 길이기도 하다. 양원·승부 비경 구간, 비동승강장에서 양원역에 이르는 체르마트 구간, 비동승강장에서 분천역으로 이어진 12㎞의 길을 걷다 보면 펼쳐진 모든 풍경이 온몸으로 흘러들어온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을 걷다 보면 12선경을 만나게 된다. 용의 전설이 깃든 갓바위, 용관(龍冠)바위를 지나면 깊은 골짜기에 암벽, 은병대(隱屛臺)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관란담(觀瀾潭)에는 잔잔한 물결이 바위를 휘감아 흘러가 못에 고인다.

거북 형상을 한 바위, 구암(龜巖)에는 설화가 담겨 있다. 거북은 달에 살고 있어 월섬이라 불렸다. 신선(神仙) 세계에서 유람하며 선녀들에게 장난치던 거북은 신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설홍선녀를 꾀어 인간 세상으로 보낸다. 그 죄로 거북바위가 돼 세상에 남게 됐지만 달과 선계를 잊지 못하고 곤륜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설홍선녀가 연인의 손을 잡고 달빛이 놓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는 연인봉과 선약소, 암벽이 양쪽에 미닫이문처럼 열려 있어 그 사이로 신선이 살던 곤륜산이 보인다는 선문(仙門)이 골짜기에 우뚝 서 있다. 양원마을을 지나 산길을 내려오면 비동에 이른다. 땅이 기름지고 먹거리가 많아 살이 찌는 동네라 살찔 비(肥)를 쓴다. 굽어 흐르는 낙동강 위의 철교를 건너면 푯말 하나만 서 있는 텅빈 승강장이 소박하다.

달의 정원, 월원(月園)이라 부르는 연못에는 와탑산이 거울처럼 비친다. 분천역에 다다르면 신선들이 노닐던 별천지인 융화동천(融和洞天)이 마을을 품는다.

시의 향기가 느껴지는 외씨버선길

맑은 공기 가득한 경북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과 강원 영월군까지 13개 구간, 240㎞를 연결하는 외씨버선길은 시인 조지훈의 ‘승무’에 표현된 외씨버선과 닮은 길이다.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한 버선처럼 길게 이어진 길을 사뿐히 걸어본다. 봉화의 외씨버선길은 춘양면에서 재산리, 갈산리에서 물야면 오전리까지다.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다채롭다. 모든 나무 가운데 으뜸으로 여기는 춘양목이 우거진 춘양목솔향기길에서 그윽한 솔향기가 풍긴다. 예전에 봉화에서 가장 컸던 억지춘양시장에서는 넉넉한 인심을 만나기도 한다. 고즈넉한 고택에서 잠시 쉬다 길을 나서면 사과꽃 향기 가득한 마을에 흰 눈처럼 내린 꽃이 눈부시다. 조선 제일 약수라는 두내약수탕과 오전약수탕을 지나 옛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원도와 만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갈산천 구곡길

재산면 갈산리에서 명호면 삼동리까지 이어진 갈산구곡의 구곡(九曲)은 ‘아홉 물굽이’라는 뜻이다. 물줄기가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에서 경치 좋은 아홉 곳을 선정했다. 중국의 주자(朱子)가 복건성 무이산(武夷山)의 아름다운 계곡 아홉 곳을 정해 이름 지은 뒤 오곡에 ‘무이정사’를 지어 후학을 가르친 데서 유래했다.

산과 물이 빼어난 영남지역에는 옥산구곡, 안동 도산구곡, 봉화춘양구곡 등 구곡문화가 활발했다. 갈산구곡은 갈천 김희주가 정한 구곡으로 다른 구곡처럼 경치가 뛰어난 곳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일곡(一曲) 합강은 재산천과 낙동강이 합쳐진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넘어 다니며 장사했으나 지금은 오가는 사람 없이 빈 배만 강 위에 떠 있다. 이곡(二曲)은 하천에 돌이 많아 돌로 담을 쌓았는데, 그 수가 50여 개가 넘을 정도로 많아 쉰담이라고 불렀다. 삼곡, 토골에는 옹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 이곳에서 만든 옹기는 전국으로 팔릴 만큼 이름났다고 한다. 삼곡과 사곡 사이에 있는 용소목이는 용가마처럼 생긴 둥근 못에 물이 빙글빙글 돌다가 흐르는 모양이다.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주실 두 타래를 넣어도 끝이 닿지 않을 만큼 깊고,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찬물내기라 불리는 사곡에는 17가구가 모여 살면서 식수로 이용한 샘이 있었는데, 이 샘물은 아주 차갑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강변에 만발한 진달래 꽃잎이 물에 떠내려가며 꽃냄새를 풍긴다고 해 골내골이라고 부르는 오곡과 육곡, 칠곡, 팔곡, 구곡까지 갈산천 구곡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솔 향기 그윽한 봉화 솔숲갈래길

봉화읍에서 네 갈래로 갈라지는 솔숲갈래길은 봉화 읍내를 흐르는 내성천 산책길, 석천계곡에서 닭실마을로 가는 옛길, 닭실마을 안에 있는 토담길로 이어진다.

길은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다. 선비의 기상처럼 쭉쭉 뻗어 있는 금강송 숲길에서 솔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너럭바위 사이로 흐르는 석천계곡과 그 앞에 별장처럼 세워진 석천정사의 풍경은 마치 산수화를 옮겨놓은 듯하다. 계곡에서 난 오솔길에는 야생화가 손짓한다. 길을 따라 나오면 넓은 논밭이 펼쳐진다. 푸른 논 너머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지세의 전통마을, 닭실마을에 고즈넉한 고택이 모여 있다. 오랜 세월의 더께를 입은 정자, 청암정은 멋스럽다. 계곡과 들판을 따라 역사와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솔숲갈래길은 운치 있다.

퇴계 이황이 걸었던 예던길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서 관창리까지 난 예던길은 낙동강을 따라 청량산과 안동 도산을 잇는다. ‘녀던길’이라고 불렸다. ‘녀던’은 ‘가던, 다니던’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퇴계 이황이 13세부터 숙부 이우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 오산당(지금의 청량정사)까지 걸었던 길이다. 노년에는 퇴계의 종택이 있던 곳에서 청량산까지 50리 길을 제자들과 함께 걸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를 존경하는 후학들이 먼 길을 찾아와 옛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었다. 그런 이유로 이 길에는 바위 곳곳에 퇴계의 시가 새겨져 있다. 그가 남긴 시를 읊조리며 수려한 풍경 속을 걷는 사색의 길은 고즈넉하다.

봉화=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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