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박병원을 경제부총리로 써라"

입력 2019-05-23 18:13  

토론 없는 경직된 집단사고로 외면
'촛불지분'이 정책 유연화 원천봉쇄
화전민식 경제운용, 위기돌파 못해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다들 궁금해하면서 납득 못 하는 게 있다. 왜 문재인 정부는 먹고사는 경제문제에 대해 그 어떤 충고나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을까.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가계 실질소득이 줄고, 성장률은 뒷걸음이고, 실업은 지난 20년 새 최고인 현실을 보면 더 그렇다. 국내외 석학들은 물론 국책연구기관(KDI), 국제기구(IMF, OECD)까지 한목소리로 이대론 안 된다는데도 꿈쩍도 않는다.

경제난은 어떤 정권이든 치명적이다. 민심이 이반하고 야당에 공격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 쉽지 않음을 여당 의원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만 잠시 보류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경제팀이 있다지만 관료 출신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은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관료 불신이 ‘패싱’으로 이어진 지 오래다. 내각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여당 출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참여연대 출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정도다. 대신 “정책방향에 대해선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김수현 정책실장, “고용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정태호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86그룹 실세들만 일사불란하다.

청와대도 눈과 귀가 있을 텐데, 민초들의 팍팍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오불관언인 것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방어심리 탓으로 흔히 추측한다. 경제도 정치적 표 계산 관점에서 본다는 얘기다. 애써 유리한 경제지표만 내세우며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이유다.

하지만 이걸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금융계 인사 A씨는 “대선 직전 한 경제연구소장이 ‘경제는 우파에게 맡기라’고 조언했다가 문재인 후보의 얼굴이 굳어져 당황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시장과 기업 활력을 도모하는 우파정책에 본능적 알레르기가 있는 듯하다.

86그룹 실세들을 겪어본 전직 관료 B씨의 설명을 들으면 좀 더 분명해진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해서 실패했다’고 여겨, 더 철저히 좌회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촛불혁명 정부’이기에 주도세력들마다 지분이 있다. 각 세력이 정책을 맘대로는 못 해도 비토권은 갖고 있다.”

사실 대선공약과 100대 국정과제를 보면 대개 ‘임자’가 있다. 버스, IT업계 등 비명소리 난무하는 획일적 주 52시간 근로제, 현실과 동떨어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정책 유연성이 원천봉쇄돼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10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실용주의가 아쉬워진다. 당시 청와대에서 마흔 안팎이던 86그룹은 서열상 관료 위에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50대이고 지위도 높아져 당·정·청의 핵심이다. ‘계급장 떼고’ 토론하기를 즐긴 노 전 대통령과 달리, 토론 없이 확증편향에 갇힌 집단사고만 엿보인다. 촛불세력은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딴지를 걸 수 있다. 의사결정 구조상 아무리 밖에서 정책 전환을 충고해봐야 듣지도, 들을 수도 없다는 얘기다.

운 나쁜 노무현 정부는 카드사태, SK글로벌 부실,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와 함께 출발했지만, 운 좋은 문재인 정부는 반도체 활황, 세계경제 회복, 세수 호황을 등에 업고 시작했다. 그런데도 2년 만에 총체적 무기력 상태로 치닫고 있다. 현실감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여당 중진은 “노무현 정부가 이헌재를 썼듯이, 경제부총리로 박병원 전 경총 회장을 기용해야 한다”면서도 스스로 현실성을 낮게 봤다.

대외환경마저 먹구름이 짙어져 올해 2%대 성장조차 버거워지고 있다. 그간 경제 운전솜씨에 비춰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지 다들 불안해한다. ‘내일은 없다’는 화전민식 경제운용으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다. 이젠 시간도 없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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