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동률 꼴찌' 추락한 수출 메카…구미가 운다

입력 2019-05-26 17:37   수정 2019-05-27 17:14

곳곳에 문 닫은 공장
씁쓸한 産團 출범 50돌

자고 나면 문 닫는 공장들
일자리 찾아 떠나는 청년들



[ 구은서/조재길 기자 ] 지난 24일 찾은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곳곳에는 ‘사업장 매매’ ‘한시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자물쇠로 잠긴 한 기계 공장엔 ‘수도요금 미납으로 물을 끊겠다’는 작년 10월 날짜의 공지문이 거미줄과 엉겨 붙어 있었다. 자동차 부품업체 헥스하이브의 조중길 사장은 “입주 업체 대표끼리 만나면 이제 어떻게 먹고사느냐는 얘기만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국 최대 생산·수출기지로 꼽히던 구미산단이 추락하고 있다. 주력이던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데다 전자 공장도 잇달아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산단 조성 50주년’을 맞은 구미산단의 1분기 가동률은 전국 평균(76.9%)을 크게 밑도는 65.9%로, 전국 최하위권이었다. 2010년 87.9%이던 구미산단 가동률은 2017년 70.0% 밑으로 떨어진 뒤 작년엔 68.8%에 그쳤다. 중소업체는 더 심각하다. 종업원 50인 미만 사업장의 가동률은 지난 3월 34.8%에 불과했다. 전자·섬유산업의 중심지로 불리던 구미산단은 2015년만 해도 근로자가 9만8292명(외국인 투자지역 제외)으로 10만 명에 육박했다. 작년엔 8만6751명으로 3년 만에 11.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342억달러에서 249억달러로 27.2% 급감했다. 국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 역시 6.5%에서 4.1%로 축소됐다. 조성태 산단공 혁신본부장은 “삼성 LG 등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베트남 중국 등지로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구미 경제가 급속히 와해됐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지역 경제 침체는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구미시 관계자는 “인건비 상승과 노사 불안, 규제 등 대기업의 이탈 요인은 복합적”이라며 “지역 경제를 살리는 건 기업인만큼 파격적인 인센티브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국 최고 취업률로 명성을 얻었던 구미 금오공대는 취업률이 한때 80%를 웃돌았지만 현재 6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高임금에 삼성·LG 떠나자 '휘청'…최저임금 인상에 희망도 사라져

지난 24일 찾아간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경영자협의회. 사무실 한쪽에 ‘반송’ 도장이 찍힌 우편물 1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올초 산단 입주기업 1200여 곳에 보냈다가 수취인 및 주소 불명 등 사유로 반송된 서류들이다. 공단본부 명부에는 등록됐지만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이란 게 협회 측 설명이다.

김영관 구미산단경영자협의회 상근부회장은 “자고 나면 폐업하는 공장이 부지기수”라며 “산단 가동률이 60%대로 집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산단은 1969년 9월 인가를 받은 뒤 올해 ‘50돌’을 맞았지만 그럴듯한 기념식 준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기계음 끊긴 구미공단엔 한숨 소리만

구미산단 1단지 곳곳에는 쓰레기 더미와 함께 방치된 공장이 많았다. 구미산단 공장 전문이라는 인근 부동산중개업체 대표는 “산단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헐값에라도 공장을 팔고 ‘빚잔치’를 한 뒤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납품계약을 따내려고 발버둥치는 중소기업도 있어 중개업소도 ‘비밀 엄수’ 문구를 넣어 광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백 평 규모의 공장 부지를 통째로 임차할 기업이 거의 없어 영세업체 여러 곳이 쪼개 빌리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게 중개업체들의 얘기다.

전국 꼴찌 수준인 구미산단 가동률은 위험 수위다. 가동률은 최대생산능력 대비 생산액이다. 올 1분기 기준 65.9%로, 전국 63개 산단의 평균(76.9%)보다 11.0%포인트 낮다. 구미산단 가동률은 2011년까지만 해도 전국 평균보다 높은 85~90%였는데 2012년 이후 전국 평균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종업원이 50명보다 적은 중소·영세업체의 가동률은 훨씬 심각하다. 올 1월 30.7%, 2월 32.1%, 3월 34.8% 등에 그쳤다. 구미시 관계자는 “구미산단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가동률이 전국 최저인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현재 분양 중인 구미산단 5단지 분양률도 22%에 그치고 있다”고 걱정했다.

10여 년간 구미산단 1단지를 지켰다는 한 케이블 생산업체 대표는 “직원을 많이 정리했는데도 일감이 없어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며 “대출 이자를 카드로 돌려막기 하고 있는데 언제 한계에 부닥칠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삼성·LG 빠지고 최저임금발 쓰나미까지

구미 경제의 추락은 예고됐다는 게 현지의 반응이었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2010년을 전후로 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생산기지를 해외와 수도권으로 잇따라 이전했기 때문이다. 조성태 한국산업단지공단 산단혁신본부장은 “구미산단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자와 섬유산업을 양대 축으로 수출·생산 부문에서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던 곳”이라며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게 결정타가 됐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및 협력회사들의 공장 이전은 생산성 하락이 주된 배경이었다. 고임금 구조가 고착화한 데다 수도권에 비해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컸다. 설상가상으로 최저임금 급등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은 한계 상황을 맞았던 중소·영세기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구미산단 가동률과 전국 평균 간 격차는 2017년부터 10%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됐다. 산단 3단지의 한 입주업체 사장은 “일감만 많으면 정부가 사람을 뽑지 말라고 해도 고용을 늘릴 것”이라며 “인건비를 한꺼번에 이렇게 올려놓고 왜 일자리를 늘리지 않느냐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자리 줄자 청년들도 타지로

수 년 전 10만 명을 넘던 산단 내 근로자 수는 현재 8만 명대로 줄었다. 반대로 실업자는 넘쳐나고 있다. 구미 실업급여 수급자는 2017년 1만2008명에서 작년 1만4158명으로 17.9% 늘었다. 이날 송정동 구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도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이 10여 명 있었다. 상담을 마친 한 50대 남성은 “젊은 사람도 실업급여 받겠다고 줄 선 걸 보니 경기가 진짜 안 좋은가 보다”고 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있다. 구미시 청년인구(만 15~39세)는 2013년 17만4226명에서 작년 15만9926명으로 줄었다. 감소폭은 연평균 1.7%다.

한때 80%를 웃돌던 금오공과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2015년 76.1%로 낮아졌고, 2017년에는 63.1%로 떨어졌다. 금오공대 취업지원본부 관계자는 “2000년대만 해도 졸업생의 40% 정도는 구미산단 등 경북권에 취업했는데 지금은 15% 정도”라며 “양질의 일자리가 반의 반토막이 났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밤마다 젊은 층이 몰렸다는 구미 시내(문화로)에도 빈 점포가 많이 눈에 띄었다. 1~3층에 모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린 곳도 있었다. 30년 넘게 문화로에서 부동산 중개를 했다는 한 공인중개사는 “1~2년 전보다 임대료가 30%가량 떨어졌는데도 핵심 입지 공실만 최소 25곳”이라고 전했다.

구미=구은서/조재길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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