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규제로 압박하면 기업도 금융투자도 해외로 빠져 나가요

입력 2019-05-27 09:00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국내 막히면 해외로…'글로벌 풍선효과' 누구도 못 막는다

지난 1분기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파생상품 거래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는 한경 보도(5월 21일자 A1, 4면)는 우리가 얼마나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안방에서, 출퇴근길에 휴대폰으로 하는 선진국 시장 파생상품 거래가 일상이 됐다.

과도한 변동성과 고도의 위험성 때문에 과열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지나치게 위축돼도 문제인 게 파생상품 시장이다.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주식 채권 통화 원자재 등 투자 상품의 거래에서 위험 분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파생상품 시장이 몇 년 새 급속도로 위축된 주 원인이 거미줄 같은 규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규제가 그렇듯, 이 시장의 규제들도 명분은 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구실이 앞세워지면서 온갖 규제가 누적됐고, 그런 절차나 장치가 싫은 투자자들이 해외시장으로 가버리면서 국내시장은 쪼그라들고 있다.

국내시장을 억지로 누르는 바람에 해외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건 파생상품 시장만이 아니다. 국내 암환자들이 일본으로 가서 줄기세포치료를 받는 현실도 1163건(2017년)에 달하는 바이오 분야 규제 탓이다. 더구나 일본에서 시술되는 줄기세포치료제의 원천기술은 국내 기업이 가진 경우가 많다. 20년째 시범서비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 후발주자인 중국은 정부가 나서 인공지능(AI) 기반의 원격진료를 활성화하면서 빅데이터 구축까지 내달리고 있다. 서울의 암 환자가 베이징 AI 의사로부터 진단과 처방을 받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AI·5G(5세대)·빅데이터가 국경의 의미도, 원거리의 장애도 없애면서 글로벌 풍선효과는 심화될 것이다.

높은 상속세·법인세나 고용·노동 관행 등을 이유로 해외로 나가는 자산가나 기업의 이전 행렬은 법적·제도적·행정적 압박에 따른 풍선효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해외 이주자가 2200명으로 전년의 2.7배로 늘어났고, 이 중 상당수가 상속세 부담을 피하려는 부자다. 상속세가 없는 곳으로 이주하는 부자들 행렬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개방화·국제화된 시대다. 종종 투자와 교역에서 장벽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국경이 낮아지고 인적·물적 이동이 가속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단일 국제시장에서 만국이 경쟁하고, 국가 간 비교도 일상화되고 있다. 국내만 보는 낡은 규제와 퇴행적 행정으로 기업과 개인, 시장을 억누르면 글로벌 풍선효과를 부추길 것이다. 개방과 국제화의 물결을 타면서 성장해온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받아들이며 선도하는 길 외에 대안이 없다. 이를 부인하면 해외자본 이탈, 인재와 국부 유출, 산업 침체와 금융 붕괴로 미래와는 계속 멀어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5월 22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국제간 상품 거래 자유로운 시대에
각종 규제로 글로벌기준 무시하면
인적·물적 자원 해외 유출 못막아

열강 제국들이 활개를 치고 ‘민족 국가’가 하나의 흐름이었던 시절까지만 해도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국경은 매우 높았다. 보통의 사람이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지정학적인 특수성에 정부의 권한까지 매우 강했던 과거 한국은 특히 더 그러했다.

한국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것도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가능했다. 해외여행 자체를 매번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한국 사회도 많이 변했다. 자본의 이동은 더욱 극적으로 변했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달러가 귀하다보니 해외로 자금 송금은 엄격히 제한됐다. 정부가 신고나 승인제,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자본의 이동자체를 막았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저개발국이 30~40년 전 한국처럼 그런 규제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자국의 산업과 시장 보호 등 여러 가지 이유와 명문이 내세워진다.

하지만 세계는 개방과 국제화라는 큰 물결을 타며 변해왔다. 인류 전체가 성장할 수 있는 큰 기반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시작은 이런 메가트렌드를 형상하는 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자유로운 상품의 거래에 이어 인적 교류(서비스의 거래)도 과감하게 이뤄졌다.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도 급속도로 진행됐다. 그 결과 미국 중국 등 해외의 자본이 별다른 제한 없이 한국의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까지 사들일 수 있다. 물론 한국인도, 아예 한국에서 주로 생활하면서도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어떤 자산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일자리에 관한 한 아직도 각국 정부의 보호정책이 남아 있지만, 일자리에서조차 개방이 대세다. 프로 스포츠, 연예계, 전문 과학계, 학계 같은 곳은 거의 경계가 없는 곳이다.

풍선효과는 국내 경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의료 서비스, 카지노관광 같은 사례에 이어 파생금융 시장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에서의 규제를 회피하려는 행렬은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법과 행정, 제도로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마구 휘두르다가는 큰 부작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부만 외면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메가트렌드다. 개방화·국제화 시대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하면 인적·물적 자원이 다 빠져나가 큰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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