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 따라 성채·포도밭 이어지는 그 곳…프랑스 '내추럴 와인'의 장인을 만나다

입력 2019-06-02 14:47  

여행의 향기

나보영의 '걸어서 와인 속으로' - 프랑스 루아르



요즘 전 세계는 물론, 서울에서도 내추럴 와인의 인기가 뜨겁다. 내추럴 와인 바(bar)들이 핫플레이스로 꼽히고, 레스토랑과 호텔들에도 리스트가 늘고 있으며, 애호가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포도로 인공적인 손길 없이 만든 와인을 뜻한다. 인공적인 손길이란 배양된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첨가물을 더하고, 와인을 맑게 하는 청징과 여과를 거치는 등의 과정을 의미한다. 내추럴 와인은 이런 작업 없이 포도가 자연발효되기를 기다려 얻어낸 와인이다. (발효를 멈추거나 와인을 보존하기 위해 넣는 이산화황도 병입 직전에 변질 예방 차원에서 극소량만 넣거나 아예 넣지 않는다.)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보면 약간 밍밍하거나 시금털털하다고 느끼기 쉽다. 자연 발효된 쿰쿰한 향미가 도는데 그 향토적인 향이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번 마시다 보면 정제되거나 가미되지 않은 살아 있는 맛에 눈뜨게 되고, 서서히 번지는 여러 겹의 미감에 반해 자꾸만 찾게 된다. 이미 유럽과 일본에서는 와인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고, 한국에서는 지금 한창 성장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는 곳, 루아르

최근에 내추럴 와인 장인들을 찾아 프랑스 와인 산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왔다. 파리에서 가까운 루아르(Loire)부터 여행을 시작했는데, 멋진 장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1세기부터 포도가 자라기 시작한 루아르는 중세시대 수도사들에 의해 와인 양조가 번성했다. 왕족과 귀족들은 궁전을 짓고 낭만적인 휴가를 즐겼는데,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는 국왕이 직접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예술가들을 초청해 정원과 성채를 가득 세웠다. 덕분에 19세기 작가와 화가들의 작품에서 더없이 낭만적인 장소로 묘사되곤 했다.


지도를 놓고 보면,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12㎞의 루아르강 옆으로 오를레앙(Orleans), 투르(Tours), 낭트(Nantes) 등의 소도시가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차를 달리면 80여 개에 달하는 고성들이 등장하고, 야트막한 언덕들마다 포도밭이 펼쳐진다. 루아르는 예부터 인위적인 작업이나 첨단 기술의 사용을 배제하고 토양과 포도 고유의 풍미를 담은 와인을 만드는 데 힘써온 산지여서 내추럴 와인 생산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지구를 사랑한 천재 와인 메이커 ‘알렉상드르 방’

루아르강 동쪽 자락 푸이 퓌메(Pouilly Fume) 마을에는 ‘내추럴 와인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도멘 알렉상드르 방(Domaine Alexandre bain)’이 있다. 오너이자 와인 메이커인 알렉상드르 방은 트랙터 대신 말을 이용해 밭갈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접 찾아갔을 때 그는 “6~7t에 이르는 트랙터로 밭을 갈면 그 무게에 눌려 흙이 딱딱하게 굳고 공기 층도 막혀버린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밭의 미생물과 식물들이 다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포도꽃이 피기 전인 4월의 포도밭에는 각종 들풀과 허브가 자라고 있었다. “이 허브들이 양분을 머금고 있다가 밭갈이를 할 때 그 영양을 포도나무 뿌리로 넘겨줘요. 그 영양소가 줄기를 통해 열매를 키우죠. 허브를 죽이지 않으면 화학 비료를 따로 주지 않아도 포도나무가 잘 자랄 수 있어요.” 방의 아이들은 ‘밭에 나가서 풀 따먹고 놀자’고 아빠를 조를 때가 많단다. ‘이건 이름이 뭐고, 맛이 어떻고, 엄마가 어떤 요리에 넣어줬고’ 하면서 재잘거리곤 한다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양조장 앞마당에서 알렉상드르 방의 와인들을 맛봤다. 산도가 두드러진 기존의 푸이 퓌메 와인들에 비해 아로마가 다양하고 질감이 부드러웠다. 그는 산미보다는 숙성을 중시해 포도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수확한다고 한다. 포도가 최대한의 풍미를 지닐 때까지 기다려주면 별도의 배양 효모나 첨가물 없이 좋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내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이 토양과 포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농법을 연구하는 건 물론이고, 와인을 양조하는 모든 단계에서 늘 생각하죠. 여기서 농사를 짓는 순간부터 먼 어딘가의 식탁에 와인이 닿기까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법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와이너리에 머무는 한나절 내내 방의 부인 캬오르가 함께했고, 세 명의 자녀와 반려견도 곁에서 뛰어놀았다. 이곳에 살면 포도도 동물도 사람도 건강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떠나기가 아쉬웠다.

포도밭 펼쳐진 시골집에 머무는 여행 ‘도멘 브레통’

루아르강의 중앙부 투렌(Touraine) 지역에는 2세대가 함께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도멘 브레통(Domaine Breton)이 있다. 풀 네임은 1세대 부부의 이름을 딴 ‘카트린과 피에르 브레통(Catherine e Pierr Breton)’이다. 먼저 카트린과 피에르의 장남인 폴 브레통을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는 겨우 아장아장 걷는 아가일 때 처음 와인을 맛봤다고 한다. 주스인 줄 알고 입에 댔다가 깜짝 놀랐다고. 지금은 어엿한 와인 메이커로서 화이트 와인 양조를 전담하고 있다. 프랑스 식 순대인 부댕(Boudin), 소금에 절인 각종 가공육 샤르퀴테리(charcuterie) 등에 곁들인 화이트 와인들은 아주 경쾌하고 시원했다.

점심 이후에는 카트린 브레통과 함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인공적인 손길이 들어가는 순간은 오로지 열매 생장 중에 곰팡이가 번식했을 때뿐이에요. 유기농법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화합물인 구리를 씁니다. 독성은 없지만 그래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쓰고 싶지 않아서 전체에 살포하지 않고 끝순에만 조금씩 발라줘요.” 봄부터 초여름까지 매주 4~5일가량 나뭇가지 끝을 살펴보면서 필요한 부분에만 바른다고 한다. 드넓은 포도밭의 수많은 줄기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약을 덧바르는 건 얼마나 고된 일일까. “물론 힘들지만 소중한 포도들이 지나치게 많은 약을 먹고 자라는 걸 원치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와인이 숙성되고 있는 석회암 동굴도 아주 흥미로웠다. “주요 와인들은 천연 석회암 동굴에서 2~4년간 숙성시킵니다. 이 기간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이 지하 저장고에 와서 일해요. 오크통을 갈아주면서 와인의 양을 체크하는 작업에 집중하죠.” 술은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동안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공기 사이로 증발되거나 오크통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와인이나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 현상을 흔히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 명칭은 근사하지만, 천사의 몫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노력이 그만큼 많이 간다. 그 대신 공기와 접촉하고 오크 향에 배어들면서 무르익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카트린과 브레통 부부가 사는 집 일부는 에어비앤비로 운영되고 있었다. 오너 와인 메이커 부부의 집 별관을 통째로 빌릴 수 있다니! 탁 트인 복층 구조에 통유리 창 너머로 포도밭이 펼쳐지고, 벽난로가 있는 거실과 예쁜 부엌이 있는 집이다. 이곳에서 키우는 강아지들, 아기 염소들과 목가적인 전원 생활을 누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와인 메이킹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자연을 닮은 그들처럼.

루아르=글·사진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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