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본 사람만 아는 한국인의 음식 코드

입력 2019-06-04 09:58   수정 2019-06-04 09:58

백수일 땐 필라이트, 취업 후엔 삿포로맥주
"대만카스테라로 망했다"는 저소득층 가장 둘

와인 코냑 위스키 데킬라 여전히 '부의 상징'
계층과 상관없이 여전한 소울푸드는 라면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영화는 계급사회를 그립니다. 많은 대립과 상징들이 등장합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비에 젖지 않는 미제 장난감 텐트와 순식간에 침수돼 버리는 반지하 집, 대저택의 지하 창고보다 더 깊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벙커.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의 가족 4인과 언덕 위 저택에 사는 박사장(이선균)네 가족 4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기생하되 공생할 수 없는 계급사회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술과 음식도 영화의 장치로 등장합니다. 술, 라면, 소자본 프랜차이즈와 기사식당까지. 영화 속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음식 코드를 분석해 봤습니다.

○필라이트와 삿포로 맥주, 그리고 소주

영화 속 첫 등장하는 술은 필라이트 입니다. 기택의 가족 모두가 백수인 시절. 반지하집 작은 거실에 모여 앉아 다같이 필라이트를 마십니다. 필라이트는 맛과 도수가 맥주와 비슷하지만 ‘발포주’라 불리는 술이지요. 하이트진로가 2017년 4월 국내 최초로 내놓았고, 1년 10개월간 약 5억캔이 팔렸습니다. 12캔에 1만원으로 ‘가성비 갑’ ‘코끼리맥주’라 불리며 대학생들과 각종 단체 모임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백수 가족 모두가 취업에 성공하면서 필라이트는 일본 수입맥주 ‘삿포로’ 캔맥주로 바뀝니다. 서로의 취업을 축하하며 삿포로를 마시는데, 이때도 집에 남은 필라이트가 있었는 지 엄마는 여전히 필라이트를 마시더군요.

다음은 소주. 대학 시험을 네 번이나 본 아들 기우(최우식)가 대학생이 된 친구 민혁(박서준)을 만나 동네에서 예기치 않게 술잔을 기울일 땐 어김없이 초록병의 참이슬이 등장합니다. 한국인에게 소주란,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와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술.

○배달피자와 대왕카스테라

배달피자 박스 접기는 백수인 기택의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는 일거리로 등장합니다. 알 만한 브랜드는 아닌 저가형 피자 프랜차이즈에서 외주를 준 셈인데요. (실제로 박스 접기 알바가 있어 개당 100~200원 정도를 받는다고.) 이 장면에서 기택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피자박스 빨리 접기 달인을 따라하는데, 이 동영상의 주인공은 캐나다 오타와의 가브리엘 피자 한 점원. ‘프로 피자 박서(pro pizza boxer)’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브리아나 그레이라는 여성의 동생이 누나의 모습을 촬영했는데 영화 때문에 유명해져 지역 신문의 인터뷰까지 나왔습니다. 기생충을 본 한국인들이 ‘성지순례’한다고 이 영상을 찾아가 댓글을 달면서 벌써 조회수가 126만 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택과 박사장네 전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남편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대왕카스테라. 둘다 생계 유지를 위해 창업했다가 망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 대만카스테라는 2016년과 2017년 사이 소자본 창업으로 열풍이 불면서 전국 1000여개까지 늘었고, 유사 브랜드도 10개 안팎으로 생겼던 업종입니다. 살충제 계란 파동 등이 터지며 순식간에 유행이 사그라들었지요. 프랜차이즈 산업이 서민들이 결국 기댈 수밖에 없는 ‘탈출구’이자 동시에 ‘거대한 덫’이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위스키와 꼬냑, 그리고 와인

발포주와 소주로 일상을 달래던 기택의 가족. 박사장네 저택에 취업(?)한 뒤 한바탕 파티를 벌입니다. 부잣집의 술 창고를 다 열어 꺼낸 술들은 레미 마르탱 등 각종 꼬냑과 발렌타인 30년산, 로얄 살루트 등의 위스키 등입니다. 딸 기정(박소담)이 프리미엄 데킬라 페트론 1병을 ‘원샷’하는 장면도 나오죠. 위스키 등의 양주가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의 코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부잣집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아들의 생일파티를 열며 지인들을 갑자기 초대한 뒤 쇼핑을 갑니다. 유기농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각종 와인을 박스로 쓸어 담습니다. 품종, 지역, 가격 상관 안합니다. 이제 와인은 사교 모임과 파티에 빠질 수 없는 술이 된 것 같습니다.

○기사식당

반지하집에서 백수 부모와 살며 사실상 ‘부모 역할’을 해야 했던 기우와 기정. 이들이 취업 턱을 낼 때 찾은 곳은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었습니다. 택시기사를 했던 아빠의 추천, 기사식당입니다. 아직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 6000~9000원에 배불리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 영화 속에선 반찬을 한 접시에 양껏 담아 먹는 기사식당이 등장합니다. 길거리를 떠돌다 허기를 채우려 몰려든 기사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 틈에서 기택의 가족도 허겁지겁 음식을 담습니다. 여기서 기택이 아들 기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접시에 가득 담아온 고기를 굳이 나눠주며 “많이 먹으라”고 합니다.

○짜파구리에 한우 살치살

폭우 때문에 야외 캠핑을 망치고 돌아온 박사장네 가족.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정부인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연교는 “8분 뒤 도착하니까 짜파구리 해주세요. 우리 다송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아빠와 캠핑을 간 아들이 끓여먹은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 조합은 박사장네 가족에게도 ‘잇템’이었나 봅니다. 라면이 소득 수준과 상관 없이 한국인의 ‘국민 음식’이라는 것도 보여줬지요. 여기서 반전. 연교는 충숙에게 “냉장고에 한우 채끝살이랑 있을 텐데 그것도 좀 넣고”라고 말합니다. 충숙은 냉장고에서 한우 살치살부터 꺼내 볶은 뒤, 짜파구리를 만들어 냅니다. 아, 라면이 언제부터 이렇게 호화로운 음식이었나. (끝)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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