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10년 뒤진 韓 제조업 부흥…'지브리의 저주' 우려

입력 2019-06-30 19:01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뒤
日 경제상황 나빠진다는 '괴담'

韓, 뒤늦게 제조업 부활 외치지만
세계 경기 침체국면에 갈 길 험난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각국의 산업정책이 제조업을 다시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금융위기 이후 청년층 실업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 수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 국가의 청년층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훨씬 웃돌았다. 가장 심한 유로랜드의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했다.

2011년 런던 폭동 사태에 이은 반(反)월가 시위 등 거리로 뛰쳐나와 항거하는 것만으론 안 됐다. 청년 실업의 주범으로 꼽히는 정보기술(IT) 산업을 파괴시키려는 신(新)러다이트 운동이 전개됐다. 컴퓨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통한 각종 바이러스 전파와 디도스(DDos) 공격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각국의 산업정책이 제조업 부활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주력 산업이던 IT산업은 네트워크를 확충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됐다. IT산업이 주도해 경기가 회복될 경우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IT산업이 주도할 때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 제조업 주도로 경기가 회복될 때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하지 않고 양극화도 심해지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부활 정책을 보면 미국은 세제 지원을 통해 ‘제조업 재생(refresh)’, 일본은 엔저를 통해 ‘수출 제조업 부활(recovery)’, 독일은 제조업 경쟁력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제조업 고수(master)’, 중국은 잃은 활력을 다시 불어넣는 ‘제조업 재충전(remineralization)’을 들고 나왔다. 각국이 처한 여건에 따라 정책이 다르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도한 미국의 산업정책을 좀 더 뜯어보면 초기에는 해외에 진출한 제조업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추진했다. 가장 큰 목적이던 고용창출 효과가 크게 나타나자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일자리 자석(employment magnet) 정책’으로 한 단계 격상했다. ‘오바마 지우기’로 일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도 이 정책은 강화해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 중시 정책은 경기와 증시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IT산업은 라이프 사이클이 매우 짧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할 때는 경기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 순응성’도 심해진다. 경기 순응성이란 경기가 과열일 때 정점이 더 올라가고 침체될 때 저점이 더 떨어져 진폭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특정국 경기 순환에서 순응성이 나타날 때는 전망기관의 예측력이 떨어지고 경제정책을 비롯해 각종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증시에서도 IT 주가가 급등하면 곧바로 떨어지는 ‘지브리의 저주’에 걸린다. 지브리의 저주란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만 방영되면 시장이 안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제조업이 경제를 주도할 때는 경기순환 주기가 길어지고 진폭도 축소된다. 주가도 고개를 들면 그 기간이 오래가는 ‘랠리’가 펼쳐진다. 제조업 부활 정책과 함께 월가에서 고개 든 ‘제조업 르네상스발(發) 골디락스’ 기대가 실현돼 미 증시는 전후 최장의 강세장을 기록했고 다음달에는 경기 역시 전후 최장 기간 성장 기록을 경신한다.

우려되는 것은 지난 5월 이후 각국의 제조업 경기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제조업 경기를 알 수 있는 글로벌 PMI(구매관리자지수)가 ‘50’ 이하로 떨어졌다. 이 지수가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는 의미다. 미·중 마찰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세계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주요인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GVC 약화 현상은 세계 경제 앞날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증가율과 GVC 간 상관계수를 추정해 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제조업 2030’ 정책을 발표했다. 경쟁국에 비해 10년 이상 뒤진 데다 미·중 마찰로 GVC가 약화된 상황에서 제조업을 부활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정책의 생명은 ‘타이밍’이다. 세계적인 흐름에 늦으면 늦을수록 ‘정부의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지브리의 저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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