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분양가 규제의 역설…후분양 러시에 서울 분양 34% 급감

입력 2019-07-02 09:22  

하반기 분양 2만 가구→1만3000가구로 감소
非강남·강북도 "분양가 규제 받느니 후분양"




정부의 분양가 통제가 되레 실수요자의 내집마련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규제를 피해 후분양으로 선회하면서 분양가가 폭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비사업조합 입장에선 시세보다 한참 낮은 분양가를 수용하느니 아예 후분양으로 전환해 규제를 피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편이 낫다. 이 때문에 당장 하반기 분양시장은 개점 휴업하게 됐다. 청약을 기다리던 이들이 매매시장으로 돌아서면 집값을 더욱 자극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결국 실수요자들이 같은 아파트를 수억원가량 더 비싸게 사야하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약시장 개점휴업

2일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서울의 올 하반기 일반분양 물량이 계획보다 33.9%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예정된 서울의 하반기 일반분양 물량은 총 2만442가구다. 예년보다 많은 수치다. 둔촌주공 등 대규모 단지들이 일반분양을 예정하면서 실수요자들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최근 후분양으로 전환을 확정했거나 검토하는 단지들이 늘어나면서 이 숫자는 크게 줄었다. 후분양을 확정한 신반포3차·경남아파트와 상아2차,후분양을 검토 중인 둔촌주공, 대치1지구 등을 제외하면 서울의 하반기 분양물량은 1만3497가구로 쪼그라든다.


후분양 단지들이 더 늘어나면서 앞으로 공급량이 더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후분양은 전례가 많지 않아 조합은 물론 분양보증을 해줘야 하는 건설사들에게도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며 “과천주공1단지가 후분양에서 흥행에 성공하면 다른 단지들이 우후죽순 후분양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비용 등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후분양을 하지 못한 채 분양일정을 늦추는 단지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분양성적이 보장되는 인기 지역은 시공사 보증도 받고 자금 조달도 용이해 후분양으로 전환하지만 비인기지역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서 “이런 지역들은 사업을 포기하거나 분양 일정을 연기해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올리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분양물량 감소가 기존 집값을 상승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무주택자들의 유일한 통로인 청약의 문이 점점 좁아지면 이들은 집이 꼭 필요하기에 기존주택으로 눈을 돌린다”며 “기존주택 매매가가 뛰는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을 미루는 단지가 늘어나면서 얼마 되지 않는 새 아파트 공급을 두고 청약 대기자들이 경쟁이 극심해질 것”이라며 “여기서 낙오한 실수요자들이 매매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집값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후분양 도미노’

강남에서 시작된 후분양 전환은 다른 지역으로도 번지고 있다. 동작구 흑석뉴타운3구역조합은 8월 예정이던 일반분양 계획을 연기했다. 조합은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인근 단지의 분양가 때문이다. 사당3구역(‘이수푸르지오더프레티움’)이 최근 3.3㎡당 평균 2813만원에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았다. 흑석3구역이 당장 올여름 분양한다면 이 가격 이상으로 분양가를 책정할 수 없다. 3.3㎡당 3200만~3600만원대인 주변 아파트 시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흑석3구역은 당초 3.3㎡당 평균 3200만원대로 분양가를 잠정 책정해뒀다. 하지만 HUG가 이달 초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바뀐 기준은 주변 시세나 분양단지 대비 분양가 인상률을 최대 5%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같은 지역에 최근 1년 안에 분양한 단지가 있다면 아예 인상할 수 없다. 그런데 사당3구역이 강화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예정보다 낮은 분양가(3.3㎡당 2813만원)를 서둘러 수용하면서 불똥이 튀었다. 가까운 흑석3구역의 분양가도 덩달아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흑석3구역 조합 관계자는 “HUG 기준대로라면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후분양을 하기 위해 시공사와 협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조합은 공사 기간 동안의 이자비용 등을 감안한 향후 분양가가 3.3㎡당 4100만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접한 흑석9구역도 사실상 후분양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는 29일로 예정된 총회에서 관리처분계획안이 통과되면 논의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조합 관계자는 “일단 HUG과 협상을 해본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현재로선 간극이 크다”며 “주변 시세에 맞출 수 있는 후분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분양을 하면 HUG의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사업 시행자인 조합이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는 셈이다. 흑석9구역 조합 내부에선 준공후분양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분양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아파트 골조가 3분의 2 이상 오른 상태에서 분양하면 건설사 두 곳이 연대보증을 서야 한다. 하지만 준공후분양일 땐 보증 자체가 필요 없다. 흑석9구역 시공사인 롯데건설 관계자는 “분양가와 분양시기에 대해선 조합의 의견을 따르기로 시공계약 당시 명시했다”며 “조합이 원하는 최적기에 분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북에서도 후분양으로 선회하는 단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을지로 옆 세운3구역을 재개발하는 ‘힐스테이트세운’은 모델하우스 개관을 코앞에 두고 분양 일정을 전격 중단했다. HUG가 주변의 입주 10년차 아파트 시세를 기준가로 내밀어서다. 시행사는 3.3㎡당 평균 3200만원대를 제시했지만 HUG는 2700만원대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결국 시행사 더센터시티와 시공사 현대엔지니어링은 후분양 검토에 들어갔다. 도심 ‘알짜 재건축’으로 꼽히는 마포 아현2구역도 후분양을 저울질 중이다.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부터 후분양제의 민간 확산을 위해 지원책을 잇따라 내놨다. 선분양이 과도한 시세차익을 남겨 투기를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작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후분양이 늘자 실수요자들은 같은 아파트를 수억원가량 비싸게 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후분양으로 3.3㎡당 분양가가 500만원 오를 경우 전용면적 84㎡(공급 114㎡)의 가격은 종전보다 1억7000만원가량 인상된다. 전용 59㎡(공급 84㎡)의 소형 아파트 분양가도 1억2000만원 정도 오른다. 정부가 이제 와서 자발적인 후분양을 독려하기도 어정쩡한 상황인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후분양을 택하는 단지가 늘어날수록 전반적인 분양가는 더욱 오를 수밖에 없다”며 “수요자들의 경우 입주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수억원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금융이 생긴다”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 꺼낼까

분양가 규제를 피한 후분양이 늘면서 정부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가격을 통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다. 이 때문에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분양가 상한제 검토 여부를 묻는 말에 “고분양가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정부가 새 아파트의 분양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하는 제도다. 신도시 등 공공택지엔 무조건 적용된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는 적용 기준이 까다롭다. 정부는 이 때문에 2017년 말 관련 법을 한 차례 손질해 적용 기준을 완화했다.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기준을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경우’로 규정했다. 이 기준을 만족하면서 △최근 1년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거나 △직전 2개월 청약 경쟁률이 5 대 1 또는 국민주택규모(전용 85㎡) 이하 경쟁률이 10 대 1을 초과하는 경우 △또는 최근 3개월 동안의 주택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경우 해당 지역 민간택지의 분양가를 통제할 수 있도록 단서를 뒀다.

그러나 이 요건조차 부합하는 대상 지역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기준선이 높은 편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만약 정부가 현 시점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보려 한다면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요건을 비교적 느슨하게 만드는 방안이 유력하다.

효과는 강력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참여정부 시절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뒤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2010년대 초반 강남권 정비사업 추진이 ‘올 스톱’됐다. 다시 분양가 상한제가 작동한다면 서울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유일한 주택공급 방식인 재건축·재개발이 멈춰서기 때문이다.

전형진/구민기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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