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정신질환 만드는 사회

입력 2019-07-11 17:03  

넘치는 사회적 갈등에 정신건강도 '흔들'
약물·심리치료 통해 이겨내는 힘 키우고
더불어 살 수 있게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김진세 <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김 박사, 요즘 상담 많아졌겠어!” 최근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 소리다. 경기가 좋지 않은 시절이니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짐작으로 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다. 무좀과 같은 감염성 질환은 신체 외부에 존재하는 나쁜 균이 원인이다. 류머티즘성 질환처럼 외부 원인보다는 신체 면역체계 이상으로 건강이 나빠지는 사례도 있다. 무좀균과 무좀의 관계처럼 한 가지 원인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외부와 내부의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그 원인으로 먼지가 존재하지만 특정한 사람의 과도한 반응으로 생기는 병이다. 먼지가 많다고 모두 비염을 앓지는 않는다.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치료는 원인에 따라 달라진다. 무좀은 외부에서 침입한 무좀균을 박멸해야 좋아진다. 류머티즘성 질환이라면 면역체계의 불균형을 잡아야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먼지도 줄여야겠지만 몸의 반응을 무디게 하는 항히스타민제제 투약이 효과적이다.

정신과 질환은 어떨까? 가장 신뢰받는 병인론(病因論)은 삼각이론(triad theory)이다. 한 축에는 생물학적 원인, 다른 한 축에는 심리적 원인, 마지막으로 사회적 원인이 한 가지 축으로 존재한다. 세 가지 원인 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 가지 원인이 병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질병의 원인으로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첫 번째 생물학적 원인이란 신체의 이상이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다. 뇌세포들의 소통을 위해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물질의 이상이 정신질환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세로토닌 체계의 이상이 원인이고, 조현병은 도파민 체계의 이상으로 발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생물학적 원인의 가장 중요한 점은 치료 측면이다. 약물치료를 통해 우울증이 좋아지고 조현병이 호전되는 것은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교정을 통해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우울증은 세로토닌 체계의 이상을, 조현병은 도파민 체계의 이상을 바로잡는 약물로 호전된다.

두 번째로 심리적 원인이란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들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생기는 우울증은 상실감과 내적 투사(introjection)의 정신방어기전이 병인이 된다. 재난을 당했을 때 발생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역시 심리적 충격이 원인이다. 회사 상사의 비인간적인 꾸지람이나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또한 불안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생물학적 치료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는 심리적 문제를 다룰 상담이나 인지치료가 많은 도움이 된다.

세 번째로 사회적 원인이 있다. ‘취준생 우울증’은 요즘 유행하는 질병 같지만 실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시절에 늘 존재하던 질병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거나, 전쟁 및 재난처럼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사회 구성원의 갈등이 깊어지는 것 모두 정신질환 발병을 촉발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세대 간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남녀 사이의 갈등 등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사회적 갈등은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각종 통계를 보면 정신질환은 급증하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사회는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회적 원인으로 발생한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적 측면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아픈 것을 참고만 있기에는 너무 고통스럽다. 다행히 증상이 호전되기만 해도 평균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압박감을 참고 이겨내는 힘이 강해진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서의 생물학적 또는 심리적 치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치료를 열심히 한다 한들 늘어나는 질병을 막을 순 없는 법이다. 가장 좋은 치료는 예방이듯, 사회적 원인의 정신질환을 완치할 유일한 치료법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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