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의 이슈프리즘] 빨간불 켜진 대한민국 존재감

입력 2019-08-19 17:53  

김수언 편집국 부국장


[ 김수언 기자 ]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자존감(自尊感)은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며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을 말한다. 존재감(存在感)은 ‘사람,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전혀 다른 의미의 존재감과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자존감은 스스로 존중해야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존재감은 어떤 형태로든 남들보다 두드러져 보이고 돋보일 때 나타난다.

자존감과 존재감은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국가적 자존감’이란 ‘국가 전체의 규모나 범위에서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높이고 지키는 느낌’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자존감보다 중요한 존재감

일정 경제 규모를 갖춘 선진국은 대부분 국가적 자존감이 높고 존재감도 크다. 물론 국가의 자존감과 존재감이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나라는 꽤 있다. 대체로 국가의 자존감은 존재감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존재감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보는 게 현실적이다. 자존감은 한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국가 간 관계에서는 그 의미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규제가 촉발한 한·일 경제전쟁은 이 같은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었다.

하지만 지금 더 위태로운 쪽은 국가의 자존감이 아니라 존재감으로 보인다. 국가 존재감을 뒷받침해온 경제력과 안보 태세 등에서 알게 모르게 균열이 생기고 있다. 과거처럼 국가 존재감을 지키는 데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한반도 주변 지정학적 관계는 그 같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한·미 동맹은 예전 같지 않고 한·일 협력 기조는 뿌리째 뽑힐 처지다. 중국과 러시아 공군기는 그 틈을 파고들며 독도 상공을 헤집고 다녔다.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존재감은 강한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정치 슬로건으로도 어느 정도 달성 가능한 자존감의 영역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 같은 국력을 떠받치는 핵심 요소가 바로 경제력이다. 경제력이 뒤따르지 않는 외교와 안보 능력은 허황된 말장난일 뿐이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데는 인구뿐만 아니라 일본을 넘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커진 경제력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 경제역량은 정체 상태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넘게 국가 경제력을 놀라운 속도로 확장하며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하지만 그 확대 재생산 시스템은 이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을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서 하려는 기업이 넘쳐난다. 많은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인건비를, 숨 막히는 규제를, 터무니없는 반기업적 정서를 피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겼고 그 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8000개 가까운 한국 기업이 진출한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은 1980~1990년대 서울과 부산의 모습 그대로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기초체력인 성장잠재력이 계속 하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존 제조업이 빠져나가는 자리를 신산업이 전혀 메우지 못하는 나라의 경제 역량은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한국의 자동차 생산능력은 끝없이 줄어드는데 원격의료와 바이오, 빅데이터 등의 미래 산업은 규제의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국가 존재감 유지는 당면과제다. 한번 밀려나면 예전 존재감을 회복하기 어렵다. 국가의 자존감이 아니라 국가 존재감을 유지하고 키우는 게 더 급하다.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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