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이후 한국 경제와 증시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입력 2017-04-24 11:00  



요즘 전 세계적으로 ‘정책 무력화(policy ineffectiveness)’ 명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일본과 같은 국가는 정책당국에서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어떤 신호를 준다하더라도 경제주체가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좀비경제 국면에 몰리고 있다. 정도 차가 있긴 하지만 사정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통화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 간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케인즈언의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통화공급→금리인하→총수요 증가→실물경기 회복)‘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이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는 점이다. 유럽과 일본은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한 나라의 적정금리를 따지는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다른 국가의 금리도 적정수준에 비해 크게 낮게 나온다.

정책금리 인하가 어렵게 되자 극단적으로 경제주체의 ‘부채 디플레이션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적정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더 떨어드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이 모색돼 왔다. 발권력을 통한 ‘양적완화’가 대표사례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계부채 부실과 같은 경제주체의 현금흐름 상 문제로 또 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



더욱이 각국 중앙은행 총재의 입지가 갈수록 약해져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이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여건이 어려울수록 경제주체는 중앙은행 총재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요구에도 금융완화 정책이 효과를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정책의 주안점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울트라 금융완화정책 신봉자였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회원국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이제는 재정정책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입장이 바뀌었다. 아베노믹스(금융완화 엔저 유도->성장기반 구축->재정건전화 도모)의 또 다른 설계자인 혼다 에쓰로 내각관방참여는 재정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화정책 무력화 속에 경기부양 목적으로 선호되는 재정정책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과 같이 재정에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크루그먼 독트린’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처럼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는 재정지출보다 세금감면을 추진해야 한다는 ‘로코프 독트린’이다.

공통적인 것은 두 가지 재정정책 방안 모두가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먼저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은 그만큼 민간 부문에서 지출이 감소돼 최종적으로 총지출이 늘어나지 않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 驅逐 效果)’ 때문에 경기부양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세금을 감면하는 방안은 더 문제다. 최근처럼 세율이 문제가 되지 않은 상태(래퍼 곡선 상 세율과 세수간의 ‘정(正)의 관계`에 있는 표준지대)에서는 세금을 감면할 경우 일단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오히려 세금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정부의 의도대로 소비되지 않고 저축할 경우 경기가 더 위축되는 ’구인 효과(crowding in effect 驅引 效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국 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무력화 명제에 직면한 각국이 점차 경쟁국(혹은 인접국)의 힘을 빌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수단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경제여건에 비해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자국의 통화가치는 평가절하를 도모하려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통화전쟁이 불거지는 것은 볼 보듯 뻔하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것은 경쟁국을 더 어렵게 하는 ‘근린궁핍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1년 전부터 미국 재무부는 이른바 ‘베넷-해치-카퍼(BHC)’법으로 부르는 환율보고서를 강화해 한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통화절상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각국의 명암은 어떤가. 현 시점에서 재정상에 여유가 있고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높거나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는 비교적 느긋하다. 하지만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낮거나 통화가치가 높은 국가는 조급하다. 결국 완충능력에 따라 각국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가. 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우리 경제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가시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여전히 많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서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걸릴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중진국 함정’이란 신흥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유치단계의 이점을 누리면서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1인당 소득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분류할 때 한국은 아직까지 중진국으로 분류된다.


우리 경제는 개발 시작 이후 주력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제조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것은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들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인력수요와 공급 간의 불일치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필요성 감소와 소비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기업의 현금보유는 사상최대규모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특정기업의 경우 세계 최고의 반열 위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현상까지 겹치면서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부패와 뇌물 사건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정도는 정치적 영향력과 행정규제에 비례한다.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소위 ‘지대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도 종전만 못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해 그렇다. 당리당략에 국민과 우리 경제 앞날은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 타임’까지 놓쳐 이제는 우리도 일본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 들고 있다.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 예금회전율 등 각종 경제활력지표가 눈에 띠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해보자(can do)` 하는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부양대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사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요즘 유독 나라 안팎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중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비교적 밝은 해외기관일수록 19대 대선 이후 한국 경제가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평가가 고개를 들면서 재차 불거지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론’를 차기 정부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처럼 위기 경험국의 위기극복 정도를 평가하는 데에는 ‘위기 3단계론’이 적용된다. 특정국 위기는 외화 등에 금이 가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담보 관행이 보편화된 국가일수록 경제시스템 위기로 비화되고,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이 수순을 거쳐야 한다.
위기 경험국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한 후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했다. 한국도 외화 유동성을 확보한 이후 잦은 정책변경,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채 20년이 지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시스템 위기와 실물경기 위기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에 따라 대처능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이때 투기 요인이 차익 실현으로 연결될 경우 극복했다고 봤던 유동성 위기가 다시 발생한다는 것이 ‘위기 재귀론’이다.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어떤 정부든 모두가 경제 안정성이 계속 흔들리고 위기론이 가시지 않는 것은 ‘통계수치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입법과 정책운용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시스템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제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선행돼야 한다.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특히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출이 세계경제 환경이나 환율이 조금만 불리하게 되면 크게 감소돼 곧바로 위기감이 닥치는 소위 ‘천수답 구조’를 ‘수리안전답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단기 처방은 금물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차기 정부도 경제우선 정책을 예산조기집행과 같은 단기 처방에 의존할 경우 고질병인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은 요원해 진다. 오히려 구조조정 노력을 지연시킴으로써 후손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게도 우리 경제 내에서 안정된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해외 진출한 기업도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개혁정치이든 산업정책이든 간에 정책의 일관성과 명확한 기준이 전제돼 시행해야 한다.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기득권 때문에 핵심규제 사항을 풀지 못하거나, 특정기업에게 막대한 이권이 보장되는 신규 사업을 허가해 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가시지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위기감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 기업의 ‘무국적화’를 촉진하고 산업공동화와 실업증대 등의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도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한탕하고 경기가 나쁠 때에는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화전인식 경영’은 지양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이 실망스럽다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는 의무다.



국민에게도 경제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도 시급하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해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위기감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정부가 실시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발상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갈수록 국민이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책당국(정치권의 책임이 크다)이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부응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정책의 악순환’만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 자신을 다소 희생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일단 정책이 추진되면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줘야 한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많은 정책을 내놓기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골 넣기가 쉽다는 의미)’가 절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프로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한다면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그리고 `잃어버린 20년‘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

지금은 경제가 어렵다. 이럴 때 일수록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진심으로 정책 수용층의 협조를 구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금만 뜻대로 안되면 ‘과거 정부와 언론, 국민 탓’ 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싹이 돋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론’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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