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탈(脫)달러 정책…최대 피해자는 ‘한국의 달러 투자자’

입력 2017-03-20 10:21  


요즘 들어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이 ‘강(强)달러 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보다 ‘약세’가 국익에 맞는다고 언급했다.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교역상대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환율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몇 차례 고비(1971년 리차드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정지,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 자유변동환율제 도입 등)가 있었지만 강달러 정책은 유지됐다. 각국 간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무역을 증진에도 기여했다.

강달러 정책이 흔들렸을 때는 1980년대 초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 통화에 초점을 맞춘 강달러 정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자체 해결방안을 모색했으나 결국은 선진국 간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달러 수모’라까지 불리웠던 플라자 합의로 경상수지적자가 줄어들자 곧바로 미국은 강달러 정책으로 복귀했다. 1995년 4월 달러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맺은 ‘역(逆)플라자 합의(’루빈 독트린‘이라 부름)’다. 때맞춰 미국 경제가 ‘신경제 신화’로 호황을 보인 데다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달러 정책이 쉽게 제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쌓인 쌍둥이 적자로 달러가 더 이상 중심통화 역할을 당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선호한다고 언급함에 따라 22년 만에 ‘루빈 독트린(강달러 선호)’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 조짐도 감지된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수지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달러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트리핀 딜레마`란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성 간의 상충관계를 말한다. 중심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환류되는 메커니즘이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제통화제도 개혁에 공감하는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제2 플라자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주말 독일 바덴바덴에서 끝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서울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경상흑자 4% 룰(GDP대비 4%를 상회하는 경상흑자국은 시장개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 재차 주목을 받은 것은 의미가 크다.

강달러 정책의 지속 여부는 ‘트럼프 정부가 과연 강한 달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뉴딜과 감세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쌍둥이 적자가 확대되면 트럼프 정부의 정책 구상은 어려워진다.

강달러 정책이 흔들리면서 한국이 문제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내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올 들어 불과 2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원?달러 환율은 70원 이상 급락했다. 다른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달러 강세를 예상했던 국내 수출업체와 달러투자자로 본다면 ‘환율 쇼크’에 해당하는 절상 폭이다.

‘특정국의 통화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실상이 반영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해 성장률이 2.6%로 추락했고 올해는 2%대 초반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모든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일일 변동률 표준편차)은 2015년 0.41에서 2016년 이후 올해 1월말까지는 0.58로 무려 41%나 확대됐다. 경제주체가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서도 높다. 2016년 이후 올해 1월말까지 중국 위안화 0.21, 태국 바트화 0.27,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0.38에 비해 1.5∼2배를 넘는다. 질적으로도 평상시에는 신흥국 평균보다 낮고 국제금융 불안기에는 높은 비대칭성을 갖고 있다. 상위 선진국 통화, 후위 선진국과 상위 신흥국 통화에 이어 한국 원화가 ‘삼류 통화’로 취급받는 이유다.

특정국 통화의 안전통화 여부는 세 가지 리스크로 평가한다. ‘시장 리스크’는 시장상황 변화로 환율의 표준편차와 준분산으로 평가한다. ‘유동성 리스크’는 결제의무 이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으로 거래량과 매매호가 스프레드로 측정한다. ‘신용 리스크’는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으로 통화의 경우 국가신용등급 등에 반영된다.

가장 중요한 시장 리스크는 유동성 리스크와 신용 리스크 간 왜곡 현상이 없을 때 낮아진다. 경제 위상이 높다 하더라도 외환시장 규모가 작아 유동성 리스크가 높거나 국가신용등급이 과대평가돼 신용 리스크가 낮다하더라도 시장 리스크는 높아진다. 다른 신흥국 통화의 변동성이 적게 나오는 것은 경제 위상에 맞게 세 위험 간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반면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크고 질적으로도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할수록 더 커지는 것은 유동성 리스크부터 높은 것이 원인이다. 원화 거래량은 우리 경제 위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장의 심도를 보여주는 매매호가 스프레드도 우리와 경제 위상이 비슷한 대만과 싱가포르 달러화보다 높다.

신용 리스크가 너무 낮은 것도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투자 대상국의 부도발생 여부에 우선순위를 두는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 우리는 과다한 외화 보유와 건전한 재정 등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윔블던 현상(외국인이 판치는 현상)이 더 심해져 원?달러 환율 등 모든 가격변수의 변동성을 확대시킨다.

자체적으로 원?달러 환율 변동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도 있다. 실물변수로는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무역개방도, 외국인의 국내 투자와 금융변수로는 통화증가율, 단기외채 비중, 대내외 금리차 등이다. 회귀분석을 해보면 경제성장률과 무역개방도 등과는 ‘부(負)의 관계’, 물가상승률과 통화증가율 등과는 ‘정(正)의 관계’가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외환당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 편승해 우리 여건과 벤치마크 지수 간 괴리에서 들어오는 외국자금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화거래세’ 도입 등 보다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국가신용등급도 우리 여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높은 것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대평가된 국가신용등급으로 외국자금이 많이 들어와 원화가 강세될 경우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져 이탈로 돌변할 경우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과다한 경상흑자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자체 요인으로는 경제성장률부터 끌어 올려야 한다. 경기대책으로 통화정책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만큼 재정정책을 보다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 비율이 45% 수준까지 될 정도로 재정지출을 늘려 나가더라도 문제는 없다. 무역개방도도 끌어 올리고 단기외채 관리, 대내외 금리차 유지에도 신경 써야 한다.
동시에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 위상에 맞게 유동성 리스크와 신용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유동성 리스크를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인 부족한 원화 거래량부터 늘려야 한다. 오랫동안 묶어있는 매매호가 스프레드를 현실화하는 방안과 원화의 국제화 과제도 추진해야 할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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