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부 이야기⑪] 일본 강소기업과 일합을 겨루다…정세영 엔트리움 대표

이성경 부장 (부국장)

입력 2017-09-21 10:18   수정 2017-09-21 11:05

    지난 4월 경기도 화성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은 스타트업 엔트리움이 둥지를 틀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 인력이었던 정세영 대표가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입자를 꿈 꾸며 세상 밖으로 나온 지 꼭 5년 만이다.

    ◇ 4,000만원에 무너진 창업 본능

    정세영 대표는 서울대 재료공학과 91학번이다. 당시 옆 동네인 전자공학과는 벤처 붐을 타고 창업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재료공학과는 조용했다. 창업 본능을 느낀 정 대표는 친구들과 교내 벤처창업 경진대회에 참가한다.

    프로젝트명은 스누벤(SNUVEN), 학교명(SNU)과 벤처(Venture)를 합성해서 만들었다. 스누벤은 전통악기인 해금을 플라스틱 금형으로 만들어 초중고교에 저렴하게 공급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지금으로 말하면 3D 프린터로 보급형 해금을 찍어내는 것.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인기투표 점수는 높았는데, 벤처 투자자들의 평가는 달랐어요. 기술 수준이 높지 않다, 공대생이 왜 이런 것을 만드냐, 라며 해금 아이디어에 대해 얼마나 비아냥 거렸는지 몰라요."

    투자자들이 외면하자 금형에 필요한 돈 4,000만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을 너무 몰랐어요. 4,000만원이라면 그 당시에는 꿈 조차 꿀 수 없는 큰 돈이었어요. 세상을 좀 더 배운 뒤 해야겠다 싶어 창업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묻어 두었어요."

    ◇ 마흔살에 되살아난 스누벤의 꿈

    창업의 꿈을 접은 정 대표는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수많은 글로벌 인재들과 경쟁하며 정 대표는 성장해 갔다. 하지만, 성장과 함께 의문도 커졌다.

    "반도체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소재가 필요해요. 그런데 실력 있는 업체들은 일본과 미국, 독일 등 모두 해외업체 들이에요. 결국 핵심 소재들을 비싼 가격에 수입할 수밖에 없어요."

    국내 반도체 생산이 증가할수록 핵심 소재 수입도 늘어나는 현상, 바로 고질적인 소재·부품 대일 무역적자를 온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정 대표는 재료공학 이라는 자신의 전공과 10년간의 반도체 실무 경험을 살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20대 중반 해금 창업을 위해 만들었던 프로젝트팀 '스누벤'이 생각났어요. 그 때 새로 만든 저의 이메일 아이디도 스누벤 이었어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저의 로망이 떠올랐어요. 그 꿈을 지금 실행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겠다 싶었어요."

    정 대표는 삼성전자에 입사한지 꼭 10년 만인 2012년 퇴사하고 이듬해 엔트리움을 창업했다. 그의 나이 마흔 이었다.

    ◇ 'Man-Money-Space'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향한 기술창업은 만만치 않았다. 시장에서 먹힐 만한 고도의 기술력과 함께 제품 양산을 위한 대규모 자금투입이 필요했다.

    "정부에서는 기술창업과 제조업 창업을 장려하는데 막상 실행 하려면 전문성도 높아야 하고 투입 자금도 규모가 커서 쉽지 않아요. 주변에 기술창업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못 버텼어요."

    정 대표는 인력과 연구비, 개발공간(Man-Money-Space)을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기술창업의 첫 시험대라는 점을 인식했다. 서울대학교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에 자리를 잡고, 융기원 1호 창업 기업이 되면서 비용 부담을 크게 덜었다. 흔치 않은 제조업 창업인데다 대일 무역적자가 심각한 소재 산업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각종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100억원 가량의 자금도 유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개발하는 소재 거의 대부분을 일본이 독점하고 있어요. 일본의 대기업도 아닌 강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을 적게는 80%, 많게는 99%까지 독점하는 제품이 많습니다."



    ◇ 일본 강소기업과 일합을 겨루다

    정 대표는 첫 상용화 제품으로 스마트폰과 각종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접착제 핵심 소재인 도전성 입자를 내놨다. 일본의 세키스이(Sekisui)와 니폰케미칼(Nippon Chemical)이 95% 이상 독점하고 있는 제품이다.

    엔트리움의 도전성 입자는 삼성전자의 테스트를 통과한 뒤 대만의 디스플레이 소재 회사로 수출되고 있다.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되면서 엔트리움의 매출은 올해 50억원, 내년 100억원으로 예상된다. 제품 생산을 위해 지난 4월 융합기술연구원을 떠나 삼성전사 화성사업장 인근 작은 건물로 회사를 이전했다.

    다음 기대작은 전자파 차단 소재. 스마트폰부터 자율주행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자기기는 전자파를 내뿜는데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오작동이 생기고 인체에도 좋지 않다.

    따라서 전자기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전자파를 차단하는 소재에 대한 수요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역시 타츠다(Tatusda) 등 일본 강소기업이 80% 이상 장악하고 있다. 이번에는 세계 3대 반도체 회사로 부상한 SK하이닉스와 손을 잡았다.

    "SK하이닉스와 3년간 협업 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파 차단 소재가 개발 됐어요. 최근 SK하이닉스에서 승인이 났고, 스마트폰 제조회사에서 테스트 중이에요. 이 단계를 통과하면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가 들어가는 전세계 스마트폰에 적용할 수 있어요."

    전자파 차단 소재가 성공하면 '엔트리움'은 작은 스타트업에서 강소기업으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정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내년부터 코스닥 상장 절차도 밟을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세계 1위의 기적을 이뤘다면, 삼성전자 출신의 한 연구원은 반도체 소재 부문 세계 1등을 꿈꾸고 있다.

    금형 제작에 드는 4,000만원 때문에 창업의 꿈을 접은 공대생은 20여년이 흐른 뒤 100억원을 투자 받아 그 어렵다는 제조업 창업의 성공 문턱에 와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대기업 중심에서 강소기업 위주로 재편돼야 하는데, 소재 부품 이야말로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기 가장 좋은 아이템 이에요. 스마트폰 만 하더라도 수백 가지 소재와 부품이 쓰이잖아요."

    "회사를 키운 뒤에는 투자자가 되고 싶어요. 투자자는 누군가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잖아요. 저 처럼 어떤 꿈을 갖고 그 꿈을 실현해 보려는 사람을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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