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 필적…자기파괴의 씨 뿌리는 것 아닌가"(종합)

입력 2017-01-21 19:53   수정 2017-01-21 20:51

"로봇이 인간 필적…자기파괴의 씨 뿌리는 것 아닌가"(종합)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첫 내한 강연

"생물학적 진화보다 기술 진화가 인류에 더 큰 영향"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생물학적 진화'보다 '문화·기술적 진화'의 속도가 더 빠르며, 사람의 미래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생물학 분야 스테디셀러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76)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내한해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한국 독자 300명과 만났다. 펭귄, 얼룩말, 카멜레온 등 동물 문양의 넥타이를 즐겨 매기로 유명한 도킨스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사슴 문양의 넥타이를 선보였다. 이번 강연은 인터파크도서와 카오스(KAOS) 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자리다.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 교수는 1976년 과학교양서 '이기적 유전자'를 발간해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이며 그 특징이 이기적이라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후 과학 고전으로 자리 잡아 현재 생물학도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됐다. 또 다른 저서 '확장된 표현형' '만들어진 신' '지상 최대의 쇼' 등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저는 '인간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인류의 다음 진화 단계를 추정하려면 문화·기술적 진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늘 유전자 중심 '진화'를 외치던 그는 이번 강연에서는 뜻밖의 화두를 꺼내 들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매진하고 그 의존도를 높여가는 오늘날의 인류가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도킨스 교수는 인류를 공룡이 겪었던 '멸종'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설명했다. 공룡과 달리 인류는 과학기술의 힘을 갖췄기 때문이다. 가령 지하대피소나 화성기지를 만든다면 지구가 거대한 떠돌이 천체와 충돌하더라도 인류가 살아남을 길이 생긴다. 로켓 등을 이용해 이들 천체의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면 사전에 비극을 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로 인해 인류가 되레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고 도킨스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하며 이제 로봇이 인간의 기능을 따라할 수 있게 돼 인간의 지위가 위험할 지경"이라며 "지금 우리는 자기 파괴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스티븐 호킹이나 일론 머스크 역시 이를 경고한다"고 말했다.

도킨스 교수는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 300만 년 간 사람의 뇌는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이제 이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뇌가 큰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고 많은 자손을 낳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사람의 뇌가 점차 커진다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종이 두 종으로 나뉠 가능성도 없다고 일축했다.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사례는 생물학적 진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그 결과 현재 지구에는 수백만 종의 생물이 살게 됐다. 종의 분화는 지리적 격리 등으로 '유전자의 흐름'이 단절돼 생기지만, 현재 인간은 전 지구적으로 움직이므로 이 흐름이 끊이지 않는다고 도킨스 교수는 설명했다.

도킨스 교수는 "진화의 끝은 예측하기 어려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역사의 바퀴는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확보 등 일반적으로 옳은 방향,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낙관했다.

그는 또 "과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아인슈타인이 남긴 경구를 인용,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킨스 교수는 이날 이후에도 한국 독자를 계속 만난다. 22일에는 세종대 대양홀에서 강연하며, 25일 고려대 KU시네마트랩에서 열리는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의 대담은 네이버를 통해 생중계된다.


s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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