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DC. 새로운 시대의 애니메이션을 보다.

입력 2015-06-27 12:26   수정 2015-06-27 13:14



돌이켜 보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작품은 항상 바다에 있었다. 1998년에 발표된 “청의 6호"(GONZO 제작)는 풀 디지털 2D 애니메이션과 3D 메카닉의 조합이라는 소위 “2.5D” 애니메이션을 최초로 선보인 작품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제작 기법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시도였다.

그 중에서도 원자력 잠수함과, 거대한 유전자 조작 고래의 해저 전투 장면은 압권이었다.

무겁고 육중한 질량감의 바닷물과 해수면에서 산란되는 다채로운 반사광, 그리고 미지의 공간인 해저를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방식은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더불어 굉장한 충격이었다.

“청의 6호"는 손으로 그린 그림을 촬영해 만들어내던 전통의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작업 과정이 일부만 들어간 과도기적 작품들은 보여줄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디지털과 3D라는 기법을 통해 선보였다.



이렇게 한 번 제작방식의 큰 변화를 겪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를 통해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풀 3D 애니메이션`이 그것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태동을 열었던 “청의 6호"처럼 본격적인 풀 3D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개막한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역시 바다와 잠수함을 소재로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이정표 격의 작품이 다시 한 번 잠수함을 소재로 하는 것이 "또?"라는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제작사인 “산지겐"의 이력을 보면 금새 고개가 끄덕여진다.

“청의 6호"를 시작으로 일본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를 자처했던 GDH(현 GONZO)는 2000년대 중반 한국에도 GK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하는 등 대규모 사세 확장을 했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과 연이은 사업 실패로 사실상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2010년에 이르러 많은 재능 있는 스탭들의 이탈이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곤조발 디아스포라는 곤조 출신 스탭들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애니메이션 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진다. 이들 중 “산지겐"과 “그라피니카”(“낙원추방"의 제작사)가 곤조 창업 시절의 혁신적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 DNA를 이어받은 대표적인 제작사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곤조가 가지고 있던 기술 혁신의 전통은 지금도 이 두 회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낙원추방(2014)
ⓒ TOEI ANIMATION, Nitroplus / EFP Society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는 잠수함 전투 연출에 있어서는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청의 6호"보다 진보된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광원 효과나 메카닉 텍스쳐의 디테일은 2D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위화감 없이 재현하기 위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청의 6호"가 마치 SF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중간 즈음의 질감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본 작품은 철저하게 애니메이션의 영역에 남아있으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가 빛을 발하는 부분은 모든 컷에서 3D로 보여지는 인물 작화이다. TV나 극장판에서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3D 인물 작화 기준을 만족시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가지는 가치는 대단하다.

(산지겐은 이를 위해 기존의 2D 애니메이션을 3D로 모방하는 색상 처리, 낮은 프레임으로 재현하는 유사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연출 등의 연구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무엇보다도 `푸른 강철의 아르페이지오`가 풀 3D 애니메이션을 더 이상 실험 영역이 아닌 대중화가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와 비슷한 시기에 극장과 TV에 등장한 “낙원추방"과 “시도니아의 기사" 역시 비슷한 접근법을 통해 성공을 이뤄냄으로써 최근 공개된 주요 3D 애니메이션이 모두 흥행과 비평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이루어 3D 애니메이션의 대중화를 더욱 뒷받침한다.


시도니아의 기사 제9행성전역(2015)
ⓒ TSUTOMU NIHEI, KODANSHA / KOS PRODUCTION COMMITTEE


제작사인 산지겐의 대표 마츠우라 히로아키씨에 따르면 20년 정도 후에는 혼자서도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미래는 여전히 창작 애니메이션 산업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물론 지금도 신카이 마코토와 같은 천재가 몇 년의 시간을 들여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그 행위 자체가 예술로 취급이 될 만큼 기행에 가까운 일이라 일반적인 제작 경향이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컴퓨터 그래픽과 3D 기술은 수작업으로 처리되던 다양한 작업 절차를 자동화함으로써 시간과 노력을 극적으로 줄여 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존에 대규모로 필요했던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특히 동화 담당)의 해고가 불가피하겠지만 적어도 한국에는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라이트노벨, 웹툰 등 애니메이션의 원석과도 같은 원천콘텐츠 시장은 질적, 양적 측면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 분야 역시 오랜 기간 이어진 미국, 일본 작품의 하청 작업을 해오며 물적 기반을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소비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매니아용 애니메이션 제작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애니메이션 소비 시장의 규모 역시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느리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발 풀 3D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의 혁신이 한국으로도 전해진다면 제작비를 절감하여 시장성을 갖추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흐름을 놓친다면 하청으로 연명하고 있는 현재의 산업 기반조차 하청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제작 방식으로 인해 흔들릴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의 기술 혁신을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계가 놓치지 않고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아르스 노바 DC(2015)
ⓒArk Performance/少年画報社・アルペジオパートナー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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