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즌' 한석규 "'군주론' 읽고 하이에나 같은 익호 연기했다" [인터뷰]

입력 2017-03-29 15:54  


영화 `프리즌`은 교도소에서 권력의 정점으로 군림하는 익호(한석규)를 통해 악의 본질, 권력의 본질에 관해 설명한다. 익호는 교도소장조차 어쩔 수 없는 권력을 휘두르며 교도소 밖의 범죄까지 좌지우지하는 제왕으로 군림한다.
익호라는 캐릭터에선 한석규 표라고 할 만한 부드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아예 기존 한석규의 연기를 뒤엎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호는 숟가락으로 사람의 눈알을 파버리고 배신자의 팔은 전기톱으로 잘라버린다. `8월의 크리스마스` 속 한석규나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 또는 맥심(우리 말고 커피) 광고에 등장한 그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 그의 모습이 낯설 수도 있다. 그조차도 이 역할이 왜 그에게 왔는지 궁금해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나현 감독에게 "왜 나예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한석규가 연기하는 익호는 동물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속 하이에나를 닮았다. 공격을 당해 입이 찢기고 눈알이 빠져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하이에나 말이다. 그는 자칫하면 뻔하고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절대 악의 모습을 처절하게 만들어냈다. 익호가 왜 그 지경이 됐는지 궁금할 정도로.
인터뷰하지 않는 대표적인 배우 중 한 명인 그가 이번에는 홍보 인터뷰 자리에 나타났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파바로티` 이후 4년 만이다. `배우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연기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그의 지론을 깨고 나온 이유는 뭘까.
인터뷰를 잘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프리즌` 인터뷰에는 응한 이유가 뭔가요?
인터뷰는 잘 안 해요. 인터뷰에서 하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미사여구가 된단 말이죠.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오면 `으이구~ 이놈아~`하면서 자책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쇼박스 대표가 저랑 동갑내기 64년생이에요. 인연이 깊어요. 그래서 이런 걸 합니다. 하하
단순해 보이는 이유지만,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인인 나현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것도 관계 때문인가요?
물론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이 작품에 출연한 이유를 말하려면 나현 감독과의 인연부터 이야기하는 게 맞겠네요. 나현 감독이 2013년에 나한테 `함께 작업을 하자`고 제안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영화는 불발되면서 작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당시 약 1년의 세월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가 2014년쯤 나현 감독이 다른 시나리오를 보내줬어요. 그게 `프리즌`이었는데 처음에는 나에게 희대의 악역인 `익호` 역할을 던졌다는 것이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날 보고 하라고? 왜 나예요?`라고 농담 식으로 물었더니 나에게서 나현 감독이 생각하던 익호의 모습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배우로서 기분 좋은 말이었죠.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프리즌`에서 교도소 안에서 군림하는 제왕, 익호 역을 맡았는데요. 익호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제가 왕 역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SBS `뿌리 깊은 나무` 김영현 작가가 `군주론`이란 책을 선물해줬어요. 왕에게 `우매한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 이렇게 하라`는 얘기를 쓴 책인데, 통치자 외에는 보면 안 되는 금서죠. 뭐, 물론 몰래 읽는 이들도 있었겠지만요. `나도 이 책에서 느낀 걸 `프리즌`으로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프리즌` 소제목이 `영원한 제국`인 것처럼, `그래 영원한 제국을 한 번 이뤄보자`라고 말이죠.
`프리즌`의 배경은 교도소입니다. 익호에게 교도소는 어떤 공간인가요?
저는 익호의 공간이 참 특수하다고 봐요. 익호가 사는 곳이 교도소잖아요. 그런데 익호의 목표는 일반적인 죄수들과는 달라요. 모든 재소자들의 목표는 형을 낮춰서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익호는 교도소 안에서도 밖을 다 콘트롤 할 수 있으니 교도소를 나갈 필요가 없죠. 중간에 소장이 익호에게 모범수로 감옥을 나가라고 하니까 난리가 나잖아요. 자기 왕국을 박살 내려고 하니까요.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8월의 크리스마스`요. 보고 나면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은 느낌이 들어요. 사랑, 가족, 우정, 죽음 등 추상적인 단어들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그걸 사랑으로 또 희망으로 그려낸 영화죠. 당시엔 그게 가능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사실 지금은 `8월의 크리스마스`가 또다시 제작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면 `프리즌`은 어떤 영화인가요?
`프리즌`은 독같은 이야기입니다. 독, 고통. 이런 단어가 떠오르죠. 보통 창작자가 메시지를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얘기하는데요. 사랑, 희망을 통해서 얘기하는 방법이 있고 고통을 통해 얘기할 수 있죠. 저는 가능하다면 사랑, 희망 쪽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90년대는 한석규가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끄는 듯한 흐름이 있었어요.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한석규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열기가 2000년대에는 좀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때와 지금, 변한 게 있나요?
90년대나 2000년대나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은 변함없어요. 다만 90년대엔 `연기자 한석규`로서 뭔가를 이루고 싶고, 해내고 싶고 그랬어요. 목표에 정신이 팔렸다고나 할까요. 젊어서 그랬던가 봐요. 허허허. 지금은 `완성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한다` 혹은 `계속한다`는 마음이 중요해요. 계속 꾸준히 한다, 안되면 다시 찾아서 또 한다. 하하하. 그런 거 아닐까요.
그때와 지금의 영화 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화는 기술과 밀접한 분야잖아요.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다가는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없어질 것도 같아요. CG가 발달할수록 연기자는 설 곳이 없고, 스크린으로 보는 연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관객의 눈앞에서 하는 연극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술이 발달하면 굳이 사람이 연기를 안 해도 되잖아요. 연출자 입장에서 봐도 배우는 참 말도 드럽게 안 듣고, 하라는 대로 안 하고 뭐하러 쓰겠어요. 그런데 눈빛은 CG로 구현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제 연기도, 다른 사람 연기도 눈을 유심히 봐요. 액션도 몸보다 눈에서 나오는 힘이 세거든요. 90년대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환경은 점점 좋아지겠지만, 그럴수록 잃어버리는 것도 많거든요.
과거가 그리우신가요?
70년대 극장을 생각해보면 냄새가 제일 먼저 기억이 나요. 담배 냄새, 오징어 냄새, 지린내. 그 냄새가 잊히질 않아요. 요즘엔 극장에는 인공 향수가 나와서 냄새랄 게 없잖아요. 깨끗하고 좋아졌지만, 과거라서 그리운 게 또 있어요. 법정 스님이 1973년에 쓴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불국사에 갔더니 단청도 탑도 싹 개보수를 해서 예전의 고즈넉한 맛이 다 사라졌다. 그러시더라고요. 화려해질수록 쓸쓸해지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본인을 소개할 때 의식적으로 배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연기해서 이제 25년 째예요.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자문해보면 딱 답이 안 나와요. 저는 연기자, 액터라고 저를 소개해요. 의식적으로 배우라는 말을 잘 안 썼죠. 배우의 배(俳)라는 한자를 보면 사람 인에 아닐 비를 써서,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그게 광대라는 직업을 하대해서 그랬는지, 원숭이같은 모습을 풍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연기라는 양식이 어차피 일본을 거쳐 들어온 문화니까. 어쨌든 저는 제 직업에 딱 떨어지는 답을 못 찾았어요. 닥터는 고쳐주는 사람이고, 티처는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라이터는 쓰는 사람인데, 그러면 액터는 움직이는 사람인가? `내가 왜 연기를 하나, 왜 이 직업을 수행하고 있나` 그런 고민 중에 `낭만닥터 김사부`를 하게 됐어요.
인간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직업이 참 중요한 게, 그 일을 하면서 그 사람이 완성된다는 거예요. 일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을 있게 하는 강력한 이유인 거죠. 그러면 내 직업의 목표는 뭐냐? 생각을 안 하고 연기하는 거예요. 연기를 덜하는 거죠. 그래서 종종 오답도 내요. 생각해보면 사는 건 좀 쉬워야 해요. 의사는 아픈 사람 고쳐주는 게 일이죠. 딴 데 정신 팔려서 그 직업의 목표를 잃으면 사는 것도 가짜가 돼요. 사실 배우라는 일이 뒤집어 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이에요. 때로는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배우라는 일이 `인간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질 때도 있어요. 후미진 곳에서 묵묵히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밝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고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씩 움직이고 싶다고, 저 스스로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살자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배우 한석규를 좋아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함께한 세월이 25년이니까, 관객분들이 좀 알아주시는 거 같아요. ‘그래 니가 뭘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런 거죠. 그런데 또 그게 마냥 좋으냐? 그렇지도 않아요. 익숙해지는 게 연기에 썩 좋지가 않은 거죠. 서로 좀 몰라야 보는 맛이 새롭지 않겠어요. 하하하.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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