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 "허리띠 졸라매고 치열하게 산 부모님께 바치는 영화죠"

입력 2014-12-22 21:13   수정 2014-12-23 04:45

겨울 극장가 달구는 '국제시장' … 연출·제작 윤제균 감독

흥남 철수·파독 광부·베트남戰·남북 이산가족 중심으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가족 위해 희생한 주인공들 삶 추적
16편 만들어 14편 흥행 … 시나리오, 관객 눈높이서 철저 검증



[ 유재혁 기자 ]
윤제균 감독(45)의 휴먼 드라마 ‘국제시장’이 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7일 개봉한 후 ‘호빗’ 등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21일까지 155만명을 모았다. 이 영화는 ‘해운대’(2009년)로 1100만 관객을 모았던 윤 감독이 5년 만에 연출 및 제작했다. 180억원을 투입해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동기를 살아온 주인공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를 통해 우리 시대 부모님의 인생을 그려냈다. ‘흥남 철수’로 시작해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 남북이산가족 등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별로 중요한 네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한 주인공들의 삶을 추적한다. 지금까지 16개 영화 중 14개를 흥행에 성공시킨 제작자로도 유명한 윤 감독은 “가족을 위해 평생 살아오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제작사 JK필름에서 윤 감독을 만났다.

▷‘해운대’ 이후 5년 만입니다.

“‘해운대’ 이후 판타지 영화 ‘템플스테이’와 휴먼 드라마 ‘국제시장’ 등 두 작품을 연출작으로 준비해오다가 2012년 가을 ‘국제시장’ 시나리오가 먼저 완성됐습니다. 그 사이에도 제작은 많이 했습니다. ‘하모니’ ‘퀵’ ‘7광구’ ‘스파이’ ‘댄싱퀸’ 등을 내놔 ‘7광구’를 제외하고 모두 흥행에 성공했죠.”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 영자가 윤 감독 부모님 이름과 같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대학 2년때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감사하다는 말씀을 미처 못드린 게 항상 응어리로 남아 있었어요. 2004년 가을, 첫째를 낳았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힘들었던 시절, 허리띠 졸라매고 치열하게 살았던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주인공 이름은 부모님 함자가 바로 떠오르더군요. 스케일이 크고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해운대’가 성공한 후에야 투자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극중 에피소드와 관련돼 있는지요.

“선친은 샐러리맨으로 평생 가족을 위해 사셨어요. 에피소드를 차용하지는 않았지만 캐릭터는 그대로 가져왔어요. 선친은 불 같은 성격이어서 버럭 화를 잘 내셨고, 잔소리도 많았어요. 자식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많았고요. 주인공처럼 장남에, 장손에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사셨죠.”

▷현대사를 관통하는 플롯이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시킵니다. 어디서 모티프를 얻었는지요.

“나라마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영화들이 있어요. 할리우드에는 ‘포레스트 검프’, 일본에는 ‘석양의 3번가’, 중국에는 ‘인생’이 있죠. 할리우드 고전 ‘시민 케인’의 플롯을 가장 많이 차용했어요. 언론 재벌 케인의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이야기였는데, 여기서 케인은 평생 로즈버드(장미꽃 봉오리:최고의 가치)를 찾아다녔어요. 덕수가 찾아다닌 로즈버드는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꽃분이네’ 가게라 할 수 있지요.”

▷덕수 인생 출발점을 왜 흥남 철수로 선택했나요.

“우리 근·현대사에서 6·25전쟁을 제외하곤 얘기할 수 없어요. 6·25전쟁은 아픔과 희망의 시작점이죠. 그 전쟁의 슬픔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게 이산가족 찾기라고 봤어요. 이 두 가지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결정돼 있었어요. 6·25전쟁에서는 평범한 피란민의 참상을 고발하는 데 흥남 철수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관련 사료를 찾아보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됐죠. 흥남 철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이었어요.”

▷극중 미군 상선이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피란민들을 태웠는데….

“사실 그대로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60명 정원의 상선이었는데, 적재한 25만t의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웠어요. 세계 전쟁 사상 가장 인도적인 사건이었어요.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피란민을 승선시킨 사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상선을 지휘한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미국 정부의 명령에 불복한 것으로 간주돼 징계를 받았어요. 장군을 설득한 현봉학 미군 군무원의 기념비는 지금 거제도에 있습니다. 미군이 6·25전쟁에서 잘못한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도움 받은 것들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흥남 철수 장면을 실감나게 연출했던데요.

“흥남 철수를 다룬 영화가 당분간 나오지 않도록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심혈을 기울였어요. 6·25전쟁 당시 사진들을 보고 비슷한 함선들을 동원해 영상으로 재현했습니다. 부산 다대포, 감천항 등 네 곳에서 촬영한 뒤 빌딩들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지웠어요. 약 20일간 연인원 1만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죠. 미국 군함들이 철수하는 장면은 태국에서 촬영했는데 태국 해군에 비교적 저렴한 대가를 지급하고 함선을 지원받았지요. 한국에서 군함을 동원하려면 절차가 너무 복잡하거든요.”

▷1960년대 대표 사건으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채택하셨는데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한국 경제사를 읽었어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한 정부는 종잣돈 마련을 위해 독일에서 차관을 얻는 대가로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지요. 1963년 1진은 500명 모집에 5만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100 대 1에 달했죠.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국내에 보내온 돈은 엄청난 규모였어요.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했죠. 요즘 삼성그룹 매출이 GDP의 4% 정도예요. 그분들은 독일에서 사고와 질병으로 많이 죽었어요.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슬픈 역사의 현장에 덕수를 보낸 거지요.”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한국 경제에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베트남 전쟁은 흥남 철수에서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도움을 줬던 사건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겠지만…. 베트남에 파병하는 조건으로 국내에서 미국 군수물자를 생산했는데, 그게 경제성장에 디딤돌이 됐습니다. 파견 근로자들은 건설과 수송 분야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어요. 극중 덕수처럼 베트콩이 득실거리는 정글을 가로질러 군수물자를 운송했거든요.”

▷남북 이산가족 찾기 장면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쏟더군요.

“1983년 KBS가 남한에 흩어진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방영한 이산가족 상봉을 재현했습니다. 이 장면에선 리얼리티가 정말 중요했어요. 관객들이 실제 방청객 느낌으로 객석에 앉아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어요. 한 사람이 방송에 나와 말하는 장면을 찍은 뒤, 집에서 TV를 보는 다른 가족의 얼굴을 촬영하는 식으로는 현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실제 방송처럼 이원 생중계로 촬영했어요. 흥남 철수 장면에서는 두 대의 카메라로 찍었지만, 여기서는 일곱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렸습니다.”

▷잠깐씩 등장하는 정주영, 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등 유명인사들은 객석에 웃음을 줍니다.

“흥남 철수 등 네 가지 장면들은 저마다 발단·위기·절정·결말의 단계를 거칩니다. 감정의 진폭이 너무 커서 쉬어가는 대목이 필요했어요. 가볍고 재미있어야 했죠. 등장인물이 코미디를 하면 진지한 장면에서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경제(정주영) 사회문화(앙드레김) 엔터테인먼트(남진) 스포츠(이만기) 부문을 대표하는 시대의 아이콘을 등장시켰어요. 극중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말하지요.”

▷윤 감독은 충무로에서 가장 성공한 제작자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감독이 제작을 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저는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감독이 됐기 때문에 창작에 대한 열망이 큽니다. 하고 싶은 작품들은 많은데 혼자 다 할 수는 없어요. 잘할 수 있는 감독을 모시고 작업하고 싶은 거죠. 영화에서 연출은 어머니, 제작은 아버지와 역할이 비슷합니다. 제작자가 밖에서 돈 벌어오면(투자 받으면) 감독이 가정을 꾸리는(연출하는) 식이죠. 작품은 자식이죠. 그동안 16편을 제작해 14편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비결을 꼽는다면….

“시나리오에 승부를 겁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극대화시킨 다음 촬영에 들어간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투자자가 수락해도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제작을) 하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원작 있는 원고는 사양하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영화화합니다. 시나리오 단계에 앞서 아이템을 선정할 때는 반드시 일반인들이 보고 싶어 하느냐를 따져봅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거지요. 내부 회의에서 해볼 만한 아이템이라고 결정해야 시나리오 단계로 넘어갑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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