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감정이 나를 미치게 할 때] 3편.

입력 2014-11-07 09:30  

통화할 때 옆에 아무도 없었다면 분명 펑펑 울면서 다 쏟아내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와인 한 잔(아니 두 잔이나 세 잔)을 비우고 남편한테 하소연하면서 괴로운 심정을 조금 덜어내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뒤에 있는데 눈물이 나와 당황스러웠고 일단은 감정을 눌러야 할 것 같았다. 누가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내 안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 중에 하나만 일어나더라도 감당하기 힘든데, 세 가지 일이 연속으로 터지자 수치심이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었다.


나는 일단 눈물을 닦았다. 내 마음속에서 충격, 분노, 불안, 두려움, 슬픔이 한데 뒤엉켜 싸우는 동안, 나는 의자를 돌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직원들에게 섬너와의 통화를 어떻게 전달할지 판단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동정과 지지를 구하고 싶었다. 저 망령 든 노인네가 무슨 권리로 내게 악담을 퍼붓는가? 처참히 얻어맞은 자존감을 되살릴 수 있도록 직원들이 내 대신“자기가 뭔데 난리야”라고 분통을 터트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다. 체면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동료들이 한마음으로 위로해주면 내 기분은 조금 풀릴지 몰라도, 그들에게 섬너의 분노를 전달해서 그들까지 실망시키게 될까 두려웠다. 밤늦도록 야근하고, 장거리 출장을 다니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치러온 모든 희생이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할까? 말도 안 된다.


어쨌든 나는 그들의 상사였다. 우리가 사업을 멋지게 해낸 걸로 생각하게 해주고 직원들에게까지 수치심을 전하지 않으려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훔치고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같은 몽롱한 상태에서 구체적인 기억은 전부 지워졌다. 나는 혹시라도 그 자리에서 무너질까봐 겁이 나서 어색하게 웃었고 통화 내용은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잘했어요, 여러분!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겠네요. 오늘은 이만 정리하고 다들 퇴근할까요?”라고 힘없이 말했을 뿐이다. 더 이상은 괜찮은 척할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어서 빨리 혼자가 되어야 했다.


직장 생활 15년차 간부라면 좀 더 굳건하고 일도 냉소적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몰라도(하긴 상사한테 억울하게 큰소리 한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날 회장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나는 진심으로 니켈로디언을 평생 다닐 회사로 생각했다. 내가 최우수 집단에 들어가서 놀라운 천운으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고 믿었다.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비전과 자원을 공유하며 시간과 공간이 맞아 떨어지는 곳에서 꿈을 실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섬너와 통화한 뒤에야 우리의 임무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라, 단시간에 주가를 올리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저 기계의 작은 부품으로 누군가의 변덕에 따라 뽑히고 버려지고 폐기될 수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서툰 통찰로 보일지 몰라도, 미세한 불만(‘고작 이런 꼴을 당하려고 죽기 살기로 일하는가?’)은 시간이 가면서 일파만파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울었던 그날로부터 2년 7개월하고도 15일 만에 나는 옮길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사표를 던졌다. 큰 그림에서 봤을 때 그날 오후에 내가 겪은 수모가 대단한 사건이었나? 아니다. 섬너가 내게 화를 낸 일이 정당했나? 아니다. 울 수밖에 없었나? 나로서는 그랬다. 운 다음에 기분이 더 나빠졌나? 아니다. 섬너가 나를 감정적으로 대했나? 그렇다. 나도 그의 태도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나? 그렇다.


하지만 내 경험을 넘어서 질문의 범위를 넓혀보자. 업무상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거의 예외 없이 감정이 작용하는데도 일반적으로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야말로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 감정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 업무에 작용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대처할지도 전혀 모른다면 큰 문제이지 않을까? 물론이다. 남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다르게 대처할까? 물론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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