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스·버냉키·크루그먼 간 통화 논쟁에 따른 ‘유동성 장세’ 전망

입력 2015-05-04 09:30  

경제 이론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두 학자 간의 논쟁이 미국 학계와 월가에서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미국 경제 진단과 정책처방을 놓고 벌이는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밴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간에 벌이는 ‘블로그 논쟁’이다. 최근에는 감정과 자존심 싸움까지 겹치면서 ‘블로그 전쟁’이란 표현까지 나온다.


논쟁의 발단은 미국 경제 진단부터 시작된다. 작년 3분기 5%까지 치솟았던 미국 경제는 4분기에는 2.2%로 둔화됐고, 올해 1분기 성장률은 0.2%로 더 떨어졌다. 최근 다시 2011년 8월 신용등급 강등 이후 벌어졌던 미국 경제 ‘소프트 패치(경기회복 후 일시적인 침체)’ 논쟁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머스는 작년 4분기 이후 경기둔화 조짐을 장기침체에 들어가는 초기 단계로 진단한다. 장기침체론은 1938년 당시 하버드대 교수였던 엘빈 핸슨이 처음 주장했던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가설은 특정국 경기를 총공급(Aggregate Supply?AS) 곡선과 총수요(Aggregate Demand?AD) 곡선으로 설명한다.



AD 곡선은 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된다. AS 곡선은 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 화폐, 노동 등 모든 시장을 망라하는 ‘AD’가 ‘AS’보다 부족하다면 경기침체는 구조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서머스의 주장이다.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에 버냉키는 `과잉저축 가설(savings glut hypothesis)`로 대응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저축이 소비보다 많으면 경기가 둔화된다는 ‘절약의 약설(savings` paradox)’다. 특히 미국처럼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경제에서는 절약의 역설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경제는 나라 안팎으로 ‘쌍둥이 과잉저축론’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미국의 주요 수출대상지역인 아시아 국가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화를 과다하게 쌓고 있는 것이 미국 경제를 어렵게 해왔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민은 소비하지 않고 저축만 늘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가 정신마저 쇠퇴해져 기업인이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도 미국 경제가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회복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그 속도가 종전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책처방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더 뜨겁다. 서머스는 일시적인 ‘마약(drug)’에 불과한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는 하루빨리 철회돼야 ‘악습’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그 대신 단기적으로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총수요를 창출하고, 중장기적으로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버냉키는 나라 안팎의 쌍둥이 과잉저축은 금리수준이 너무 높은데 있는 만큼 정책금리와 양적 완화를 통해 충분히 낮춰줄 경우 금융위기가 극복되고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달러 가치마저 떨어져 수출이 증대되고 미국 내에서 소비가 미약하더라도 이를 보완해 미국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버냉키식 정책처방의 핵심이다. 재닛 앨런 현 Fed 의장이 달러 강세를 일관되게 우려해 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해된다.


다른 학자들은 쉽게 댓글을 달지 못한다. 두 학자의 명성이 위대한 만큼 댓글을 달다간 오히려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마라도나 효과’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 효과는 월드컵 영웅인 펠레와 함께 명성이 높은 마라도나가 다칠 것을 우려한 수비수가 미리 피해줌에 따라 골을 넣기는 더 쉬어졌다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유일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학자는 폴 크루먼 프린스턴대 교수다. 크루그먼은 당면한 국가 채무를 줄이기 위해 재정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로코프 독트린’에 대해 늘려야 한다는 것이 ‘크루그먼 독트린’이다.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버냉키보다 더 과감하다. 버냉키가 주장하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선 2%를 4%로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증시를 비롯해 세계 증시에서 ‘과연 유동성 장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작년 3분기까지 주춤거렸던 글로벌 증시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올 2월말까지 각종 위기설에 휩싸였던 러시아,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증시마저 ‘저가 메릿(cherry picking)’까지 겹치면서 반등 국면에 재진입했다.


글로벌 증시가 강한 상승세를 보이는 속에서도 세계 경기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회복국면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만 하더라도 노무라 증권, BNP 파리바, IHS 이코노미스트 등이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아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도 4월 수정 전망에서 3.4%에서 3.1%까지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기 둔화 속에 글로벌 증시가 활황을 보임에 따라 한편에서는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증시 거품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증시에 ‘2단계 유동성 장세가 나타날 것인가’는 QE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기 회복에 기여하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이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면 실물경기가 회복되기까지 그 정책기조가 지속되고, 증시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2단계 유동성 장세’가 올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에 낀 ‘거품’ 우려로 실물경기가 회복되기 이전이라도 ‘긴축’ 기조로 돌아서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추진해 왔던 통화완화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다.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은 금리 하락을 유발함으로써 투자자가 수익성 확보를 위해 보다 고위험 자산을 보유하려는 유인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주가 등 자산 가격이 오르고, 적정수준 이상 오를 경우 ‘거품(bubble)’이 발생한다.


시장에 참가한 금융사에게는 중앙은행의 적격담보 확대 등으로 담보 제약이 완화되고, 저금리로 인해 VaR(Value at Risk?정규분포 상 양측 끝에 해당하는 꼬리 위험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손실 금액 추정치)이 낮아짐에 따라 레버리지 비율이 크게 확대된다. 특히 은행보다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불일치(mismatch) 정도가 큰 보험사의 경우 통화완화정책에 따라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다른 어떤 금융사보다 리스크가 높아진다.


네 가지 내재적인 리스크로 볼 때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은 아직까지는 금융시장 안정을 크게 해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고위험 자산보유 현상은 증권사와 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건전성 규제 등으로 아직까지는 위험선호 현상이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해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주당순이익(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으로 각국의 주가 수준을 평가해 보면 종전 수준에 비해 상승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버블’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다. 금융사별로는 과도한 레버리지 비율 상승을 억제하는 규제정책(예, 바젤 Ⅲ)이 각국의 통화완화정책과 함께 시행됨에 따라 레버리지 비율이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경기 회복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통화정책이 서머스의 주장대로 ‘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적다는 의미다. 반대로 크루그먼의 시각대로 보다 과감한 통화완화 정책이 추진할 경우 지금보다 더 큰 유동성 장세가 오겠지만 거품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버냉키-앨런식 통화정책이 계속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한 달러의 부담을 느끼는 Fed는 금리인상을 가능한 신중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를 올리더라도 ‘미시 건전성’과 ‘거시 건전성’ 정책을 병행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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