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림프식 환율게임으로 풀어보는 ‘4월 한·중·일 동반 위기설’의 실체

입력 2017-03-13 14:16  



이달 중국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회의)와 네덜란드 총선에 이어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4월), 프랑스 대선(4∼5월), 선진 7개국 정상회담(5월) 등 증시 참여자를 중심으로 올해 상반기에 반드시 챙겨봐야 할 굵직굵직한 현안들이다. 단연 관심이 높은 것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첫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로 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침없이 중국과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했다. 같은 시점에 트럼프 정부 들어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NTC)의 피터 나바로 위원장은 독일이 유로화의 저평가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3대 교역국을 대상으로 환율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3국의 공통점은 작년 미국 재무부가 발표했던 상하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환율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된 국가다. 1988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이 보고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교역국이 최우선순위를 둬 대책을 강구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환율조작국에 대해 100% 보복관세 부과까지 불사됐기 때문이다.



강력한 조치에 힘입어 무역적자가 개선되자 1995년 4월 ‘역플라자 합의(선진국 간 달러 강세 유도 협약)’ 이후 미국의 외환정책이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방향(‘루빈 독트린’이라 부름)으로 바뀌었다. 2015년까지 이어졌던 이 시기에 교역국 통화가치의 평가절하가 문제되지 않음에 따라 환율보고서는 무의미해졌고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됐다.

미국 경제는 무역적자가 확대되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이클 베넷, 오린 해치, 톰 카퍼 등 3인의 의원이 주도가 돼 ‘무역촉진법 2015’ 중 교역국 환율에 관한 규정(BHC 법안)이 대폭 강화됐다. 이 법안이 작년 2월에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그해 보고서부터 적용됐다.

BHC법에 따르면 △대미국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대비 경상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며 개입비용이 GDP의 2% 넘는 요건 순으로 모두 충족하는 국가는 ‘환율심층대상국(종전의 환율조작국)’, 두 가지 요건만 충족하는 국가는 ‘환율감시대상국’에 지정된다.

지정요건에 따라 판별해 보면 트럼프 정부 들어 처음 발표되는 올해 4월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만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환율조작 발언은 1988년 종합무역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법에서는 대미국 흑자와 경상흑자가 많다고 판단될 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자의적이고 예외적인 규정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 중국 등과 같은 경험국에서 보듯이 환율조작국에 걸리면 행정명령으로 발동되는 ‘슈퍼 301조’에 의해 강력한 보복조치를 당한다. 오직했으면 ‘전가의 보도’에 비유될 정도였다. 올해 4월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못지않게 ‘지정국가에 어떤 보복조치가 따를까’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에 환율조작에 언급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안도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지정요건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국보다 더 안 좋은 국가다. 작년 10월 보고서에서 중국은 한 가지 조건(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만 걸렸으나 우리는 두 가지 요건(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과 GDP대비 경상흑자 3% 이상)이 걸려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FT) 등은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실질적으로는 경상흑자 비율이 독일, 일본, 중국보다 훨씬 높은 한국과 대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2010년 서울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경상흑자 4% 룰(rule)’을 주도한 국가다. ‘4% 룰’이란 금융위기 이후 해가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과 글로벌 환율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GDP대비 경상흑자가 4%를 넘는 국가는 원칙적으로 시장개입을 못하도록 한 국제간 합의를 말한다. 합의 당시에는 독일과 중국이 해당됐으나 오히려 우리가 2013년 이후 4년 연속 이 룰을 위배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 작년 10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된 6개국의 태도는 서로 다르다. 독일은 트럼프의 환율조작 발언에 환율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스위스는 아직까지 미온적이다. 대중국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대만은 트럼프 집권기간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4월 동반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는 트럼프 정부와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도의 협상 전략가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답게 참가자 모두가 이익을 취하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non zero-sum game)’보다는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쉬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즐긴다. 급부상한 ‘한?중?일 동반 4월 위기설’을 트럼프식 게임으로 그 가능성과 게임결과(pay off?선물보따리 크기)를 추정해 본다.

트럼프 입장에서 한?중?일 3국을 대상으로 ‘환율조작’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일본은 아베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온 ‘아베노믹스’의 골간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하지 못하면 미국 버클리 대학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주장한 ‘엔고의 저주(경기침체->엔고->수출감소->추가 경기침체)’의 걸리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장기적 기반도 약화된다.

중국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위안화 환율로 본다면 현 수준(1달러=6.8위안대)이 ‘스위트 스팟(최적점)’이다. 트럼프의 위안화 절상요구를 받아들이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우려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발해 위안화가 추가 절하되면 외환보유고가 3조 달러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금융위기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시진핑의 계획을 감안한다면 위안화 절상보다는 절하가 더 부담스러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도 일본보다는 중국과 비슷한 처지다. 원화 가치가 현 수준(1달러=1150원내외)보다 더 절상되면 가뜩이나 작년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구조적 장기 침체론(’L’자형 장기 침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혹은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론)’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원화 가치가 절하되면 자금이탈 우려와 증시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으나 절상될 때보다는 여유가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달러 강세’보다는 ‘약세’가 돼야 한다. 국익확보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최우선순위를 두고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는 보호주의 정책의 주목적은 무역적자를 축소시키데 있다. 미국 무역적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자국통화 가치를 절하(달러 강세)되면 취임 초부터 트럼프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제도 녹록치 않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1.9%에 그쳤다. 이례적으로 높았던 같은 해 3분기(3.5%)에 따른 기조 효과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2%대는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성장률은 1.6%에 그쳐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유럽의 성장률 1.7%보다 낮다.

가장 최근(올해 1월 17일, IMF)에 나온 올해 미국경제 성장률은 2.2%다. Fed가 추정하는 잠재성장률이 2.5% 내외(현재 하향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짐)인 점을 감안하면 ‘오쿤의 법칙(Okun’s rule)’ 상 소득 갭이 0.3% 포인트의 디플레이션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달러 가치는 미국 경제 여건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선진 6개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0’대에 움직이고 있다. 호드릭-프레스콧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3% 이상 고평가됐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거시경제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은 0.75% 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1980년대 이후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달러 강세로 보호주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해 무역적자가 커지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된다. 트럼프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인 ‘뉴딜’과 ‘감세 정책’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트럼프 정부의 실패다.

트럼프로서도 부담이 큰 달러 강세를 용인해주는 대가로 가장 많이 받아야 할 국가는 일본이다. 엔저가 되면 아베노믹스도 살리고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 기반도 튼튼해진다. 트럼프 당선 직후 미국을 방문한지 3개월 만에 가졌던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풀어놓은 선물보따리 크기가 4500억 달러(원화로 517조원)에 달할 어마어마하게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는 위안화와 원화가 절하되면 부담이 있다. 트럼프가 달러 강세를 용인해준 대가로 치러야 할 선물보따리가 엔저를 바라는 일본보다 작아도 된다. 하지만 환율조작에 걸려 위안화와 원화가 절상되면 그 부담은 절하 때보다 훨씬 크다. 환율조작에 걸리지 않도록 치러야 할 대가는 분명히 있다는 의미다. 중국과 한국, 두 국가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우리가 치러야 할 선물보따리 크기가 더 커야 한다.



작년 이후 수출이 극도로 부진함에 따라 원화 가치 절하에 대한 요구가 높았는데도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서둘러 시장개입에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수준 이상 올라가면 BHC법에 따라 첫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화 약세를 방지하기 위한 시장개입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세 가지 지정여건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과다한 경상흑자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불황형 흑자’일수록 그렇다. 규제완화와 세제혜택 등을 통해 기업과 금융사의 글로벌 투자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

경기부양 차원에서 요구하는 추가 금리인하 방안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켜 자금이탈과 환율조작 지정 가능성을 높이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경상흑자 축소 등과 같은 한국의 노력이 없어 환율로만 시정해 나갈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50∼1080원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환율조작에 걸리지 않는다고 무작정 넋 놓고 올해 4월 환율보고서 결과를 기다리지 말아야 할 이유다.

달러 투자자도 ‘구성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 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노리다간 국가 차원에서 환율조작국에 걸려 엄청난 피해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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