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열풍…변화 압박 받는 각국 중앙은행

입력 2017-09-04 09:39   수정 2017-09-04 09:39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음에 따라 중앙은행 변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에서 재닛 앨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도 새로운 환경에 맞게 중앙은행이 변신해야 한다는 입장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미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고 주목받는 것은 중앙은행 목표가 정책여건에 맞게 수정되고 있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 왔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 할 정도로 금기시 해왔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거래수단으로 온라인과 모바일의 발달로 물가는 추세적으로 안정돼 왔다. 날로 격화되는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최종상품의 가격파괴로 ‘월마트 혹은 스마트폰 효과’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의 물가는 중앙은행이 설정한 인플레이션 타깃팅선을 하회하고 있다.


그런 만큼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만을 고집하기보다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악마와의 키스’가 ‘천사와의 키스’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이미 Fed는 2012년 12월부터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으며, 앨런 의장은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해 왔다.

앨런의 이런 시각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던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이다. 이 준칙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정책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용목표 달성에 도움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Fed는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에 의해 산출된 적정금리를 토대로 통화정책을 운영해 왔다. 두 준칙도 단순히 물가상승률에 성장률을 더해 금리의 적정성을 따지는 피셔 공식과 달리 중앙은행이 물가와 성장 등 여타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제로 금리(유럽과 일본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음에도 경기회복에는 한계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전의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은 한계가 크게 노출되는 만큼 ‘최적통제준칙’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앨런의 이같은 주장은 어떤 경우든 물가 목표치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다른 준칙과는 대조적이다. 통화론자들은 특정국이 금리 등을 변경할 때 ‘통화준칙(monetary rule)’에 의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를 테면 한국은행의 인플레 목표선이 2%일 때 이보다 물가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통화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물가 이외의 고용 등 다른 목표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준금리 변경을 안할 수 있다는 것이 최적통제준칙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방식이다. 통화론자 입장에서 보면 ‘악마 중의 악마와의 키스’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유럽중앙은행(ECB)조차도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 하나 중앙은행의 변신을 서두르게 하는 것이 가상화폐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 라이트코인, 피어코인, 네임코인, 비비큐코인 등 사상화폐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빠르게 태어나 확산되고 있다. 포인트. 마일리지, 쿠폰 등 대안화폐도 상용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현찰(법화·legal tender)이 필요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개인의 화폐생활이 변함에 따라 통화정책 여건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종전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가상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이론적으로 가상화폐(대안화폐도 포함)가 확산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대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본원통화의 대체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부분을 가상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의 감소를 의미한다. 특히 화폐발행차익 감소는 통화정책 수행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가상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가상화폐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가상화폐를 발행할 경우 현금보유 성향의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가상화폐가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경우 발행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가상화폐의 발달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커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승수는 현금보유비율과 지급준비율에 따라 좌우된다. 이 이론대로라면 가상화폐가 현금통화를 대체하면 통화승수는 커지게 된다.

넷째, 가상화폐의 발달은 여러 각도에서 통화정책의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통화공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성장률 혹은 물가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가상화폐의 발달로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가상화폐에 따른 본질적인 문제와 함께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중앙은행의 경우 예측력을 강화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다른 전망기관보다 늦게 그것도 예측력이 월등히 높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거나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모델 재설정, 시계열 일관성 유지, 정성적 평가 등에 고민도 있어야 한다.

특히 신뢰를 확보하는 과제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를 끌어 올리는 데도 중요하다. 가상화폐 확산 등으로 갈수록 불확실하고 길어지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자주 바꾸거나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예측치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흐트러진 정책수단과 중간조작, 최종목표 간 인과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앙은행 입장에서 성장과 물가 간 우선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금리조작이냐 통화량 변경이냐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추세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서는 중앙은행 목표, 통화정책 관할범위, 적정금리 산출방식, 감독범위 등도 재설정해야 한다.

가상화폐 확산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통화지표를 개발해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을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갈수록 가속력이 붙을 가상화폐 발행에 대한 규제와 위조지폐 방지 등을 통해 ‘폐지 혹은 무용론’까지 불고 있는 현찰(법화)의 위상도 강화해야 할 때다. 각종 가중치와 산출방식 현실화를 골자로 한 통계개편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한다. 고유권한인 금리결정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발달 등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하는데 밤낮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관행대로 통화정책을 추진했다간 효과는 고사하고 독립성과 신뢰성에 손상을 받으면서 ‘중앙은행 축소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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