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법원의 회생계획안 인가 이후 네 번째 매각에 나선 성동조선해양(성동조선) 행보에 구조조정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동조선은 일부 자산을 우선 매각해 채무를 부분적으로 갚고 연말까지 나머지 자산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회생계획안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구조조정업계에서는 "1년 넘게 가동을 멈춰 인수 비용 외에도 경영정상화 비용만 2000억원 가량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매각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관측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생계획안을 '예고된 파산의 준비 과정'으로 보는 시각마저 있다. 회생계획안이 이행되지 않으면 법원은 관련 법에 따라 무조건 파선 선고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쪽짜리 회생계획안' 인가 이유는
지난 10일 창원지방법원 파산1부는 성동조선이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앞서 열린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 담보권자와 채권자가 각각 97% 찬성으로 회생계획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1107억원에 매입한 통영 조선소 3야드 부지 매매 대금을 수출입은행 등 채권 보유 기관들에게 배당하고, 아직 매각이 성사되지 않은 1~2야드는 연말까지 매각해 변제한다는 것이 회생계획안의 핵심 내용이다. 그동안 조선소로 활용할 수 있는 성동조선의 1~2야드를 대상으로 한 세 차례의 매각(M&A) 시도가 무산됐던 것을 감안해 일단 확실하게 변제 가능한 부분만이라도 먼저 매각하는 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회생계획안에 따른 변제 규모는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전체 회생채권에 비해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성동조선이 이번에 ‘반쪽 짜리 회생계획안'을 제출한 것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회생 시한 때문이다. 회생절차의 근거법인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회생계획안의 가결 기간은 회생절차 개시 결정일로부터 최대 1년6개월로 정해져 있다. 지난해 4월 회생절차가 개시된 성동조선은 오는 10월 18일로 그 기간이 만료된다.
그 때까지 회생계획안이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인가되지 않으면 회생절차는 자동으로 폐지되고, 성동조선의 모든 자산은 채권자들의 압류가 가능한 '회생 신청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회생절차가 폐지되면 법원 관리 하에 지급되는 직원 인건비조차 줄 수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 현재 성동조선은 직원들을 순차적으로 무급휴직시키며 버티고 있는데, 무급휴직 대상자가 아닌 직원들에 대해서는 매달 인건비를 지급해야 한다.
성동조선은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대 채권자이자 대주주인 수출입은행과의 협의를 거쳐 '부분 변제' 내용을 담은 회생계획안을 일단 통과시킨 후 한 차례 더 매각을 추진할 수 있도록 2개월의 시간을 버는 쪽을 선택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른바 ‘선(先)인가, 후(後)매각’ 전략이라는 것이다.
성동조선은 9월 말까지 예비 인수자를 확보한 뒤 입찰에 나서는 '스토킹호스' 매각을 추진한다. 스토킹호스 매각에 실패하면 10월 초 매각 공고를 내고 11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을 목표로 공개경쟁입찰에 나설 계획이다.
◆연내 매각 실패하면 무조건 파산
그러나 구조조정업계는 이런 매각 과정을 성동조선을 자연스럽게 파산시키기 위한 ‘완충지대’ 혹은 ‘준비절차’로 보고 있다. 이번 회생계획안의 인가 조건인 '연내 매각 성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성동조선은 지난 7월 수주 잔고가 바닥나면서 가동을 멈춘 상태다. 설령 성동조선의 매각이 성사돼 신규 수주를 받는다 해도 설계 등을 위해 최소 6개월 이후에나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 선박 대금도 절반 이상은 인도 시점에 받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시차를 고려할 때 성동조선을 인수하는 측은 청산가치인 약 3000억원 안팎의 인수 대금 외에도 운영 자금으로 1500억~2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계산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더해 성동조선엔 아직 700명 가량의 정규직 인력이 남아있다. 한 조선업 M&A전문가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현 시점에 여전히 공급 과잉 상태인 국내 조선업에 5000억원 가량을 투자할 곳은 없다“며 "매각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내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면 이번 회생계획안 인가는 성동조선에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법에 따라 무조건 파산 절차에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채무자회생법은 ‘회생계획 인가가 있은 후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된 경우 법원은 채무자에 대하여 파산의 원인이 되는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직권으로 파산을 선고하여야 한다’(법 제6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파산 절차로 이행을 하는 단계에서는 회생계획안이 인가됐는지, 안 됐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며 ”회생계획안 인가 이전에는 파산 선고가 법원의 선택의 영역이지만, 인가 이후에는 회생계획안이 이행되지 않을 때 법원은 무조건 파산 선고를 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구조조정업계에선 "수출입은행 등 주요 채권자가 사실상 성동조선의 회생을 포기하고 청산을 위한 예비 절차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가 전 회생절차 폐지가 이뤄질 경우 성동조선의 운명은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의 손에 맡겨지지만 인가가 이뤄질 경우 법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채권단으로선 직접 파산을 신청했을 때 예상되는 노조 및 지역사회 등의 저항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회생계획안이 채무자인 회사의 일방적인 의지로 작성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회생계획안의 무게중심은 매각이 아닌 파산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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