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두식 “길게 보는 배우 인생, 다작하며 성장하고 싶다”

입력 2019-09-26 11:24  


[이혜정 기자] 2013년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 정웅인, 이요원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주연들의 아역을 전원 신인급으로 꾸리는 모험을 감행해 더욱 주목받았다.

그리고 명감독, 명배우가 모인 작품에서 16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한 신인 배우 중 한 사람에 박두식이 있었다. 대학에서 하고 싶던 작품, 자신만의 연기를 하던 그는 첫 상업 영화에 도전해 좌충우돌했지만 자신만의 패기로, 심지로 다작하며 한국 영화계의 신스틸러로 자리 잡았다.

개성 있는 마스크와 훌쩍 큰 키,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는 그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악역부터 사이코패스, 그리고 순박한 옆집 오빠 같은 모습까지. 박두식이 우리에게 보여준 연기 세계는 그야말로 다채롭다. 목표를 길게 보고 한 단계씩 나아가고 싶다는 박두식의 말에서 연기에 대한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Q. 화보 촬영 소감

“오랜만에 bnt와 화보 촬영이랑 굉장히 즐거웠다. 지난번 촬영과는 또 다른 분위기라 좋았고 촬영 장소가 색다른 여러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공간이라 더 좋았다”

Q. 근황

“얼마 전에 독립 장편 영화 ‘깡패들’에서 깡패 역을 맡아서(웃음) 촬영을 잘 마쳤다. 웹 영화로 좀 새로운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간 촬영을 같이했던 스태프분들도 있어서 편하고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었다. 여름에 영화 ‘히트맨’이란 영화에서는 악역을 맡았는데 이전까지 해보지 않았던 LA 갱 단원 역할이었다. 영어로 욕도 하고 총도 쏘고 문신도 그려보고(웃음). 특이한 경험을 하며 지냈다”

Q. 2013년 데뷔, 연예계 데뷔가 약간 늦은 편인데 연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가 하고 싶었다. 연기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초등학교 때 영어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영어로 역할극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영어로 애드리브도 넣어가면서 신나게 연기를 했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때 그 감정과 박수의 맛을 잊지 못한 거 같다(웃음)”

“그러다 예고에 가고 싶어서 무작정 지원을 했는데 준비도 없이 그냥 무작정 지원했으니 당연히 떨어졌다. 그렇게 입시를 알게 됐고, 대학은 제대로 준비를 하고 가고 싶어서 연기학원을 다녀서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Q. 데뷔가 화려했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으로 데뷔했는데

“맞다. 1600:1 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주연들의 아역 역할을 맡았는데 오디션만 3개월 정도, 6차까지 봤었다. 피가 마르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신인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얻은 거로 생각해서 정말 좋았다”

Q. 첫 데뷔 현장에서 배운 것이 많았을 것 같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많은 작품을 찍어 봤지만 거기서는 스태프들이 배우한테 많이 맞춰줬었다. 스태프고 배우고 다 동기고 선후배다 보니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런 분위기였지(웃음). 그러다가 ‘전설의 주먹’을 통해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한 거나 마찬가진데 그러면서 ‘진짜 현장’을 배운 것 같다”

“영화는 종합예술이지 않나. 카메라부터 워킹, 조명, 감독님의 디렉팅 등 모든 것이 함께 돌아가는 현장인데 내가 처음이다 보니 아무래도 많이 헤맸다.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감독님 입에서 ‘쟤 누가 캐스팅했어’ 소리까지 나왔으니 얼마나 헤맸는지 감이 올 거다(웃음). 그래도 기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래 성격이 그런 편이다. 그래서 혹독했던 시간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Q. 데뷔 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꾸준하게 신스틸러로 활약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얼마 전에 촬영했던 JTBC 드라마 ‘스케치’라는 작품.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캐릭터와는 좀 달랐다. 그런 캐릭터를 내게 믿고 맡겨주신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 내가 맡은 캐릭터가 사이코패스 역할이었는데 그 전에 악역을 많이 해보긴 했지만, 사이코패스는 악역과는 또 결이 다른 모습이지 않나. 그런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또 캐릭터의 분석 역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기존에 사이코패스와는 좀 다른 표현을 하고 싶어서 일부러 좀 맹하고 빈틈이 있어 보이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너무 허술해서 용의 선상에서 무조건 제외되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Q. 데뷔작이 강렬한 캐릭터였지만 순한 역할도 잘 어울리더라.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방법은 뭘까

“집 밖으로도 안 나가고 혼자서 몇 시간이고 캐릭터에 빠지고, 그 캐릭터의 대사에 빠져들어 몰입하고 이런 작업을 한다. 작품을 하는 동안은 그 캐릭터로만 사는 거다. 사이코패스 역할을 연기할 때도 아침에 일어나사 잠들 때까지 모든 사소한 일상을 다 그 친구에 이입해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럼 그 캐릭터가 할 법한 습관들이 내 몸에 체화가 되더라. 내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렇게 캐릭터의 스토리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하지. 그런 식으로 연습하는 거 같다”

Q. 박두식은 애드리브를 많이 치는 배우인지, 아니면 대본대로 정석으로 가는 배우인지 궁금하다

“나는 애드리브를 즐기는 편이다. 나에게 주어진 대사가 한 줄이 있으면 각기 다른 버전을 여러  개 준비해 간다. 대본대로 해 보기도 하고, 내가 생각한 캐릭터처럼 연기해 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완전 말도 안 되는 애드리브도 쳐 보고. 내가 하는 연기는 컷마다 다 다르다고 하시더라”

Q. 애드리브를 많이 친다면 거기에도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

“상황과 극에서 이야기하는 범위에서 너무 틀어지지만 않는 선에서 애드리브를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용 범위가 있는 거다. 작가와 감독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을 잘 지켜야겠지”

Q. 기억에 남는 애드리브도 있을 것 같은데

“영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연기했던 애드리브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 주인공 두 사람이 탈출하는 장면이었고 내 캐릭터가 악역인 간호조무사였다. 병원 내에서 환자들을 괴롭히고 안하무인이고 말 그대로 일진 놀이를 하는 캐릭터였는데 나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두 주인공이 탈출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왜 도망가’라는 식의 대사를 했는데 그게 애드리브였다. 대본에는 대사가 아예 없었다. CCTV로 주인공들이 탈출하는 장면을 보고 욕을 하고 쫓아간다가 대본상의 스토리였고 내가 캐릭터에 이입해서 저 대사를 만들어 낸 거다”

“이 대사를 좋아해 주셔서 편집도 안 당했고(웃음). 영화 명대사에도 꼽혔더라. 원작자인 정유정 작가님한테도 캐릭터를 잘 살렸다고 칭찬을 받은 대사라 유독 기억에 남는 것 같다”

Q. 사실 주연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에서 감초 역할로 활약했지만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주인공이란 타이틀이 아직 부담스럽다. 내가 한 작품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크다. 주인공을 해 보니까 더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작품이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잘 안 되는 것도 많이 봤고…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말 여러 사람의 노고가 쌓이지 않나. 주연은 그 작품의 간판격이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성패를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이 더 크고. 아직은 그런 걸 감당하기에 내 마음이 좀 작은 거 같다(웃음).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다작하면서 점점 배워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Q. 슬럼프도 있었을 터. 슬럼프 극복법이 있다면

“한 3년 전쯤 슬럼프가 크게 왔었다. 회사의 변화도 많았고 오디션을 봐도 힘들었고. 그때 긍정적인 마음을 먹으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영적으로 좀 집중해서 여러 종교의 교리들을 분석했다(웃음). 좋은 이야기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 모든 종교를 망라해서 공부하면서 내 내면에 집중해 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좀 편안해졌다. 지금은 무엇도 두렵지 않다(웃음)”

Q.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있다면

“박정민 배우. 데뷔작인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사실 그때부터 팬이었다(웃음). ‘파수꾼’이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히 팬이 됐는데 ‘전설의 주먹’에서 만나게 된 거다. 당시에는 그런 티를 안 냈었다. 나도 배우고, 기에 눌리면 안 되니까(웃음). 캐릭터 자체가 내가 정민이 형이 맡은 캐릭터에 기 싸움을 하는 역할이어서 실제로도 당시에는 최대한 티를 안 냈다. 그런데 형한테 배운 게 참 많다. 볼 만한 작품도 많이 추천해 줬고. 그렇게 서로 작품이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정민이 형은 추구하는 방향이 명확하더라”

Q. 롤모델

“롤모델이 정말 많아서… 외국 배우 중에서는 게리 올드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병헌, 최민식, 송강호 선배님 등. 그 에너지를 내가 몇 살 때쯤 따라갈 수 있을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사실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을 여쭤보고 싶은 분들이기도 하다. 함께 작품을 하면 자연스럽게 여쭤볼 기회가 될 텐데 아직 많은 기회가 없어서 그게 좀 아쉽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박두식이라는 배우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싶다”


Q. 배우로 활동하며 서로 힘이 되는 동료도 있을 것 같은데

“나의 가장 든든한 아군인 매니저 형, 동생들을 비롯해서 아까 언급했던 (박)정민이 형, (구)원이, (이)정혁이… 데뷔작 ‘전설의 주먹’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그때 같이 연기했던 것이 정말 재미있었고 또 데뷔작이다 보니 파이팅이 남달랐다. 이 친구들과 한 번 더 연기해 보고 싶다(웃음)”

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

“욕심 같아서는 맡겨 주시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지(웃음). 배우란 누구나 다 그럴 거다. 그중에서도 하나 꼽아보자면 정말 착한 캐릭터를 맡아 보고 싶다. 이제까지 강하고 좀 악역을 많이 연기했다 보니까… 정말 순박하고 악한 생각이 단 하나도 없는, 맑은 영혼의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Q. 연기 외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1인 미디어에도 관심이 많다. 걱정이 많아서 아직 도전을 못 하고 있다. 요즘 ‘와썹맨’이나 ‘워크맨’이 정말 인기가 높지 않나. 다만 배우로서는 내 모든 모습을 공개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좀 있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웃음)”

Q. 출연하고 싶은 예능프로그램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이라 ‘워크맨’이나 ‘와썹맨’에 출연하고 싶다. 그런 방송을 보다 보면 정말 아무 말, 행동이 다 나오지 않나(웃음). 그런 자유로운 감성을 좋아한다. 함께 출연할 기회가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Q. 닮은꼴

“가장 기분 좋은 얘기가 김남길 선배 닮았다는 말이다. 정말 죄송하지만(웃음)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또 김남길 선배님도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이니까 더 기분이 좋다”

Q. 쉴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원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웃도어 파였는데 요즘은 칩거하는 중이다. 성향이 좀 바뀌었다. 예전에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고 시즌 레저도 다 즐기는 편이었는데 삼십 대가 되면서 좀 변했다. 명상하는 거 좋아한다(웃음). 그냥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거나 무의식을 탐하는 편(웃음)”

Q. 이상형

“예전에는 외적인 면을 많이 이야기했었는데 이제는 눈만 봐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 눈만 봐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인지 느낌이 오더라. 그리고 그 느낌이 또 맞기도 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더라”

Q.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믿고 볼 수 있는 배우. 조금 다른 개념이 있다면 어떤 캐릭터든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우. 그런 믿음을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2019년 목표

“차기작들을 검토 중이라 최대한 빠르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할 예정이다. 촬영을 마친 ‘히트맨’이 흥행했으면 좋겠고. 나는 좀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하기보다는 길게 보는 편이다. 남은 올해도 여러 작품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해가 되도록 열심히 할 예정이다”

에디터: 이혜정
포토그래퍼: 권해근
의상: 자라, 옴펨, 우니 베르소
슈즈: 팀버랜드
아이웨어: 까스텔바작
스타일리스트: 김선영
헤어: 스타일플로어 보라 실장
메이크업: 스타일플로어 국지훈 팀장
장소: 묘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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